채진석 교수(인천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인류 역사상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PC)라고 할 만한 것은 1977년 애플사에서 만든 애플 II(Apple II, ‘애플 투’라고 읽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8 비트 컴퓨터로 64 킬로바이트의 메모리를 내장하고 있었으며, Apple DOS라는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애플 II가 8 비트이고 메모리의 개수가 적다고 해서 동작하는 소프트웨어도 별 볼일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한 착각이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80년대 중반, 애플 II에서 동작하는 로드 러너라는 게임에 너무 빠져서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해 낙제점을 받았던 친구들이 꽤 있었을 정도로 괜찮은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있었다. 로드 러너와 같은 게임 프로그램 외에도 엑셀과 비슷한 비지칼크(VisiCalc)라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인 dBase, 워드 프로세서인 워드스타(WordStar) 등이 인기를 끌었다.
추억의 로드 러너(출처 http://headdriven.com)
최초의 16 비트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컴퓨터는 IBM XT이다. 미국에서는 1983년에 출시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1986년에 보급되었다. IBM XT는 640 킬로바이트의 메모리를 내장하고 있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만든 MS-DOS라는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DOS는 디스크 운영체제(Disk Operating System)를 가리키는 것으로, 5 1/4 인치 플로피 디스크나 하드디스크에 디렉토리를 만들고, 파일을 복사하는 등의 단순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DOS는 명령어 입력 방식의 운영체제로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곳에다 dir, cd, md, del 등의 명령어를 직접 입력해야 하므로 매우 불편하였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DOS 명령어를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보조 프로그램’에 있는 ‘명령 프롬프트’이다. DOS 명령어를 시험해 보고 싶은 독자는 명령 프롬프트를 실행시키고 나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는 곳에 dir이라고 입력해 보라.
추억의 MS-DOS 화면.
컴퓨터에서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운영체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운영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인데,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는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의 경우 만들어내는 응용 소프트웨어의 질적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적인 운영체제의 보유 여부는 컴퓨터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현재 미국이 정보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게 된 밑바탕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가지고 있는 윈도우와 Mac OS와 같은 운영체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MS-DOS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윈도우를 출시하면서 마우스를 사용해서 응용 프로그램의 아이콘을 클릭하는 형태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일반화시켰다. 애플 II의 뒤를 이어 개발된 매킨토시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매킨토시 컴퓨터의 가격이 워낙 비싸서 널리 사용되지는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처음으로 개발한 윈도우 3.1은 MS-DOS를 먼저 실행시키고 DOS 운영체제 위에서 동작하는 것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윈도우 3.1 이후에 출시된 윈도우 95나 윈도우 98 모두 MS-DOS 위에서 실행되는 것이라 불안정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심심하면 한 번씩 나타나는 파란 화면(blue screen) 때문에 작업 결과를 모두 날린다든지 하는 곤란한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 당시 윈도우 사용자 중에는 윈도우 95나 98에 붙어 있는 숫자가 연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윈도우를 재설치해야 하는 횟수를 나타내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한 번 설치하는데 몇 시간씩 걸리는 윈도우를 100번 가까이 재설치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한번 상상해 보라.
푸르딩딩한 단골손님 (출처: http://pallab.net)
이렇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운영체제가 파란 화면으로 대표되는 오류와 싸우고 있을 때, IBM에서는 OS/2(Operating System/2)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하였다. OS/2는 윈도우 운영체제보다 훨씬 안정적이었고, 사용하기도 편해서 사용자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지원되는 응용 프로그램의 수가 윈도우에 비해 적고 IBM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아서 결국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필자는 가끔씩 이 당시 IBM이 큰맘 먹고 계속해서 OS/2를 유지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PC용 운영체제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OS/2에 대해서는 지금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몇 차례 국산 운영체제를 개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1990년대 초 정부에서는 MS-DOS에 대항하기 위해 K-DOS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K-DOS는 개발 과정 중 상당한 시련을 겪게 된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는데, 이 중의 백미는 윈도우 3.1의 실행이었다. 이 당시 K-DOS를 비롯해서 MS-DOS를 흉내 내는 많은 유사품들이 개발되고 있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이들을 막기 위해 아무도 알 수 없는 부분을 MS-DOS에 삽입한 후 윈도우 3.1이 그것을 확인한 후 실행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만일 정부에서 K-DOS를 국내 출시 PC의 표준으로 강제 보급했다면 한국 소프트웨어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K-DOS는 일부 초등학교 교육용 PC에서 사용되는 정도에 그치며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국내 최초 개발된 PC 운영체제 K-DOS (출처: http://bloter.net)
한편 K-DOS와 별도로 1991년 서울대학교에서는 SNUDOS라는 운영체제를 개발하였다. SNUDOS는 K-DOS처럼 외국 소스를 한글화한 것이 아니라 운영체제 전체를 새로 코딩해 자체 기술로만 완성한 국산 도스였다. 그러나 국산 도스임에도 한글을 지원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정부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 바깥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K-DOS와 SNUDOS가 실패한 이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국내에서는 자체적으로 운영체제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던 중 2009년 7월 티맥스에서 순수 국산 기술로 MS 윈도우와 호환이 되는 티맥스 윈도우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수많은 논란과 의혹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순수한 자체 기술로 국산 운영체제를 개발하겠다는 시도 자체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기대를 모았던 티맥스 윈도우.
운영체제는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독자적인 운영체제가 없는 상태에서 응용 소프트웨어만으로 승부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비용과 시간과 노력이 든다고 해도 국산 운영체제를 개발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필자 채진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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