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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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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신경기술을 통한 신경과학 발전 필자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경향신문 지면에 칼럼을 써왔다. 시의성이 있거나,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소재(예: 동물 사이의 공감 등)를 연구한 논문 중에서도 ‘네이처’나 ‘사이언스’급 저널에 실린 논문을 주로 소개해왔다. 하필이면 이들 저널에 실린 논문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가 깊고 피인용지수가 높은 이 저널들의 엄격한 동료 평가제도와 책임감을 신뢰하고 있기도 하고, 이 저널들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에 기대는 측면도 있었다. 지금이야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필자는 학위를 마치기도 전에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직위의 원로 연구자도 아닌 데다 드문 여성과학자로서 이야기하자니 공연히 위축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원래 건전한 과학 소통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이런 염려 때문에라도..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앞사람이 쌓은 것을 딛고 진전하는 세상 자신의 연구를 동료 연구자에게 소개하는 역량과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소개하는 역량은 다르다. 그래서 뇌과학 연구를 하면서 대중을 위한 저술도 활발히 하는 과학자는 많지 않다. BBC 다큐멘터리 을 제작한 데이비드 이글먼,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들, 오랫동안 공포와 불안을 연구해 온 조지프 르두 정도다. 얼마 전 조지프 르두를 줌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EBS에서 교육부와 평생교육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전 세계에 흩어진 각 분야 대가들의 강연을 이라는 시리즈로 방영하고 있는데, 그중 조지프 르두 편의 감수를 맡았기 때문이다. 나는 신경과학 연구를 처음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에 르두 교수의 논문을 읽었다. 당시 나는 감정에 관심이 있었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뇌과학에서 ..
[요리에 과학 한 스푼]잘 섞음의 원리 요리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아마도 ‘섞음’일 것입니다. 여러 식재료들을 알맞게 준비하고 잘 섞어주면서 최상의 맛을 끌어내는 것이 바로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식재료가 고체라면 서로 섞는 데 큰 문제는 없지만, 액체 상태인 경우라면 조금은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과학에서는 ‘Likes dissolve likes’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역해보면 ‘비슷한 것들은 비슷한 것들을 녹인다’ 정도가 되겠네요. 액체에 다른 어떤 것을 녹일 때 서로 비슷한 성질이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잘 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과학자들이 서로 비슷한 것들을 분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친수성과 친유성입니다. 친수성이란 물과 친한 성질, 친유성은 기름과 친한 성질인데요. 다시 말해..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번역청을 세워주세요 전공인 수학·과학을 제외하면, 중·고등학교 교과목 중 살면서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영어다. 영어는 한글로 번역되지 않은 온갖 자료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고, 한국어를 쓰지 않는 수많은 이들에게 나를 표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작은 나라 한국에 태어났으면서도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고, 내 성과를 인정받게 해준 것은 영어였다. 그래서인지 상당수 직장에서 영어 실력을 요구하고, 많은 사람이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마다 한글날이면 세종대왕께 감사하지만, 그러면서도 영어 공부의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영어 따윈 필요 없을 거라며 위안도 해보지만, 우리말의 번역은 유난히도 더디다. 구글 번역기조차도 문화와 어순이 다른 한국어를 제대로 번역해내지 못한다..
[요리에 과학 한 스푼]천연 주스가 더 맛없는 이유 화장실 가기가 힘들다는 아내를 위해 직접 과일 주스를 만들었습니다. 오렌지, 자몽, 키위 등 신선한 과일을 준비하고 물을 조금 첨가한 후 믹서기로 가는 단순한 방식인데요. 즙만 짜내는 것보다는 변비에 효과가 더 좋습니다. 이왕 하는 김에 아들 것도 함께 준비했습니다. 시중에 파는 주스처럼 건더기는 걸러내고 즙만 담았죠. 그런데 아들 표정이 영 좋지 않습니다. 과일 주스맛이 아니라고 하네요. 좋은 과일만 엄선한 아빠표 주스보다 편의점 주스가 더 주스답다고 생각하는가 봅니다. 사실 가공 주스가 더 진짜 같은 것은 바로 향 때문인데요, 보통은 천연 과일을 연상케 하는 합성 착향료를 사용합니다. 산성 물질과 알코올을 반응시키면 에스터라 불리는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이 가운데 과일 향을 내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몸과 생각의 에너지 조율 한낮이면 35도를 넘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다. 일교차가 10도 가까이 벌어졌고 한두 달만 더 지나면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것이다. 환경이 크게 변하는 데 반해 신체의 내부는 그렇지 않다.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위해서는 체온, 삼투압, 혈압, 혈당 등의 조건이 일정한 범위에서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뇌는 이와 같은 항상성의 유지에도 관여하고 있다. 체온, 혈압, 혈당 등은 기계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조절되어야 한다. 혈당을 생각해보자. 맹수를 마주했을 때와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는 근육이 에너지를 끌어다 쓰기 쉽도록 혈당이 높아지고, 안전한 곳에서 백일몽을 꿀 때는 혈당이 낮아져야 한다. 이처럼 외부 환경에 맞게 움직이면서도 혈당을 ‘적절하게’ 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
[요리에 과학 한 스푼]양념장의 또 다른 비밀 보기만 해도 얼큰한 해물탕 한상이 차려졌습니다. 바지락, 꽃게, 새우, 가리비, 전복 등등, 바로 내가 해산물 대표라 자랑이라도 하듯 커다란 냄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마늘, 생강에 주인장의 특별한 비법 몇 가지가 더해져 만들어졌을 양념장 때문인지 요리는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모든 요리가 그러하듯 탕요리의 맛을 결정하는 것 또한 우선은 신선한 식재료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양념도 빼놓을 수 없죠. 양념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상으로 이끌어내고 때로는 보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장만의 맛깔난 솜씨는 대부분 여기서 결정됩니다.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과학자 입장에서 보면 해물탕이 맛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열이라 할 수 있..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위드 코로나’의 문제 설정 공학은 목표를 달성할 수단을 제공한다. 예컨대 날씨가 더울 때면 선풍기 등 체온을 낮출 수단을 제공한다. 공학 덕분에 우리는 수천년 전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기적을 매일 누리며 살아간다. 그런데 공학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할 때 반드시 선행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1) 어떤 문제를 풀지, (2) 한계 조건이 무엇인지, (3)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가 목표인지를 명확히 정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너무 더워서 일하기 힘든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경우의 문제는, 방호복 때문에 구급대원들의 체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한계 조건은 구급대원의 활동성을 보장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하면서도 체온을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가격이 비싸지 않아야 하며 사용법도 쉬울수록 좋다. 문제가..
[장대익의 진화]왜 접종받고자 하는가? 양자전기역학에 대한 공헌으로 노벨 물리학상(1965년)을 받은 리처드 파인먼이 언젠가 시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우리 시인들은 꽃을 보고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를 쓰기도 하죠. 과학은 이 꽃을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이 아름다움을 노래할 수는 없어요. 과학은 인문이 주는 인생의 가치, 실존, 의미에 대해 침묵합니다.” 촌철살인의 과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우리 과학자들도 이 꽃에서 시인 여러분이 느끼는 아름다움을 비슷하게 느낍니다. 정말 아름답죠.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경험입니다. 그런데 과학은 여기서 무언가를 더 봅니다. 가령 꽃잎이 난 위치와 순서에 주목하는 과학자는 거기서 피보나치수열을 찾아내곤 하죠. 하하.” 이것은 과학이 제공하는 ‘플러스알파’ 효과다. 과학..
[요리에 과학 한 스푼]빛으로 편리하게 익히자 오늘 요리는 햄버거 스테이크입니다. 잘 다져진 돼지고기, 소고기, 양파 그리고 계란물과 빵가루를 섞고 치대어 패티를 만듭니다. 공기를 충분히 제거해 주어야 구울 때 부서지지 않습니다. 저는 두툼한 패티를 선호합니다. 육즙이 풍부한 속살과 바삭하게 잘 구워진 표면이 조화를 이루죠. 하지만 조리하는 과정에서 매우 신경을 써야 합니다. 두툼한 안쪽까지 열이 골고루 전달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너무 오래 가열하다 보면 표면이 타 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안쪽이 제대로 익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으니 언제 불을 꺼야 하나 고민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약 안쪽을 미리 살짝 익혀놓는다면 어떨까요? 그러면 표면을 바삭하게 잘 굽는 데만 신경쓰면 됩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이 응용되는데, 오븐에 살짝 굽기도..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시도도 시작도 하지 말 것 어느새 8월이다. 2021년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연초의 다짐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연초의 다짐을 지키긴커녕 기억도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을까? 8월까지 기다릴 것도 없다. 그동안 수십번 새해를 맞았지만 새해의 다짐을 그 해 1월 말까지라도 지킨 경우조차 드물 것이다. 이처럼 우리 대부분은 유리 세공품처럼 섬세하고 나약한 의지의 소유자다. ‘드라마를 딱 한 편만 봐야지(혹은 게임을 딱 한 판만 해야지)’ 하고는 멈추지 못해서 늦게 잠들며, 매일 운동을 하겠다는 결심은 종종 작심삼일에 그친다. 이렇게 실낱같은 의지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편, 코카인 같은 마약이다. 중독성 약물들은 의사결정과 관련된 뇌 부위의 작동 방식을 바꿔서 약물 섭취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마..
[요리에 과학 한 스푼]물 부으면 되살아나는 식재료 오늘은 아이에게 돈가스를 만들어주려 합니다. 돼지 등심을 두드려 부드럽게 만들고 밀가루, 계란, 빵가루를 차례로 입혀 기름에 튀겨냅니다. 이제 연한 된장국을 만들 차례입니다. 그런데 냉장고에 보관된 채소의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쓰고 남은 것을 보관하다 보면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대비책은 있습니다. 동결건조된 채소를 따로 보관해 두고 있으니까요. 동결건조란 수분을 함유한 식재료를 얼린 후 건조하는 가공법을 말합니다. 원래는 혈액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으로 1930년대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이후 식품산업에서도 응용된 것입니다. 건조 식품은 미생물에 의한 부패가 지연되어 보관성이 좋아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결건조는 여기에 더해 원상 회복력 또한 우수합니다. 물이 첨가되면 식..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사회경제적인 지위와 뇌 발달 35억~43억년 전, 지구에 최초로 생명이 출현한 후 지구 환경은 끊임없이 변했다. 이에 따라 살아남는 데 필요한 능력 또한 변했다. 지구를 다녀간 모든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이라는 성공을 위해 절실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 ‘노력’이라고 판단한 행동을 했다고 해서 다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노력을 기울이고 적합한 능력을 획득한 생물종만이 살아남았다. 생물 개체가 보유한 생존 능력의 적합성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 같은 유전자도 환경에 따라서 장점이 되거나 단점이 되었다. 한편 유전자는 개체가 생존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반응의 범위를 제한하기는 했으나 매 순간 어떤 반응을 할지 결정하지는 않았다. 유전자의 발현은 개체가 경험하는 환경에 따라 변했고, 신경계를 가..
[요리에 과학 한 스푼]맛있는 라면의 비밀은 ‘열 관리’ 제 아들은 아빠가 끓여주는 라면을 좋아합니다. 아내도 라면만큼은 제가 한 수 위라고 인정하죠. 라면을 잘 끓이는 법에 대해 물으면, 저는 ‘중요한 것은 열관리’라고 답합니다. 특히 라면처럼 조리 시간이 짧은 경우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요리는 일종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반응에는 에너지, 즉 열이 필요합니다. 라면과 수프를 물에 넣는다고 요리가 완성되지는 않죠. 열이 가해져야 물질의 확산, 호화반응, 단백질 변성 등과 같은 반응들이 시작됩니다. 각각의 요리에는 저마다 적절한 조리 온도가 있습니다. 온도가 낮으면 기대했던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온도가 너무 높으면 엉뚱한 다른 반응들 때문에 요리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온도를 적절하게 맞춘다고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온도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 보스턴 다이내믹스라는 회사에서 2016년에 만든 4족 보행 로봇 ‘스폿’을 기억하시는가? ‘스폿’이 지잉지잉 소리를 내며 산길을 걸어가는 영상이 한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유명해졌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 중국의 한 스타트업이 ‘스폿’과 비슷하게 생긴 ‘알파도그’라는 로봇을 출시했다. 이 로봇의 입문용 모델의 출시가는 약 630만원으로 8300만원 선인 ‘스폿’에 비해 무척 저렴했으며, 지금은 가격이 더 내려가 중국에서 270만원 선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알파도그’는 출시 한 달 만에 1800대 이상 팔렸다. 물론 ‘알파도그’는 여전히 고가이고, 굳이 사야 할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포드가 중산층을 위한 자동차를 내놓았을 때도, 애플이 가정용 컴퓨터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도 마찬..
[요리에 과학 한 스푼]걸쭉함의 미<味>학 아내가 해물 칼국수를 끓인다고 합니다. 저는 밥이 먹고 싶지만, 아들이 좋다고 하니 어쩔 수 없습니다. 메뉴 선정은 아들에게 우선권이 있으니까요. 각종 해물을 넣고 우려낸 맑은 육수에 면을 넣어 끓이던 아내가 깊은 탄식을 내지릅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본 냄비 안은 난감한 상황입니다. 맑아야 할 국물은 탁해졌고 면은 퉁퉁 불어 있습니다. 평소라면 미리 면을 삶아내고 찬물에 잘 씻은 후 끓는 육수에 넣었을 덴데, 그날따라 서두르다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래도 먹을 만하다 위로하기는 했지만, 아내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밀가루가 사용되는 요리에서는 호화반응이란 것이 일어나는데, 이는 밀가루의 전분이 물을 흡수하고 가열되면서 걸쭉해지는 현상입니다. 전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마치 그물과 같..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감정에 대한 이해 마음의 온갖 현상들 중에서 정서만큼 흥미를 끄는 것도 드물다. 뇌과학에서도 오랫동안 정서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왔는데, 특히 공포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공포는 많은 동물종에 보존되어 있고, 관측이 수월하며(예: 벌벌 떠는 시간을 통해 공포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도 중요하기(예: PTSD, 포비아)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뉴욕대의 조셉 르두 교수의 연구를 바탕으로 공포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르두 교수는 오랫동안 공포와 불안에 대해 연구했으며, 공포 학습과 기억의 신경생리학적 기전을 밝힌 공로로 2013년 미국 국립과학원의 회원이 된 뇌과학자다. 먼저 공포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대부분은 ‘두려움’이라는 불유쾌한 느낌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의식적인 자각은 공포 반응..
[요리에 과학 한 스푼]잘 변해야 맛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동태찌개입니다. 먼저 동태를 물에 씻고 비늘을 제거한 후 아가미와 배에 칼집을 넣어 내장을 제거합니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저는 특히 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참 운이 좋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알이 들어 있네요. 알을 잘 떼어내어 흐르는 물에 헹구고 찬물에 담가 놓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리입니다. 저만의 비밀 레시피 양념으로 국물을 내고 4등분한 동태, 각종 야채, 그리고 깜짝 선물인 알을 넣고 팔팔 끓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알은 소금물에 담가 뒀어야 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도 괜찮기는 하지만, 더 훌륭한 요리가 될 기회를 놓쳤으니 아쉽기만 합니다. 소금물에 알을 담가 두면 좀 더 탱글탱글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변화에 대비하는 재미난 상상 세상은 코로나19로 멈춘 듯하면서도 부지런히 바뀌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고요히 계속되던 비대면,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은 코로나19로 인해 급속히 진전됐다. 카톡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대면 만남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줌 화상회의는 일상이 되었으며,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모델도 부상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겼던 인공지능도 성큼성큼 발전하고 있다. 이제 SNS와 인공지능 두 가지를 합친 서비스를 상상해보자. 기왕이면 코로나19로 수요가 폭증한 분야면 좋겠다. 이를테면 정신건강 같은 분야 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기분장애로 치료받은 사람이 사상 최초로 100만명을 넘었다. 기분장애란, 기분 조절이 어렵고 비정..
[요리에 과학 한 스푼]요리는 균형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습니다. “당신 과학자 맞아? 뚜껑은 덮어야지!”라고 말이죠. 사실 냉장고 안에서는 음식의 건조가 빨리 진행됩니다. 냉장고라는 밀폐된 공간은 낮은 온도로 인해 공기 부피가 줄어드는데, 그러면 내부 압력이 낮은 상태가 되고, 여기에 수분을 머금은 음식이 들어오면 증발이 쉽게 일어나게 됩니다. 압력이 낮아진 공기에는 수분이 증발해 들어갈 공간이 많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곡식 알갱이로 만드는 뻥튀기에도 이 원리가 이용됩니다. 밀폐된 용기 안에 알갱이를 넣고 가열한다고 갑자기 밸브를 열면 뜨거운 공기가 빠지면서 순간적으로 내부 압력이 낮아집니다. 그러면 알갱이로부터 수분 증발이 매우 활발해지고, 수분이 기체가 되면 엄청난 부피 팽창이 일어나기 때문에 ‘뻥’..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잠자는 뇌 꿈처럼 멀기만 했던 ‘저녁이 있는 삶’은 코로나19와 함께 갑자기 찾아왔다. 저녁 모임이 줄고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가라앉으면서 고요하게 집 안에 머물다 일찍 잠드는 날이 늘었다. 잠자는 동안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앙투안 아다만티디스 등의 2019년 논문을 참고하여 수면에 대해 알아보자.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한 느낌을 주는 수면제를 만들 수만 있다면 떼돈을 벌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약이 조만간 등장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뇌가 잠들고 깨어나는 메커니즘이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한 이론에서는 잠들고 깨어나는 것이 마치 스위치처럼 조절된다고 본다. 시상하부에서 수면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그룹과, 깨어남을 촉진하는 신경세포 그룹이 있는데, 이 둘이 서로 경쟁하면서 잠자..
교양, 취미, 과학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세련된 몸가짐과 적절한 외국어 실력, 다양한 문화지식, 그리고 국제정치에 대한 해석과 진단, 동서양 고전에 대한 해박한 이해, 클래식 음악의 유명 피아니스트별, 지휘자별 특성과 구별법 등등? 이런 교양인과 시간을 보내면 주워듣고 배울 것이 많아 재미있다. 세상이 교양인으로 가득 차면 평화가 넘쳐날 것 같은데 실상을 별로 그렇지 못하다. 점잖은 교양인들이 음풍을 논하는 음악 사이트, 각종 마니아 사이트, 스포츠 토론 사이트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살벌하다. 심한 경우 옆에 곡괭이라도 있으면 들고나와 때릴 기세이다. ‘세계 10대 피아니스트’에 누가 들어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엄청난 독설과 조롱으로 다툰다. 이런 싸움은 마징가와 태권브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가를 ..
과학의 아나키즘 지난주 학교 앞에 다리 하나가 열렸다. 카이스트 정문에서 대전 시내에 곧바로 이어지는 다리로 융합의 다리, 과학의 다리 등 우여곡절 작명 과정 끝에 ‘카이스트교’로 개통됐다. 다리 중간에 과학자 기념 공간이 있는데 한 편에는 세계적인 과학자 넷, 다른 편에는 한국 과학자 셋의 흉상이 놓였다. 일부러 한국 과학자 흉상 자리를 하나 남겨 놓았는데 미래의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서란다. 포스텍에도 학생들이 많이 드나드는 무은재기념관 앞 광장에 아인슈타인, 에디슨, 뉴턴 등 과학자 흉상 옆에 미래의 한국 과학자를 위한 좌대가 놓여 있다. 이처럼 세계적인 과학자 반열에 드는 한국인 과학자 탄생에 대한 염원은, 입시교육 체제에서 무지막지하게 재미없이 가르치는 중·고등학교 수학·과학 수업, 실험실 연구보다 연구과..
엔트로피와 햄버거 엔트로피라는 물리학 용어가 있다. 다른 전문 용어와 달리 엔트로피는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 수 있는 개념이기에 비교적 익숙하다. 엔트로피는 흔히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질서가 없고 혼란스러울수록 엔트로피가 높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릇에 콩과 팥을 잘 섞어 놓은 상태가 콩과 팥을 깔끔하게 분리해 놓은 상태보다 엔트로피가 높다. 하지만 엔트로피를 무질서의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대강만 맞다. 그 이유는 물리학의 ‘질서’ 개념이 일상적 질서 개념과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와 관련된 무질서의 정도는 특정 ‘거시상태에 대응되는 미시상태의 개수’로 정의된다. 이때 거시상태란 큰 틀에서 볼 때 같은 결과로 파악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이에 대응되는 미시상태의 개수란 그 거시상태를 구체적..
성찰이 필요한 ‘생명공학의 질주’ “무엇을 상상해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다. 아니 그 이상이다.” 10년 전부터 세계 생명공학계에서 줄곧 들려온 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생명공학 기법이 개발되고, 이를 적용한 실험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생명체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작업이 그 중심에 있다. 변형의 대상에 농산물과 가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작은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출범한 합성생물학 분야였다. 말 그대로 생명체를 합성하겠다는, 일반인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목표를 내세운 공학자들이 등장했다. 생명체의 기본 특성만을 갖추고 작동하는 무언가를 합성하려고 했다. 먹고 살 수 있는 대사 능력, 자손을 낳는 생식 능력, 그리고 변화되는 환경에 버티는 적응 능력 등을 갖춘 생명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략 살아 움직이기만 한다면 ..
몇 명이 모였나 세어보자 한 주제로 모인 군중의 수는 사안의 시급성이나 지지 세력의 위력을 판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렇기 때문에 각 진영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군중 수는 다르게 보이게 된다. 조금이라도 더 많았으면 하는 쪽과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쪽에서 내놓는 집계는 이 때문에 항상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일정 공간에 머물고 있는 사람의 수를 정확하게 계산해야 하는 이유에는 정치적 진영논리가 아닌 현실적인 요구도 있다. 저개발 국가의 낙후된 지역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번지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출생·사망 신고조차 거의 존재하지 않는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정확히 알아내는 일은 사용할 백신의 양과 의료진 수, 나중에 주민을 따로 옮겨 거주하게 할 임시 숙소의 개수를 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초 작업이다. 가장 ..
시인을 위한 물리학 캠벨 수프 캔을 나란히 늘어놓은 그림으로 유명한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스스로를 ‘심오하게 피상적인’(deeply superficial)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 말은 그가 죽기 일년 전 제작한 자화상에 딸려 있는 표현이다. 이 자화상은 워홀 사진 네 장을 실크스크린으로 겹쳐 인쇄해 평면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3D 같은 효과를 일으킨다. 해석에 따라 ‘deeply’는 그냥 ‘매우’처럼 다음에 오는 형용사를 단순히 강조하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깊이와 표면을 각각 다른 품사로 표현하여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나는 이 표현이 이공계중심대학에서 인문사회 교양교육이 갖는 딜레마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올해 시작된 ‘제3차 과학기술인재 육성·지원 기본계획(2016~2020)’은 세부 추진과제 중 하나로..
빅데이터, 만능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선거 승리는 많은 사람에게 충격으로 여겨졌다. 각종 예측 결과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했던 힐러리 클린턴이 그토록 많은 표 차이로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대통령 선거 제도의 기묘한 특징 때문에 클린턴이 실제 득표수에서는 앞서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뒤진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근소한 차이도 아니고 완패를 당했다는 사실은 이변이었다. 당연히 선거 이후 왜 선거 예측이 틀렸는지를 놓고 여러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통상적인 확률 해석에 따르자면 클린턴이 높은 확률로 트럼프를 이길 것이라는 예측과 트럼프가 클린턴을 이긴 실제 선거 결과는 모순이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동전을 던져 앞면이 연속해..
컴퓨터 버리는 방법 한 해 동안 버려지는 PC, 노트북이 100만대가 넘는다. 그런데 컴퓨터는 냉장고와 달라서 반드시 이전 흔적을 지우고 그것을 확인한 뒤에 버려야 한다. 외국 경우지만 중고시장에서 구한 PC의 하드에서 수만건의 환자 정보가 복원된 사례에서 보듯 무심코 버린 컴퓨터는 해커의 좋은 먹잇감이다. 컴퓨터에서 파일을 없애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버린 파일을 담아둔 휴지통을 비우는 작업도 파일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파일 메타정보에 ‘삭제됨’이라는 표시(tagging)를 하는 것이다. 메타정보 태그는 강시 이마에 붙이는 부적과 같다. 부적만 떼면 강시는 언제든지 다시 살아난다. 도서관 목록에서 특정 도서카드를 빼버리면 사람들이 그 책을 찾을 수 없는 원리와 같다. 그러나 그 책 자체는 도서관에 남아있어 ..
새로움은 가치가 아니다 첫애가 첫애일 수 있는 것은 둘째, 셋째처럼 다른 애들이 있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첫애는 외둥이가 되어버린다. 처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다음이 있어야 하는 게 사는 이치임에도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대한 평가에서는 종종 이를 망각하는 제도가 설계되고 존속된다. 대표적인 것이 유사·중복연구 방지제도이다. 정부는 국가연구개발과제 수행 시 ‘국가연구개발사업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7조에 따라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시스템(NTIS)을 통한 과제 유사성 검토를 의무화하고 있다. NTIS 구축사업 경제성 분석에 관한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사·중복 과제 방지를 통해 2005~2012년까지 총 630억원을 투입해 약 5409억원 이상의 예산절감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2013년 감사원에서 2008년부터 5년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