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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사이언스 톡톡 (Science Talk Talk) 블로그 운영 중단 안내 안녕하세요. 사이언스 톡톡 (Science Talk Talk) 블로그 관리자입니다. '경향신문 오피니언 섹션 페이지'의 활성화를 위해 2022년 12월 19일 포스팅을 마지막으로 '사이언스 톡톡 (Science Talk Talk) 블로그' 운영을 중단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사이언스 톡톡 (Science Talk Talk) 블로그에 게재되었던 글은 '경향신문 오피니언 섹션페이지' 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의 과학블로그 사이언스 톡톡 (Science Talk Talk)에 찾아와주시고 관심 가져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더 향상된 서비스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피니언 섹션 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khan.co.kr/opinion
암세포 굶겨 죽이기 모든 세포의 꿈은 두 개가 되는 것이다. 대장균이 유전자를 어떻게 켜고 끄는지 밝혀 노벨상을 탄 프랑수아 자코브가 한 말이다. 인간은 모두 단 한 개의 수정란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갓 태어난 아기도 무려 1조2500억개가 넘는 세포를 갖는다. 다 큰 어른은 그보다 30배 많은 약 37조개의 세포로 한평생 살아간다. 그게 다가 아니다. 두 근 반 무게의 간은 1년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새것으로 바뀐다. 정상 간세포도 분열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올해의 간은 작년의 그것과 다르다. 빠르게 분열하는 피부와 소화기관 상피세포는 더 자주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어려서는 대개 세포의 수를 늘리느라, 커서는 그 수를 지키느라 인간은 쉴 새 없이 먹어야 한다. 하나의 세포가 둘이 되려면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할..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 물리학의 간섭 내 일에 간섭하지 마! 무언가를 하려는데 다른 이가 막아설 때 우리가 하는 말이다. 우리 삶에서 간섭은 이처럼 방해나 훼방의 뜻을 가질 때가 많다. 하지만 물리학의 간섭은 이와 달라, 서로 만나 줄어드는 소멸(destructive)간섭도, 만나서 커지는 보강(constructive)간섭도 있다. 물리학의 간섭은 때로는 막고 때로는 돕는다. 빛과 소리를 포함한 모든 파동은 진행하며 서로 간섭한다. 긴 줄의 양 끝을 두 사람이 나눠 잡고 시간을 맞춰 동시에 위아래로 휙 움직이자. 양 끝에서 만들어진 두 파동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해 한가운데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줄은 위아래로 큰 폭으로 떨린다. 이처럼 결이 맞은 두 파동이 더해져 진폭이 늘어나는 것이 보강간섭이다. 두 파동이 만나 이루는 합성 파동의 진폭이 ..
흙 다시 만져보자 고층 아파트와 빵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루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건축물의 주재료는 콘크리트다. 콘크리트는 시멘트와 물, 골재인 모래와 자갈을 섞어 만든 것으로 신축 아파트 공사장에 줄지어 선 레미콘 트럭 안에 든 회색빛 물질이다. 모래와 자갈을 결합하는 접착제인 시멘트는 점토나 석회, 광물을 2700도가 넘는 가마에서 구워 빻은 가루다. 시멘트 10, 물 15에 골재 75 비율로 잘 섞으면 콘크리트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콘크리트의 주성분인 모래는 무엇일까? 너무 흔해서 오히려 정의하기 어려운 사정을 살펴 지질학자들은 지름이 0.0625~2㎜ 크기의 알갱이를 따로 모래라고 부른다. 머리카락 지름이 대략 0.08㎜라면 모래알 크기를 얼추 가늠할 것이다. 사막이나 해변에 깔린 모래의 70%는 석영..
빛의 여행엔 시간 낭비가 없다 빛은 출발한 곳에서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직선을 따라 직진한다. 평평한 거울에 닿은 빛은 입사한 각도와 같은 각도로 반사하고, 맑은 연못 바닥은 실제보다 얕아 보인다. 기하광학의 여러 성질을 고전 물리학은 딱 하나의 원리, 가장 시간이 짧은 경로를 따라 빛이 움직인다는 페르마(Fermat)의 최소 시간의 원리로 설명한다. 우주에서 가장 급히 움직이는 빛은, 어떤 경로로 움직일지 정할 때도 시간이 기준이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간다. 빛의 여행에는 시간 낭비가 없다. 두 점을 연결하는 무한히 많은 경로 중 길이가 가장 짧아 특별한 경로가 바로 직선이다. 빛의 속도는 어디에서나 같아서 직선은 또 가장 짧은 시간이 걸리는 경로이기도 하다. 페르마의 최소 시간의 원리를 생각하면 ..
우는 아기 재우기 태어나서 나는 석 달 열흘을 꼬박 울었다 한다. 물론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다. 젖을 물려도, 기저귀가 젖지 않았는데도 자지러지게 울었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가 번갈아 업어 재우던 어느 날 울음을 뚝 그쳤는데 그게 마침 100일째였다는 것이다. 살아생전 어머니는 상가에 다녀온 일꾼이 괭이 가지러 금줄을 제치고 집 안에 들어온 탓에 부정을 탔노라고 굳게 믿었다. 젖먹이가 우는 일이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5~19%에 달하는 영아는 그 울음이 좀 별나다. 3주에서 석 달에 걸쳐 일주일에 3일 이상 하루 3시간 넘게 울기 때문이다. 소아과 의사들은 이들이 영아 산통 혹은 배앓이(baby colic)를 한다고 진단한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오래 울면 허기진다. 가만히 있을 때보다 에너지를 스무 배나 더 쓴..
절대성을 반영하는 시공간의 상대성 앞에서 본 내 모습은 뒤에서 본 모습과 다르다. 나는 나라서 변하지 않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내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누가 어디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이 상대(相對)라면, 절대(絶對)는 보이는 겉모습은 달라도 늘 변함없이 유지되는 동일성이다.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시공간의 상대성을 알려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찰 결과의 상대성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절대성이다. 움직이는 시계가 더 느리게 간다는 시간의 상대성은, 등속으로 움직이는 누구에게나 빛의 속도가 같다는 더 근본적인 절대성의 결과다.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 근간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햇빛은 막대 그림자를 땅에 드리운다. 우리는 막대의 길이가 정해져 있지만 해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가 ..
부모 모습이 내 얼굴에 비친다 두어달 전 초여름 삼촌 문상 갔을 때 일이다. 먼저 와 계시던 이모가 내가 가까이 오길 기다려 대뜸 “형부가 들어오시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고 운을 떼었다. 나도 외할머니를 소환하며 가볍게 응수했지만 나이 들어가는 처남이나 처고모 얼굴에서 장인어른의 모습을 찾아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아마 이런 경험은 내 또래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으리라.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하나 가족 이력을 잘 아는 사람의 인식 체계에 쉽사리 포착되는 이런 현상은 왜 생기는 것일까? 2018년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영장류 친족 선택을 연구하는 카젬 박사는 ‘나이가 들수록 부모 자식의 얼굴이 닮아가는 경향이 높다’는 논문을 영국왕립학회지에 실었다. 사람이 붉은털원숭이 사진을 보고 부모 자식을 짝짓는 실..
이해할 수 있든 없든 복잡계는 복잡계다 우리 사는 세상은 정말 복잡해 보인다. 사전에는 ‘복잡하다’의 풀이가 ‘일이나 감정 따위가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로 적혀 있다. 서로 다른 두 측면이 ‘복잡함’의 의미에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가 얽혀 있다’는 것은 대상의 속성인 한편, ‘갈피를 잡기 어렵다”는 것은 인식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복잡함의 의미를 대상과 인식의 속성으로 나눠 생각해보면 네 조합이 가능하다. 대상이 단순해서 이해도 단순한 경우, 대상은 단순한데 보여주는 현상은 갈피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경우, 대상은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 복잡한데 그래도 단순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우, 그리고 대상도 인식도 모두 복잡한 경우다. 대상이 단순해 이해도 단순한 것이 있다. 한쪽 끝..
원하지 않았지만 이웃이 돼버린 모기 풀은 인류의 친구다. 양과 사슴 같은 초식동물의 먹이도 풀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본격적으로 인간 집단에 들어온 밀과 귀리도 역시 풀의 한 종류다. 태양을 향해 높이 오른 나무와 달리 빠르게 멀리 퍼지는 습성을 지닌 풀은 거침없이 땅을 파헤치는 인간을 특히 좋아하고 따른다. 자못 비장한 차전자(車前子)라는 별명이 있는 질경이는 사람이나 소가 끄는 수레바퀴에 깔릴 때 씨앗이 튀어 나가 새싹을 틔운다. 놀랍다. 불을 놓아 화전을 일구고 아름드리나무를 잘라 개간하는 인간을 쫓아 자신의 영역을 넓힌 모기도 인간을 따른다. 호젓한 산길을 걸을 때 윙윙 날갯짓하며 동행을 청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때 우리는 거부하는 몸짓으로 팔을 휘젓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이런 동작은 열과 몸 냄새를 더 멀리..
우리는 ‘원자들의 모임’만은 아니다 재앙이 닥쳐 대부분의 인간이 사라지기 바로 직전, 후손을 위해 딱 하나의 과학 이론을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일까? 에서 리처드 파인만은 세상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자론을 후손에 남길 딱 하나의 이론으로 꼽았다. 물리학은 일석이조를 훌쩍 넘어 일석백조를 꿈꾼다. 하나로 여럿을 설명할 수 있을 때,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적은 수의 단순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물리학자는 등골이 오싹한 경이감을 느낀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정말 많고, 원자론의 과학을 발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떠올리면, 파인만의 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약해지는 인력이 두 원자 사이에 작용하지만, 거리가 아주 짧아지면 서로를 미는 반발력이 작용한다는..
땀은 송골송골 땀의 계절이다. 점심 먹을 때마다 손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에어컨 없던 시절에는 바람 잘 통하는 나무 그늘을 찾거나 땀띠를 추스르려 산밑 바위틈 샘골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일설에 따르면 땀띠는 땀 두드러기에서 ‘땀때기’를 거쳐 온 말이다. 두드러기라니 일종의 피부 질환이라고 볼 수 있겠다. 땀 때문에 두드러기 비슷한 증상이 생긴다니 그렇다면 땀에 어떤 독성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닐까? 꼭 그렇지는 않다. 화학적으로 땀은 혈구를 뺀 혈액 성분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혈액에 든 독성 성분이 땀으로 배출된다고 해서 괴이쩍은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기 전에 틀림없이 콩팥 감시망에 걸려 오줌으로 배설될 것이다. 땀이나 오줌은 몸 안의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강력한 수단이지만 역할은 서로 다르다. 오줌은 주로..
세상의 ‘마찰’ 보며, 떠올리는 미래의 폭주 자연에는 딱 네 종류의 상호작용이 있다. 해 주위를 도는 지구의 운동은 중력이 만들고, 겨울날 차문 손잡이의 짜릿함은 전자기력 때문이다. 서로를 강하게 밀치는 전자기력을 이기고 양성자 여럿이 오밀조밀 원자핵 안에 모여 있을 수 있는 것은 강한 핵력 덕분이다. 강한 핵력이 없다면 원자핵도, 원자도, 세상의 온갖 물질도, 그리고 나도 없다. 한편, 약한 핵력은 원자핵을 다른 원자핵으로 바꾸는 과정에 관여한다. 수소가 만나 헬륨으로 바뀌는 태양의 핵융합도 약한 핵력으로 가능하다. 초여름 따가운 햇볕은 약한 핵력이 만든다. 커피 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갈 때마다 내 작은 팔심이 지구의 중력을 이기고 있다. 넷 중 가장 약한 것이 중력이고 그다음 약한 것이 약한 핵력이다. 중력은 우리 모두의 소중한 지구를 태양으로..
불멸의 꿈 혈액 도핑을 아는가? 이 행위는 승리를 바라는 운동선수가 자신의 혈관에서 일정량의 피를 뽑았다가 몇 주 뒤 수혈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줄어든 혈구를 벌충하고자 골수에 있는 조혈모세포(hematopoietic stem cell)가 부지런히 소임을 다하면 혈구의 수는 머잖아 정상으로 회복된다. 이때 자가 수혈로 적혈구 수가 늘면 운동 능력이 최대 20%까지 향상될 수 있다고 한다. 사이클 영웅 루이 암스트롱도 이런 수법을 썼다. 지금은 시합 전후 적혈구 수를 분석함으로써 이런 불법적인 일도 여지없이 적발해낸다. 젊은 쥐의 혈액을 늙은 생쥐에게 수혈함으로써 신경세포 재생을 촉진하여 학습과 기억력을 높이고 간의 재생을 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곤 한다. 그렇다면 경기에서 이기거나 아프지 않은 채 오래..
경험, 겪고 나면 달라진다 듣고 읽어 알기는 어려워도 직접 겪어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겪은 과거의 경험은 머릿속 어딘가에 각인되어 나를 바꾼다. 우리 각자뿐 아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도 그렇다. 함께 겪은 모두의 경험은 우리 사회를 바꾼다. 1980년 광주, 2014년 세월호 등이 그렇다. 겪고 나서 마주한 세상은 겪기 전과 달라진다. 여럿이 공유한 시공간의 한곳에서 함께 겪은 것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빚어낸다. 나나 우리나 겪고 나면 달라진다. 과학에도 경험이 중요하다. 뉴턴의 운동법칙 F=ma 수식을 외우고 있다 해서 고전역학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론을 먼저 설명하고 구체적인 상황에 이를 적용해 문제를 직접 풀어보는 경험을 꼭 갖도록 하는 것이 대학교 물리학 수업의 기본이다. 다양한..
우리 엄마 젖을 다오 북한강 중간께의 청평에는 안전 유원지가 있었다. 매표소를 지나 처음 만나는 집은, 낮에는 음식점이고 밤에는 사이키 조명 아래 춤을 출 만한 공간도 있었다. 그러니 종업원 중에는 덩치 큰 친구도 있었는데, 듣기로는 씨름 선수 출신이라고 했다. 오가는 손조차 뜸한, 비 오는 어느 날 나는 그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참외 줄랴 참외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오.” 애잔한 기타 선율과 함께 오래전에 들었던 낮은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아마도 그는 수유(lactation)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애착 또는 접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눈을 마주하며 정온동물끼리 체온을 나누는 일이 사회적 결속력을 다지는 강력한 수단이었음은 우리 유전자에도 새겨져 있다. 해마다 오월이 돌아오는 걸 보면..
질량 작을수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춘다 같은 힘으로 밀어도 쉽게 움직이는 물체와 잘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 커다란 바위는 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지만, 크기가 작은 바위는 조금은 움직일 수 있고, 이보다 더 작은 돌멩이는 슬쩍 밀어도 쉬이 움직인다. 힘으로 밀 때 물체가 안 움직이려고 뻗대는 정도가 물리학의 질량이다. 물질의 양이 많으면 질량도 크다. 작은 당구공이 커다란 볼링공보다 쉽게 움직이는 이유다. 질량이 큰 물체가 가만히 정지해 있으면 밀어도 잘 움직이지 않고,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기도 어렵다. 멈춰 있다 움직이거나, 움직이다 멈추거나, 물체의 운동 상태가 변한다.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을 관성이라고 한다. 질량이 바로 관성의 척도다. 질량이 클수록 관성이 크고, 운동 상태의 변화에 더 강하게 저항한..
지표면의 유일한 생산자, 잎 봄인가 싶어 문득 고개를 들었더니 사위가 어둡다. 나무 잔가지 사이의 빈틈이 하루가 다르게 채워진다. 그에 따라 화려한 사치재인 꽃은 사위어 가거나 어둠 속에 잠긴다. 한 이십 년도 더 된 어느 봄날, 성산동 굴다리 지나 수색, 화전을 향해 가다 서오릉 표지판을 보고 샛길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서 나는 내 인생의 또 다른 봄을 보았다. 봄은 채워짐이었다. 야트막한 산에는 가을이면 떨어질 운명인 이파리들이 그야말로 만개한 상태였다. 새로 돋은 활엽수 이파리들은 꿈처럼 눈부셨다. 그 뒤로 나의 봄은 늘 저리 어둡고 밝았다. 한 해가 시작되고 100여일 지날 무렵이면 한반도에도 잎 소식이 들려온다. 그 뒤로 200일 남짓 잎들은 대기와 식물이 만나는 접촉면 노릇을 오롯이 해낼 것이다. 바늘잎 식물도..
진동수가 같아야 공명도 크다 아이 그네를 밀어주던 때가 생각난다. 그네는 앞으로 갔다가 내가 있는 뒤쪽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앞으로 막 움직일 때 그네를 미는 것이 좋다. 이렇게 반복하면 그네는 점점 더 높이 오르고 아이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맑은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이보다 내가 더 즐거웠던 시간이다. 이렇게 그네를 밀어주는 것은 물리학의 ‘공명’과 관계가 있다. 함께 울린다는 뜻이어서 우리말로 ‘껴울림’이라 한다. 그네 밀기의 원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초에 한 번 그네가 다시 다가오면 3초에 한 번 밀면 된다. 3초보다 짧은 간격이면 그네가 다가올 때 밀게 되어 팔이 아프고 그네의 속도는 오히려 줄어든다. 3초보다 긴 간격으로 밀면 그네가 이미 저 앞에 있어 허공에 대고 헛수고를 하게 된다. 그..
무심한 질소 기다림은 인간의 일이고 행성의 움직임은 우주의 일이라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계절은 바뀔 게고 그렇게 봄은 왔다. 봄이 오니 서둘러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틔웠고 벚꽃도 곧 필 것이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뜻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그 소임을 다한 꽃이 지면 열매를 키우는 몫은 잎이 전담한다. 하늘 높이 태양이 떠오르면 식물은 일제히 기공(氣孔)을 열고 이산화탄소를 흠뻑 들이켠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액체로 환골탈태한 뒤 설탕으로 흐르다 저장 기관에서 고체로 안착한다. 쌀알이나 옥수수, 알밤이 그런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은 빠르고 실수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재료와 에너지 모두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너무 느리면 전자 전달계 고압선을 흐르는 전자가 밖으로 튀어 나가거나 에너지가 헛..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물리학의 단열, 세상 속 단절 어릴 때 사용한 유리 보온병을 기억한다. 안쪽 유리병을 바깥 유리병이 둘러싸고 있는데 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둘 사이의 안쪽 면은 거울처럼 도금해놓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지면 잘 깨져 낭패를 본 적도 많았다. 왜 유리 보온병은 잘 깨졌을까? 얼굴을 비춰 볼 수도 없는데 왜 거울처럼 도금을 했을까?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딱 붙여 놓으면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열이 전달된다. 높은 쪽의 온도는 내려가고 낮은 쪽의 온도는 올라간다. 결국 둘의 온도가 같아지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붙여 놓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아니, 온도가 더 높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모든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이 허락한 가장 낮은 온도인 절대영도가 아니라면 분자..
당신의 간은 밤새 안녕하십니까 간은 붉다. 들고 나는 피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쉴 때 간은 우리 몸에 필요한 전체 산소의 약 20%를 쓴다. 유난히 붉은 색조를 띠는 기관은 산소와 피의 요구량이 크다고 보면 대체로 틀림이 없다. 콩팥과 심장도 그런 곳이다. 이들 두 기관과 달리 간에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혈관이 연결된다. 산소를 듬뿍 담고 심장에서 출발한 신선한 피는 간에 들어오는 피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혈액은 소장과 대장에서 온다. 이렇듯 우리 몸의 가운데를 관통하는 소화기관에서 소화하고 흡수한 영양소가 일차로 결집하는 곳이 간이다. 그렇기에 간은 몸의 안과 밖을 잇는 경계에 선 관문이다. 음식을 많이 먹어 영양소의 양이 늘면 간은 커질까? 그렇다. 2017년 스위스 제네바 대학 쉬블러 연구팀은 생쥐의 간이 24시..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세상 모든 것은 확률로 돌아간다 가만히 손에서 놓은 돌멩이는 아래로 떨어질까? 영화 속 유령처럼 사람이 스르륵 벽을 뚫고 지나갈 수 있 을까?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하는 걸까? 내가 백신을 맞으면 코로나19에 안 걸리는 걸까? 과학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런데 100% 확실한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주선 안이라면 제자리에 둥둥 떠 있을 수 있으니, 아래로 떨어지는 돌멩이도 상황이 달라지면 항상 맞는 얘기는 아니다. 에너지 장벽을 입자가 스르륵 통과하는 양자터널효과를 생각하면 어쨌든 입자로 이루어진 사람이 벽을 통과할 확률이 정확히 0인 것은 아니고, 엔트로피도 항상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백신을 맞았다고 앞으로 계속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입자의 수가 어떻고, 고립계가 어떻고, 엔트로피 증가를 설명하면, ..
밤 긴 겨울엔 나우 자자 소나무는 양지바른 곳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소나무가 이 추운 겨울날 푸른 잎을 매달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동지 지나 아직 짧은 햇살일망정 광합성에 쓰려는 사철 푸른 나무의 시도가 사뭇 애처롭다. 하지만 광합성 작업에는 햇볕 말고 물도 필요하므로 땅 아래 소나무 뿌리로 흐르는 물이 얼어 있으면 안 된다. 누런 솔가리로 아랫도리를 감싼 소나무는 태양으로부터 광속으로 8분이나 걸려 찾아온 빛 에너지를 애면글면 보존한다. 이제 소나무 잎 안에 든 엽록체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하여 적은 양이나마 포도당을 만들 수 있다. 이와 달리 일찌감치 잎을 떨군 활엽수들은 지난해 저장해둔 탄수화물을 쓰면서 삼동을 난다. 그렇기에 겨울 활엽수는 동물과 하등 다를 바 없이 호흡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이것이 여름..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상식도 바뀌지만 ‘방향’은 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지식이 ‘상식’이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돌멩이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 지구가 둥글다는 것, 그리고 백신이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상식이다. 이런 상식에 많은 이가 동의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또 아니다. 돌멩이가 저절로 하늘로 치솟는다고 믿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지금도 간혹 있고, 다양한 생명이 진화의 과정 없이 한순간 등장했다고 믿는 사람,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나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다르면 먼저 나의 상식을 의심해 볼 일이다. 과학 지식이 아닌 상식도 많다. 식탁에서 코 푸는 사람을 예의 없다 생각하며 후루룩 국물을 들이켜는 나를 그 외국인은 거꾸로..
지구에는 배설기관이 없다 바다는 처음에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원시 지구 안 마그마에서 분출한 수증기가 지표면 온도 하강에 따라 비로 떨어져 내리며 바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생명과 상상력의 원천인 바다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아주 오래전 오랜 기간에 걸쳐 벌어진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리는 지구를 달걀에 빗대 지표면과 맨틀 및 핵으로 구분한다. 짐작하듯 맨틀은 흰자, 핵은 노른자에 해당한다. 지각 아래 맨틀이 차지하는 공간은 지구 부피의 약 80%이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바다와 빙하 및 지하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무려 25배가 많은 양의 물이 들어 있다. 활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휘발성 물질의 83%가 수증기라는 점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대양과 남극의 빙..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신경기술을 통한 신경과학 발전 필자는 2017년부터 지금까지 경향신문 지면에 칼럼을 써왔다. 시의성이 있거나,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하는 소재(예: 동물 사이의 공감 등)를 연구한 논문 중에서도 ‘네이처’나 ‘사이언스’급 저널에 실린 논문을 주로 소개해왔다. 하필이면 이들 저널에 실린 논문을 고른 데는 이유가 있다. 역사가 깊고 피인용지수가 높은 이 저널들의 엄격한 동료 평가제도와 책임감을 신뢰하고 있기도 하고, 이 저널들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에 기대는 측면도 있었다. 지금이야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필자는 학위를 마치기도 전에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직위의 원로 연구자도 아닌 데다 드문 여성과학자로서 이야기하자니 공연히 위축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원래 건전한 과학 소통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이런 염려 때문에라도..
까마귀 온다 수원에 까마귀 떼가 나타났다. 2016년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에 첫 모습을 드러냈던 까마귀가 벌써 몇 년째 찾아든다. 울산이나 김제처럼 사방으로 너른 들녘에서 나락이나 지렁이를 먹던 까마귀는 밤이면 근처 나무숲에 잠자리를 마련하곤 했다. 울산 태화강변 대나무숲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숲과 논을 오가며 겨울을 지낸 까마귀는 다음해 3월이면 어김없이 날개를 틀어 번식 장소인 북으로 향한다. 수원 까마귀도 그럴 것이다. 강남 갔던 제비는 삼월삼짇날쯤에 한반도를 찾는다. 붉은 목에 배가 흰 어미 제비는 부산히 벌레를 날라 서너 마리의 새끼를 먹여 살린다. 봄에 한국을 찾는 제비는 여름 철새이다. 겨울 철새인 까마귀는 시베리아나 만주에서 여름을 나고 한반도나 일본에서 월동한다. 사실 모든 생명체는 먹을 것이 풍부..
[송민령의 뇌과학 이야기]앞사람이 쌓은 것을 딛고 진전하는 세상 자신의 연구를 동료 연구자에게 소개하는 역량과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소개하는 역량은 다르다. 그래서 뇌과학 연구를 하면서 대중을 위한 저술도 활발히 하는 과학자는 많지 않다. BBC 다큐멘터리 을 제작한 데이비드 이글먼,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에릭 캔들, 오랫동안 공포와 불안을 연구해 온 조지프 르두 정도다. 얼마 전 조지프 르두를 줌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EBS에서 교육부와 평생교육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전 세계에 흩어진 각 분야 대가들의 강연을 이라는 시리즈로 방영하고 있는데, 그중 조지프 르두 편의 감수를 맡았기 때문이다. 나는 신경과학 연구를 처음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에 르두 교수의 논문을 읽었다. 당시 나는 감정에 관심이 있었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뇌과학에서 ..
2021년 떠오르는 10대 기술 세계경제포럼이 ‘2021년 떠오르는 10대 기술’을 16일 발표했다. 올해로 10번째를 맞이한 이 리스트에는 예년과 같이 흥미로운 기술들이 포함되었다. 첫 번째는 탈탄소 기술이다. 휘발유나 경유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바꾸는 잘 알려진 것 이외에도 탄소중립 에어컨디셔너, 저탄소 시멘트, 신재생에너지, 고기 없는 단백질 등이 총체적으로 빠르게 개발돼 적용되어야 한다고 제시되었다. 두 번째는 자체 영양 제공 식용작물 재배 기술이다. 콩과 식물은 질소비료를 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 이유는 뿌리에 박테리아들이 자리 잡아 노듈이라는 것을 형성하고, 그 박테리아들이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하기 때문이다. 이를 모방하여 노듈을 형성하지 못하는 식용작물들도 노듈을 형성하게 엔지니어링하거나, 아니면 질소를 고정하지 못하는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