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

(102)
지도 고정 모드 얼마 전에 제주도에 갔었다. 한국과학사학회가 열렸었는데 나는 짧은 초청 강연을 했다. 강연 하루 전날 제주도에 가서 제주대학교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윤태웅 교수를 만났다. 차를 타고 어느 오름을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윤 교수가 내비게이션을 잘 살펴보라고 말을 걸었다. 익숙하지 않은 화면이었다. 우리가 탄 차는 (당연히) 앞으로 가고 있었는데 내비게이션 속의 우리 차는 화면 아래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차에 같이 타고 있던 지인들이 한마디씩 의견을 내놓았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내비게이션 화면의 방위가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면 위쪽이 북쪽이었다면 아래쪽이 남쪽 그리고 왼쪽이 서쪽이고 오른쪽이 동쪽이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내비게이션의 화면은 ..
천문학자 Q & A “꿈을 실현하기 위해 천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신념이 학창시절 내내 이어졌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바다 한번 구경해보지 못한 육지 촌놈은 해양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늘을 보고 걷다가 바다에 빠진 꼴이었다.” 황선도 박사가 서문에 쓴 글이다. 을 쓴 사회학자 한완상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시대가 자신에게 자유를 허락했다면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실제로 천문학과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가 천문학자가 되지 않고 소설가가 된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들에게는 행운이다. 멋진 소설가를 잃을 뻔했다. 천문학자가 꿈이었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사람들 마음속에 우주에 대한 근원적인 동경과 그리움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지구의 인구는 70억명을 넘어섰고 계속 증..
화성에 살어리랏다 화성은 지구인들의 영원한 로망이다. 1976년 바이킹 탐사선이 화성 표면에 첫발을 디딘 이후 숱한 화성탐사선을 보내서 화성을 탐색했다. 우리는 정밀한 화성지도를 갖고 있고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도 화성에 가 본 사람은 없다. 여전히 인류가 직접 가 본 천체는 달이 유일하다. 화성에 유인탐사선을 보내는 작업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너무 멀다. 지구와 화성이 가장 가까워지는 때를 골라서 우주선을 보내도 아홉 달은 족히 걸린다. 2~3일이면 도착하는 달까지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화성에 도착해서도 한 달 정도밖에 체류할 수가 없다. 화성과 지구가 너무 멀어지면 돌아오는 데 너무 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두 천체가 다시 ..
소행성 이름 붙이기 미국 항공우주국은 ‘2004 BL86’이라는 이름을 가진 325m짜리 소행성 하나가 지구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고 발표했다. 이 소행성이 1월27일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약 3배 정도 되는 120만㎞ 거리까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일상의 크기 개념으로 보면 120만㎞ 떨어진 우주공간을 지나간 것을 ‘스쳐 지나갔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폐가 있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주공간의 광활함을 생각하면 이 정도 거리로 접근한 것은 스쳐 지나갔다는 말보다 더 극적인 말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근접한 사건이다. 2004 BL86은 이번에는 다행히 충돌 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소행성은 매번 그 궤도가 변하기 때문에 언제 충돌할지 알 수가 없다. 이 소행성은 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행성이 무슨..
어두운 밤하늘도 인류의 문화유산 얼마 전에 천체사진가 몇 명과 함께 몽골에 갔었다. 별이 잘 보이는 밤하늘을 찾아서 몇 시간을 비행기 타고 가서 또 몇 시간을 자동차 타고 달려갔다. 우리나라는 인공불빛이 너무 밝고 날씨도 좋지 않아서 사실 별을 보기에는 썩 좋은 곳이 못된다. 단 몇 시간을 사진 찍더라도 좋은 작품을 건질 수 있는 어둡고 맑고 건조한 밤하늘을 찾아서 천체사진가들은 몽골로 서호주로 관측 여행을 다니곤 한다. 나는 맨눈으로 별을 볼 욕심으로 사진기도 마다하고 쌍안경조차 없이 그저 맨몸으로 그들의 관측 여행에 동참했다. 몽골의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도 인공불빛이 없으니 아주 어두웠다. 춥고 건조한 날씨였다. 며칠 흐리기도 하고 눈발이 날리기도 했지만 맑은 날 낮에는 쪽빛 하늘에 맘껏 취했고 밤에는 별..
가을 밤하늘의 별자리 가족 가을의 한복판이다. 날씨도 스산하고 마음도 흔들리고 그리운 사람도 떠나가는 계절이다. 1등성이 없는 가을의 밤하늘도 다소 쓸쓸해 보인다. 하지만 별을 헤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흐뭇한 구석이 많은 것이 가을의 별자리다. 가을밤이 한창 무르익을 시간이면 북극성의 동쪽으로 카시오페이아 자리가 높이 떠 있다. ‘M’자나 ‘W’자보다는 ‘3’자 모양에 가까운 모습이다.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 북극성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 세페우스 자리가 있다. 카시오페이아 자리의 동남쪽으로는 안드로메다 자리가 있고 페르세우스 자리가 이어진다. 그런데 세페우스는 에티오피아의 왕, 카시오페이아는 왕비, 안드로메다는 공주 그리고 페르세우스는 공주의 남편이다. 가을밤 하늘로 산책 나온 가족 별자리다. 에티오피아의 왕 세페우스는 아름다운..
세페우스냐 케페우스냐 가을철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나는 먼저 2등성부터 4등성까지의 대표적인 다섯 개의 별이 균형 잡힌 오각형을 이루고 있는 세페우스자리부터 살펴본다. 몇 등성까지 보이는지를 보면 그날 밤하늘의 상태가 어떤지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 하늘에서 온전한 오각형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날은 그야말로 깊은 가을밤 하늘을 만끽할 수 있는 날이다. 내 눈에는 그 오각형이 예쁜 강아지 집으로 보이지만 표준 별자리에서는 에티오피아(또는 취향에 따라서 이디오피아) 왕인 세페우스가 그 주인공이다. 세페우스자리 바로 옆에는 아내인 카시오페이아가 있다. 또 그 옆으로 딸인 안드로메다와 사위인 페르세우스가 각각 별자리를 이루고 있다. 가을밤 하늘은 세페우스 가족의 향연장이라고 해도 좋겠다. 세페우..
‘사랑의 메신저’ 돌고래자리 별이 쏟아지는 해변이나 칠흑 같이 어두운 산속에서 연인과 함께 파도소리를 들으며 밀회를 즐기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여름은 밤이 짧고 날씨가 좋지 않고 습하기 때문에 별을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계절이다. 더구나 모기라도 날아든다면 애써 준비한 이벤트를 망치기 일쑤다. 그럼에도 여름밤은 기꺼이 어두운 곳으로 연인과 함께 떠나서 그 밤하늘을 쳐다보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돌고래자리 덕분이다. 돌고래자리는 4등급 별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작고 어두운 별자리다. 인공불빛이 많은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다. 어두운 곳에서 날씨가 좋을 때만 볼 수 있는 숨져진 보물 같은 별자리다. 먼저 여름철을 대표하는 1등성 중 하나인 독수리자리 알파별(견우성)을 찾아보자. 그..
북한강변, 별이 쏟아지던 밤 LA 다저스의 투수 류현진이 구사하는 빠른 슬라이더가 장안의 화제다. 류현진은 빠른 직구에 이은 세컨드 피치로 체인지업을 사용해왔다. 타자들이 그의 투구 패턴에 익숙해질 무렵 그는 빠른 슬라이더를 세컨드 피치로 들고나오면서 메이저리그 타자들 사이에서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로 확실하게 인식되어 가고 있다. 후반기 첫 등판에서도 류현진은 19개의 빠른 슬라이더를 사용하면서 고비마다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내가 처음 변화구를 배운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여느 때처럼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우리가 노는 모습을 자주 지켜보던 아저씨가 있었다. 하루는 나한테 다가오더니 자기가 한때는 야구선수였다고 소개하면서 변화구 던지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낯선 사람의 호의가 조금은 ..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지구에서 제일 가까운 별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천문우주 행사를 할 때 단골로 나오는 퀴즈다. 성급한 아이는 “달”이라고 외치고는 금방 후회한다. 잠시 후 다른 아이가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최 측이 원하는 답은 아니다. 정답은 ‘태양’이다. 태양처럼 내부에서 핵융합이 일어나 빛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천체를 ‘별’이라고 한다. 달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지만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태양빛을 반사하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별’이 아니다. 센타우루스자리 알파별은 태양계에서 제일 가까운 별이다. 그래도 빛의 속도로 4년을 넘게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이 퀴즈는 별에 대한 정의를 교육시키려는 지극히 계몽적인 목적을 담고 있다. 꽤 성공적이..
메시에 천체 “M31 잘 보이네. M33도 잡아봐. M103도 찾아보자.” 한창 무르익은 가을의 밤하늘을 즐기고 있던 우리에게 날벼락이 내렸다. 군인들이 M16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별을 관측하던 우리를 포위한 것이다. 군인들은 어둠을 타고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M16 총구를 몇몇 친구들의 가슴에 겨누면서 ‘꼼짝마’를 외쳤다.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가 사적으로 열던 관측회에 군인들이 들이닥친 이유는 어처구니없었다. M31이니 M33이니 암호 같은 말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출동 이유 중 하나였다. 군인들에겐 M16은 자동소총이고 M60은 기관총이니 M31이나 M33도 그렇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대학생 형들이 끌려가 각서 비슷한 것을 쓰는 것으로 해프닝은 마감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79년 10월..
[이명현의 스타홀릭]당신은 누구의 달입니까 얼마 전에 소백산천문대를 다녀왔다. 마침 보름날이었는데 날씨도 좋아서 오랜만에 만월을 만끽했다. 근처에 있는 영주와 단양의 도시 불빛이 있긴 했지만 국립공원 안에 있는 소백산천문대의 밤은 제법 어두웠다. 그 어둠 속에서 보름달은 다른 별들을 그 빛 속에 침잠시키면서 노란 필터를 낀 조명처럼 빛났다. 달그림자도 선명했다. 보름달이 휘영청 뜬 날은 또 다른 낮처럼 느껴진다. 강렬한 태양빛 아래서 경험하던 갈망하는 밝음과는 달리 감추는 듯 드러나는 한밤중의 밝음은 보름달의 특권일 것이다. 어릴 때는 보름달 아래에서 내 몸의 달그림자로 이런저런 패턴을 만들어보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놀이를 하곤 했었다. 나는 이런 나의 달밤의 행위를 달 샤워라고 불렀다. 철이 좀 들어서는 보름달이 떠오르는 장면을 즐겨봤다. 작..
[이명현의 스타홀릭]이제 다시 별자리를 만들련다 북두칠성은 밤을 지새우면 어느 순간에는 꼭 볼 수 있는 별자리지만 초저녁 무렵에 보기에는 봄철이 제격이다. 별자리마다 그에 얽힌 전설이 있다. 누구든 별을 올려다보면서 상상할 자유는 있었을 테니 민족마다 문명마다 각기 다른 전설을 갖고 있다. 현재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별자리는 88개인데 서양에서 사용하던 숱한 별자리를 정리하고 규격화해서 국제천문연맹에서 정한 것이다. 북두칠성처럼 북반구 어디서나 잘 보이는 별자리에는 바라보는 눈의 수만큼 많은 전설이 생겼을 것이다. 별자리의 전설이 죽음과 관련된 경우가 많은데 북두칠성은 유독 더 하다. 북두칠성은 아라비아 시대에 이미 관을 끌고 가는 모습으로 묘사되기 시작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북두칠성이 죽음을 관장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관 속에 집어넣는 칠성판도 북두칠..
‘별먼지’로 돌아간 그가 그리운 날 엊그제 내 페이스북에 친구의 생일을 알리는 메시지가 하나 떴다. 매일 있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그날은 좀 특별했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어느 천문학자의 생일을 알리는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들어가 봤다. 벌써 몇 사람이 글을 남겨놓았다. ‘박사님! 페이스북에서 생일이라고 연락이 오네요. 어찌 생각을 해야 하는지 착잡합니다. 잠시 술 드시고 허허허 웃으시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내 심정도 그랬다. 봄이다. 겨울철 내내 밤하늘을 지키던 오리온자리가 초저녁인데 벌써 서쪽 하늘로 넘어가버릴 기세로 기울어있다. 별 4개가 큰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 오리온자리의 가운데에는 별 3개가 약간 비스듬하게 놓여 있다. 삼태성이라고 부른다. 그 바로 아래쪽을 보면 도시에서도 별 한두 ..
네팔토끼자리 얼마 전에 네팔 여행을 다녀왔다. 자주 갈 때는 거의 매년 나들이를 하다시피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년 동안 발길이 끊어졌었다. 네팔에 갈 때마다 시간을 내서 꼭 찾는 곳이 있다. 카트만두에 있는 힌두교 사원인 파슈파티나트다. 네팔에서 제일 번창한 힌두교 사원이기도 하고 인도와 통틀어서도 4대 힌두교 사원에 속하는 곳이다. 나는 힌두교 신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원 안에 들어갈 수가 없다. 사원 안의 모습이 늘 궁금하긴 했지만 힌두교인으로 가장해서 구경하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사원 앞에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을 따라서 화장터가 있다. 강 건너에는 작은 탑들이 즐비한 언덕이 있다. 내가 즐겨 찾는 곳이 바로 그 언덕이다. 그곳에 앉아서 화장터와 사원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시간..
쌍둥이자리 사람들은 모두 다 속았다 겨울철을 대표하는 별자리로 오리온자리를 꼽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형상이 독특해 눈에 잘 띄고 1등성을 두 개나 갖고 있는 밝은 별자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오리온자리하고만 보내기에 겨울 밤하늘에는 밝고 아름다운 별들과 별자리들이 너무 많다. 오리온자리에서 왼쪽 위로 조금 올라가면 나란히 붙어 있는 밝은 별 두 개를 만날 수 있다. 방향으로 치자면 북동쪽이다. 왼쪽에 있는 별이 1등성인 폴룩스이고 오른쪽에 있는 별이 2등성인 카스토르다. 1등성과 2등성이라고는 하지만 정확한 별의 밝기는 각각 1.2등급과 1.6등급이기 때문에 밝기 차이가 크지 않다. 쌍둥이별이라고 불릴 만하다. 카스토르가 형이고 폴룩스가 동생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더 밝은 별이 형이고 어두운 별이 동생일 것 같지만 ..
거꾸로 오리온 자리 지구는 태양 주위를 1년에 한 바퀴씩 돈다. 그런데 완전한 원을 그리면서 도는 것이 아니라 약간 찌그러진 타원궤도로 돌고 있다. 타원궤도를 돈다는 것은 초점이 두 개가 있다는 뜻이다. 그 초점 중 하나에 태양이 위치하고 있다. 당연히 지구가 태양에 가장 가까워질 때가 있을 것이다. 이때를 근일점이라고 한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원일점에 있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태양에 제일 가까울 때가 여름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겨울이다. 지구의 자전축이 똑바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수직에서 오른쪽으로 23.5도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근일점 근처에서 지구는 태양에 제일 가깝기 때문에 태양열을 더 많이 받을 것이다. 당연히 더 따뜻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근일점 근처에서 ..
[이명현의 스타홀릭]죽어서도 사는 별 크리스마스 철이다. 물론 예수는 크리스마스에 태어나지 않았다. 예수가 태어난 때는 기원전 몇 년 무렵의 4월 어느 날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개연성 높은 추정이다. 예수가 태어나던 때 베들레헴에서 보였다는 별이 실제 있었다고 믿는 기독교를 추종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베들레헴 별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는 작업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그 별을 구태여 탄생 신화와 연결시키지 않아도 예수라는 사람은 우리들에게 그 자체로도 이미 소중한 별이다. 예수는 긴 머리를 휘날리는 늘씬한 백인이 아니라 우리가 중동 지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검고 둥그런 얼굴에 곱슬머리를 한 자그마한 청년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예수가 꿈꿨던 세상은 교회가 없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종교도 없고 권력도 없는 존 레넌이 꿈꿨던 그런 세상이..
마차부자리 엡실론별 괴담 2009년에 SF 작가들과 함께 소백산 천문대에 간 적이 있다. 마침 눈이 내렸고 눈꽃이 만발한 상태였다. 바람도 제법 불어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누군가가 눈이 바람에 휘날리고 옅은 안개가 낀 천문대의 분위기가 아주 스산하다고 말하면서 혹시 괴담이 있는지 물었다.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려 봐도 괴담은 찾을 수 없었다.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분에게 물어봐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실망하는 그 작가를 위해 나는 기억 저편에 있던 추억을 하나 꺼내 이야기해 주었다. 괴담이라면 괴담일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겨울의 밤하늘은 무척 화려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별 중 1등성은 15개 정도 된다. 그 중 7개를 겨울철 밤하늘에서 볼 수 있으니 화려하다는 말을 쓸 수밖에 없다. 별의 겉보기 밝기는 ..
[이명현의 스타홀릭]‘스타’ 소녀시대와 ‘소녀시대 별’ 히식스(HE6)라는 록밴드가 있다. 어린 시절 나는 히식스의 음악에 매혹되었는데 그들의 음악을 듣기 위해서 별을 팔아먹은 적도 있다. 이미 히식스가 풍미하던 시절이 지나간 후였으니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그들의 음악을 듣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마침 동네에 살고 있던 한 친구 집에 전축도 있었고 히식스의 음반도 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히식스 별’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황소자리에 있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바로 히식스 별이다. 물론 공식적인 것은 아니고 내가 그냥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었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수많은 젊은 별들이 모여 있는 별들의 집단이다. 도시에서도 맨눈으로 서너 개의 별은 볼 수 있고 날씨가 아주 좋으면 여섯 개까지도 볼 수 있다. 별들이 옹기종기 ..
가을 편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고은의 ‘가을 편지’ 첫 구절이다. 글로만 옮겨 놓아도 김민기의 낮은 목소리가 가을 안개처럼 몰려올 것만 같다. 1977년에 발사했던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사실 ‘태양계의 끝’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태양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들이 따라붙는다. 태양의 어떤 영향 말인가? 그리고 얼마나? 과학자들이 태양계의 끝에 대해 토론하는 동안에도 보이저호는 지구인의 ‘편지’를 간직한 채 고독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보이저호에는 ‘골든 레코드’라고 불리는 LP판 3장이 실려 있다. 천문학자..
별 하나에 선생님, 선생님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의 첫 구절이다.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철 밤하늘에는 돋보이게 빛나는 별이 여럿 있다. 도시 불빛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스피카나 아크투르스, 직녀성, 견우성, 시리우스, 카펠라 같은 1등성 별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가을의 밤하늘은 정말이지 쓸쓸하다. 1등성이 없을 뿐 아니라 별들의 밝기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곁에 없는 사람이 마냥 그리워지는 때가 가을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왠지 외로워지는 것도 가을이다. 가을철 별자리는 쓸쓸함과 외로움과 그리움의 무늬를 아스라이 새기고 어둠 속에 침잠해 있다. 야속하게도 가을의 언어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북극성을 가운데 두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 자리가 서로를..
마음의 착시 현상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김빠진 맥주 한 캔을 들고 앉아서 빼곡한 고층 빌딩 사이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본 적이 있다. 약간 취기가 오른 탓도 있었겠지만 왠지 늑대가 나와야 할 것 같은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뱀파이어가 날뛸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스쳐 지나갔다. 보름달이 뜰 때가 되면 서울 집 옥상에 올라가 떠오르는 달을 쳐다보곤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럴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풍성해지곤 했다. 서양에서는 보름달을 불운이나 비극의 상징으로 보지만 동양에서는 풍요로움의 징표로 보름달을 맞이한다. 한가위 보름달이나 정월 대보름달은 늘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고 달이 저렇게 컸었나 하면서 한번쯤 흠칫 놀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가위 보름달이나..
북두팔성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아빠, 왜 북두칠성야?/ 별이 일곱 개니까/ 그럼 내가 별이 되면?/ 그야 북두팔성이지”. 정호승 시인의 ‘북두칠성’ 전문이다. 북두칠성이 속한 큰곰자리는 낯설지만 북두칠성은 왠지 친근하다. 북쪽 밤하늘에서 늘 우리와 함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별들이다. 지구는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축을 중심으로 돈다. 북극성은 우연히 자전축이 가리키는 방향에 위치한 별이다. 그래서 사시사철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두칠성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 한 바퀴씩 돌고 있으니 늘 보일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동시에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을 한다. 그래서 다른 날 같은 시간에 보이는 북두칠성의 위치가 달라진다. 매일 밤 8시에 북두칠성을 보는 수고를 한다..
춘향별과 이도령별을 보내는 시간 폭염이 조금 수그러드니 가을 냄새가 난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문득 봄이 아스라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여름철 밤하늘에는 가을이 깃들어 있다. 봄도 아직 남아 있고 겨울도 슬그머니 찾아와 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면서 매일매일 위치가 조금씩 변한다. 지구에서 바라보는 별들의 위치도 조금씩 달라진다. 계절마다 다른 별자리가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면서 동시에 하루에 한 바퀴씩 자전을 한다. 하룻밤 사이에도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별들이 계속 바뀐다는 이야기다. 여름에도 초저녁 서쪽 하늘에는 봄철 별자리가, 동쪽에는 가을철 별자리가 보인다. 새벽이 되면 겨울철 별자리가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것도 볼 수 있다. 가을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는 여름의 끝자락이야말로 봄과 ..
유성우 오시는 날 “밤하늘에 긴 금이 갔다/ 너 때문이다// 밤새도록 꿈꾸는/ 너 때문이다”. 강은교 시인의 ‘별똥별’ 전문이다. 혜성이나 소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돌조각이나 태양계를 떠돌던 먼지가 지구의 중력에 붙잡혀서 떨어지면서 대기와 마찰을 일으켜 불타는 현상을 별똥별이라고 한다. 유성이라고도 부른다. 보통 수십 분의 1초에서 수 초 동안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나서 밤하늘을 밝혔다가 사라진다. 소원을 빌기에는 아쉽기만 한 시간이다. 하지만 별똥별이 되는 돌조각이나 먼지의 크기가 보통 굵은 모래알 정도라는 사실을 안다면 큰 불평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작은 찌꺼기가 짧지만 장렬하게 자신을 불태워서 밤하늘에 촛불 하나를 켜는 것이니까. 운이 좋으면 강은교 시인의 시구처럼 밤하늘을 이등분하는 밝은 별똥별을 만..
환갑 맞은 DNA의 미래 2013년은 DNA의 이중 나선 구조가 밝혀진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가끔 DNA 발견 60주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DNA의 첫 발견은 훨씬 이전인 1869년이다.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 DNA는 유전 물질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DNA가 유전 물질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이 독특한 물질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느냐를 알기 위해 여러 연구진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4월25일, 과학잡지 네이처에 한 페이지 분량의 짧은 논문이 게재된다. 저자는 단 두 사람,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제목은 ‘핵산의 분자 구조: 데옥시리보핵산(DNA)의 한 구조’. 그리고 이 논문은 전설이 되었다. 놀라운 전설의 두 주인공들은 곧 유..
‘창과 방패’ 암호의 세계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혹시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동창회 모임 같은 곳에서 다음과 같은 내기를 해 보라. 어떤 축구장에 23명의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축구의 한 팀은 11명이므로 2개 팀이면 선수가 22명이고, 여기에 심판 1명을 포함하여 23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축구 경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 축구장에 모여 있는 23명 중에 생일이 같은 사람이 한 쌍 이상 있느냐이다. 축구장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므로 출생 연도는 신경 쓰지 않고 생일만을 고려한다고 하자. 1년이 365일이고, 두 사람의 생일이 같을 확률은 365분의 1이므로 23명 정도로는 생일이 같은 사람이 한 쌍 이상 나올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대..
책 보고 하는 과학 모 영화잡지의 짤막한 20자 영화평 중 잊지 못하는 평이 있다. “책 보며 찍은 영화”라는 평이다. 그런데 이 평은 호평이었을까, 혹평이었을까? 분명 책을 봤다는 것은 공부를 했다는 뜻일 텐데 아쉽게도 영화는 혹평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데는 책에서 보고 읽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동서고금에 책은 공부와 학문의 대명사였다. 자고로 자녀가 책 읽는 것을 싫어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하지만 책 쓰는 것이 패션이라고까지 일컬어질 정도로 다양한 책이 쏟아져 나오는 이 시대에 책은 좋은 선생 노릇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나쁜 가이드 역할도 한다. 과학에서는 특히 그렇다. 대부분의 학문은 축적적이지만 재현 가능한 사실을 다루는 과학은 특히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거나 교정되거나 좀 더 ..
짝퉁 프로그래머로 사는 법 얼마 전 수십만달러의 연봉을 받는 미국의 40대 프로그래머가 중국의 한 회사에 자기 수입의 5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5만달러를 주고 대신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하고, 자신은 매일 인터넷 서핑만 하다가 적발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프로그램이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었고, 이것을 항상 제시간에 맞추어 제출하였기 때문에 지난 몇 년간 근무평가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최고개발자의 지위까지 올라간 것으로 보도되었다. 가히 짝퉁 프로그래머의 원조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실제로 어떤 사람이 짝퉁 프로그래머인지 아닌지를 감별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사에 소개된 이 사람은 자신의 보안 인식표를 중국에 우편으로 보내 중국에서 이 프로그래머의 아이디로 일과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