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실현하기 위해 천문학을 공부해야 한다는 신념이 학창시절 내내 이어졌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인지, 바다 한번 구경해보지 못한 육지 촌놈은 해양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늘을 보고 걷다가 바다에 빠진 꼴이었다.” 황선도 박사가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서문에 쓴 글이다.
<민중과 지식인>을 쓴 사회학자 한완상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시대가 자신에게 자유를 허락했다면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실제로 천문학과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가 천문학자가 되지 않고 소설가가 된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들에게는 행운이다. 멋진 소설가를 잃을 뻔했다. 천문학자가 꿈이었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사람들 마음속에 우주에 대한 근원적인 동경과 그리움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지구의 인구는 70억명을 넘어섰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의 천문학자 수는 국제천문연맹의 보고에 따르면 1만명 정도 된다. 나처럼 현장 연구에서 은퇴한 천문학자의 수를 빼면 그 수는 더 줄어들 것이다. 그 많던 어린 천문학자 지망생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천체사진가 권오철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지붕 세가족>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던 천문학과 출신 백수의 모습 때문에 천문학과에 가면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다. 천문학자가 꿈이었던 그는 공대에 진학했다. 배우 고수가 전파천문학을 전공하는 재벌 2세로 나왔던 <요조 숙녀>라는 드라마를 보고 고3 소녀들의 천문학과로의 행렬이 이어졌다는 근거 없고 희망만 섞인 소문이 돌기도 했다. 다른 꿈을 찾아, 또 현실의 벽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천문학자의 꿈을 접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가슴속의 별까지 지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 시절 천문학자를 꿈꿨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흥미롭고 즐겁다. 그들이 가지 못한 길을 간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데 내가 쓰인다는 점이 좋다. 신기해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나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존재가 천문학자니 그 사람들이 천문학자를 처음 만났다면서 흥분하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별을 마음속에 간직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즐겁다. 천문학자여서 좋은 점 중 이것이 으뜸이다.
추석연휴 나흘째인 9일 밤 서울 남산 하늘 위로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이번 보름달이 올해 보름달 가운데 두번째로 큰 ‘슈퍼문’이라고 밝혔다. _ 연합뉴스
천문학자들은 밤에만 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다른 분야의 학자들과 마찬가지다. 밤낮없이 연구에 매진한다.
다만 관측천문학자들은 천체가 보이는 밤에 관측을 해야만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나 같은 전파천문학자는 낮에도 관측을 한다. 물론 밤에도. 밤에 관측하는 것이 싫어서 태양을 전공했다는 친구 채종철 교수의 농담 섞인 말이 걸작이다. “별 볼 일 없지만 해 볼 만합니다.” 천문학자들은 여행을 자주 한다. 관측을 위해 사람들이 잘 가지 못하는 오지로 여행을 한다. 전 세계 천문학자의 수가 많지 않아서인지 국제 공동연구가 활발하다. 연구와 발표를 위해 자주 여행을 한다.
미국에 있는 전파천문학자인 친구 윤민수 교수는 물리학과 천문학 사이에서 갈등하다 ‘여행’의 매력 때문에 천문학을 선택했다는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천문학자들에게 여행이란 일상이다. 그렇다고 천문학자들이 우주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주비행사들의 몫이다.
천문학자라고 하면 얼마나 큰 망원경을 갖고 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자기 망원경이 없다. 천문학자들이 사용하는 망원경은 주로 오지에 있는 거대한 망원경이다. 경쟁을 통해 짧은 시간을 얻어서 관측을 한다. 별자리에 대한 질문도 자주 받는다.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별자리에 대해 잘 모른다. 천문학과 별자리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타박을 할지도 모른다. 나같이 아마추어 천문가의 길을 걷고 난 후 천문학자가 된 경우에나 별자리에 대해서 관심도 있고 지식도 있다. 별자리 운세를 물어보면 천문학자들은 패닉에 빠진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점성술은 과거의 문화유산일 뿐이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천문학자라고 하면 날씨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정말 모른다. 그건 대기과학자들의 몫이다. 더 나아가서 역학 운운하고 사주팔자 이야기를 꺼내면 난감해진다. 힘이 쭉 빠진다. 글을 쓰다보니 신문마다 오늘의 별자리 운세를 버젓이 연재하는 나라에서 점성술가가 아니라 천문학자로 (또는 과학자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참담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한 시절 천문학자를 꿈꿨던 별을 사랑하는 숱한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천문학자의 삶을 걸어온 것이 뿌듯하기도 하다. 그들과 함께 별을 등불 삼아 별을 헤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지난 칼럼===== > 이명현의 스타홀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도 고정 모드 (0) | 2015.05.06 |
---|---|
화성에 살어리랏다 (0) | 2015.02.26 |
소행성 이름 붙이기 (0) | 2015.01.28 |
어두운 밤하늘도 인류의 문화유산 (0) | 2014.12.03 |
가을 밤하늘의 별자리 가족 (0) | 201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