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항공우주국은 ‘2004 BL86’이라는 이름을 가진 325m짜리 소행성 하나가 지구 주변을 스쳐 지나갔다고 발표했다. 이 소행성이 1월27일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약 3배 정도 되는 120만㎞ 거리까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는 것이다. 일상의 크기 개념으로 보면 120만㎞ 떨어진 우주공간을 지나간 것을 ‘스쳐 지나갔다’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폐가 있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주공간의 광활함을 생각하면 이 정도 거리로 접근한 것은 스쳐 지나갔다는 말보다 더 극적인 말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근접한 사건이다. 2004 BL86은 이번에는 다행히 충돌 없이 스쳐 지나갔지만 소행성은 매번 그 궤도가 변하기 때문에 언제 충돌할지 알 수가 없다.
이 소행성은 달을 갖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소행성이 무슨 달이냐고? 2004 BL86이 이번에 지구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직경 70m짜리 동반 소행성이 있는 것이 관측되었다. 어떤 천문학자는 이 천체를 2004 BL86의 달이라고 부르고 다른 천문학자는 동반 소행성이라고 부른다. 행성만 달을 갖고 있다는 통념을 깨는 또 다른 관측 결과였다. 발견된 소행성은 국제천문연맹이 정한 방식에 따라서 날짜 정보가 곁들여진 이름이 붙여진다. 더 많은 관측을 통해서 진짜 소행성임이 확인되고 나면 발견자가 마음대로 소행성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이름만 아니라면 무엇이든지 허용된다. 2004 BL86은 개인이 발견한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소행성을 모니터링하는 LINEAR 프로젝트팀에서 발견했다. 아직 고유한 이름을 붙이지는 않은 상태인 것 같다.
소행성 이름 중에 B612가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누군가가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별의 이름인 B612를 자신이 발견한 소행성의 이름으로 붙여놓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나도 궁금해서 구글 검색을 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46610 Besixdouze’라는 소행성이 있었다. 1993년에 발견된 이 소행성의 이름이 B612하고 무슨 상관일까? ‘B612’를 차례로 프랑스어로 읽으면 ‘Besixdouze’가 된다고 한다. 나는 프랑스어를 모르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하기로 했다. ‘46610’을 16진수로 표기하면 ‘B612’가 된다고 한다. 계산하면 되겠지만 이것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소행성을 발견한 사람들의 어린 왕자 사랑과 약간은 현학적인 취미가 결합해서 이런 재미있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 그냥 ‘B612’라고 붙이면 뭐 어때서, 이런 투정도 잠시 해본다. 어쨌든 어린 왕자의 별인 B612는 하늘에 떠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B612’라는 이름의 소행성이 있는지 찾아보시기 바란다.
소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금성과 화성 사이의 궤도를 도는 장면 (출처 : 경향DB)
우리말로 된 소행성도 여럿 있다. 처음에는 일본의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한국의 지인들 이름이나 역사 속 인물들의 이름을 자신들이 발견한 소행성에 붙였다. 고마운 일이다. 최근에는 공주시와 일본의 아마추어 천문가가 합심해서 ‘공주’라는 이름의 소행성 명명식도 했다. 앞으로도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이름을 계속 소행성에 붙일 계획이라고 한다. 고맙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소행성을 발견했던 아마추어 천문가 이태형은 그가 발견한 소행성에 ‘통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천문연구원이 발견한 여러 소행성들에는 장영실 같은 역사 속 과학자들의 이름이나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현대적인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던 천문학자 이원철의 이름이 붙었다.
통일이라는 소행성을 갖게 된 일이나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과학자들의 이름을 소행성에 붙인 것이나 모두 멋지고 경사로운 일이다. 하지만 늘 한 가지 아쉬운 마음이 남았다. 별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의 이름을 소행성에 붙이면 어떨까.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이 물든 밤같이 까만 눈동자’, 이런 아름다운 별노래를 부르는 가수 윤형주의 이름을 소행성에 붙이면 어떨까. 망원경의 한 장치인 아이피스를 마스코트처럼 늘 지니고 다닌다는 가수 겸 배우 이정현의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그녀는 블랙홀에 빗댄 사랑이야기를 ‘GX 339-4’라는 노래로 만들기도 했었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을 소행성 이름으로 올리면 또 어떨까. 전지현이나 김수현의 이름을 하늘로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미 별이 된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서 영원히 기억하면 또 어떨까. 소행성 ‘세월호’는 어떤가. 두고두고 그 이름을 부르면서 성찰하고 싶다. 공주도 좋고 통일도 좋고 장영실도 좋지만 이제는 눈을 좀 돌릴 때가 된 것 같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그 이름을 하늘에 새기는 것. 가슴 아픈 사건을 하늘에 새기고 성찰하고 실천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말로 국가의 품격을 한껏 높이고 문화적인 민족으로 거듭나는 지름길일 것이다.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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