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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둥둥 Book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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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지키겠다는 무인시스템이 부른 '인간성 없는' 전쟁의 시대 그는 전문가였다. 이라크 반군의 사제 폭발물을 추적하고 해체하는 팀 내에서 가장 용감하고 실력이 뛰어난 병사였다. 늘 선두에서 위험한 업무를 도맡으면서 불평 한마디 없었다. 허나 그날은 운이 좋지 않았다. 그의 바로 아래에서 폭발물이 화염을 내며 터졌다. 다른 병사들의 목숨을 수도 없이 구했던 그였지만,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다. 최고의 동료를 잃은 부대원들은 울컥하는 심정으로 그의 흔적을 수습해 헬리콥터에 실었다. 그날 밤 해군 하사관 팀장이 정성껏 작성한 부음 서신이 바다 건너 미국 보스턴에 도착했다. “그래도 모친에게 전사통지서를 보낼 필요가 없어 다행입니다.” 그 병사의 정체는 아이로봇(iRobot) 사의 팩봇(PackBot). 미 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의 요청으로 1998년 개발된..
천안함, 과학자 그리고 육하원칙 설연휴 직후부터 3일에 한번씩 새벽 5시가 다 되어 집에 겨들어옵니다.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도 적응이 쉽지는 않습니다. 점심 때 일어나면 평일에도 반나절의 여유가 생기지만, 이 시간을 생산적인 일로 승화할 정신상태에 이르지 못합니다. 멍하게 드라마나 보다가 다시 잠을 청하는 식이죠. 덕분에 새벽마다 새로 사귀었던 치킨, 닭발, 오징어순대 등 줄기찬 야식은 제 몸 속으로 들어와 에너지가 되었다가 지방으로 안착하면서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 몸의 질량은 보존되지 못하였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5번째 야근을 하고 돌아온 어제는 그나마 정신이 조금 말짱한 듯하여 책을 한권을 읽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발간된 입니다. 중간중간 멍 때려도 2시간이면 테이프를 끊을 수 ..
사이언스 톡톡 필자들의 송년 선물 ‘올해, 기억나는 그 책’ 또 하루 멀어져갑니다. 또 한 살 먹어갑니다. 새해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이언스 톡톡’ 운영자 임소정(쏘댕기자)입니다. ‘사이언스 톡톡’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해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 모듬세트를 준비했습니다. 필자분들께서 한 권씩 추천해주셨고, 꼭 올해 나온 신간에 국한하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책은 두고두고 사랑받는 거니까요. 그동안 ‘사이언스 톡톡’의 문을 ‘톡톡’ 두드려주신 여러분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이 글로 대신합니다. 복된 새해 맞으세요! (나이는 생일날 먹기로 해요, 우리) 1. IT 칼럼 필자 채진석 교수 추천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암호의 역사는 암호를 독점하려는 빅 브라더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암호학 반군과 사이퍼 펑크족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다. 암호문을 ..
낚시,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미항공우주국(NASA)이 ‘비소 먹는 미생물’의 존재를 발표한 지 1주일 남짓 지났습니다. NASA가 발표한다는 것과 ‘외계 생명’이라는 단서가 주는 기대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고, 실제 내용을 보고 나서는 ‘낚였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엠바고를 깨가며 미리 보도를 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외계 생명의 가능성에서는 이제 한 발짝 멀어진 것 같습니다. 후속보도들도 극한환경에서 생존하는 새로운 생명체의 발견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지만, 다른 과학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아직 더 밝혀져야 할 부분들을 제시하거나 근거논문 자체의 결함을 지적하는 쪽으로 정리되는 모양새입니다. 영국 데일리 메일 온라인판을 인용한 연합뉴스의 9일 보도는 캐나다와 미국 일부 학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실험 절차상 대조군 ..
'과학'이라 쓰고 '소망'이라 읽는다(11월27일 수정)  지난 6월 발간된 은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과학의 불편한 뒷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엘 고어 덕분에 유명해진 ‘불편한 진실’이라는 단어 자체의 신뢰감에 이끌려 책장을 열면 저자는 서문에서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꾸고 미래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위대한 발견’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사례들을 소개하겠다고 밝힌다. 특히 그는 이들이 정계와 산업계의 입장에서 ‘불편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은폐되었다고 주장한다. 고백하자면 평소 음모론을 흠모해왔던 나는 기꺼이 책장을 펼칠 수 있었다. 1. 전기자동차를 석유업계가 죽였다? - 개연성이 있다. 90년대 후반 GM이 10억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해 개발한 전기자동차가 캘리포니아주에서 성공적으로 ..
노벨상이 아니면 이 상이라도!! 이 상은 무엇일까요? 1. 매년 생물학, 의학, 물리학, 평화, 경제학 부문을 시상한다. - 다만, 안전공학, 환경보호 등 해마다 신설되는 부분이 있다. 2. 매년 대부분의 사람이 훌륭하다고 말할만한 업적에 돌아간다. - 다만, 바보같을 수도 있다. ‘다시는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업적’이 선정 기준이다. 3. 누구나 추천할 수 있고 개인과 단체 모두 수상 자격이 있다. - 다만, 가공의 인물이나 업적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4.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시상한다. - 그들은 새로운 수상자들의 업적이 진짜인지 의심하기도 한다. 5. 수상을 거부할 수 있다. - 직장 상사나 정부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믿는 경우에 한한다. 다만, 시상식에만 안 나타나거나 못 나타나는 (주로 수감..
지구 온난화, 믿으십니까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 작년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고, 올 여름은 '우기 '라고 우기면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궂었습니다. 그리고 더위가 꼬리를 길게 늘이고 머뭇거리던 '철없는 가을'이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원래 10월 중순 즈음의 날씨가 어땠는지는 기억도 잘 안나니 그저 더우면 덜 입고 추우면 더 입으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전지구적으로 이상한 날씨의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는 사실일까요? 과연 지구가 더워지고 있을까요? '기후변화 스캔들'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제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진보주의자들이 기후변화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일부 과학자들의 반박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
도도가 들려주는 '멸종의 노래' 섬에는 거인, 난쟁이, 잡종 예술가, 그리고 온갖 종류의 비순응주의자들이 존재한다. 마다가스카르섬에는 몸길이가 겨우 1인치 밖에 안 되는 지상에서 가장 작은 카멜레온종(이것은 육상 척추동물 중 가장 작은 동물이다)이 살고 있다. 마다가스카르는 지금은 멸종한 피그미하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코모도 섬에는 거대한 도마뱀이 살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바다를 헤엄치는 이구아나가 다른 파충류의 신체적 한계를 비웃으며 바다 밑에서 해초를 뜯어먹으며 살아간다. 뉴기니의 중앙 고원지대에서는 리본꼬리 풍조를 볼 수 있다. 인도양의 작은 산호섬 알다브라에는 갈라파고스 거북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위용을 가진 큰거북이 살고 있다. 세인트헬레나섬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이언트집게벌레종-세상에서 가장 크고..
"우주야, 너 왜 태어났니" 과거에는 말입니다. 과학자들의 본업 중 1위는 목사, 2위는 교수였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어쩐지 과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작가...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하더란 말이죠. 과학 법칙은 새로 발견될 때마다 큰 저항을 겪지만 결국 이전 법칙들을 밀어냈습니다. 하지만, 신의 존재만큼은 지우지 못했습니다. 분명 자연을 움직이는 법칙들이 있는데, '어떻게'는 설명이 되어도 '왜'는 모르니까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아니라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였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우주가 무가 아니고 유인 것은 자발적 창조의 증거다"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지난달 초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과학과 종교 사이의 해묵은 논쟁을 부활시켰던 스티븐 호킹 박사의 발언입니다.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인류..
기분이 들쭉날쭉 하십니까? '호선생'을 의심하십시오 마르코 라울란트의 와 빌리 골드버그·마크 레이너의 두 권의 호르몬 관련 책에 대해 극과 극의 서평을 썼더랬습니다. 사실 호르몬에 관한 책은 가볍게 화장실에서 한장씩만 읽어도 일상에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에서 시차 적응을 위해 깊은 잠을 자고 싶다면 멜라토닌을 미리 사간다던지, 우울할 땐 호르몬 탓도 해본다던지 하는 식이지요. 하지만 너무 가볍다보면 다소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한쪽 책의 유머코드가 저와 잘 맞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실은 두 권을 연달아 읽었기 때문에 더 불쾌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한 법인가 봅니다. 지금 나는 우울하다. 맛있는 아침잠을 빼앗아간 코르티솔 씨, 그리고 밤사이 나를 떠나버린 세로토닌 씨 때문이다. 하지만 곧 행복해질 것이다. 이 ..
당신의 뇌를 믿지마세요 "내 왼손이 날 죽이려고 해요"라고 112에 신고한다면 경찰은 와줄까요? 정말 왼손이 제멋대로 목을 조르려 하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죽었습니다. 왼손 탓이냐고요? 아뇨, 다시 찾아온 뇌졸중 탓이었습니다. 첫번째 뇌졸중은 그녀의 좌뇌와 우뇌 사이를 끊어버렸죠. 그녀는 한 때 자살충동이 있었는데요, 우뇌에 남아있던 자살충동이 그녀를 죽이려고 한 것이랍니다.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은 이런 신기한 이야기들로 가득차있습니다. "정말 재미있다"고 주변에 추천했는데, 다들 "정말 어렵다"고 화답하네요. 아아~ “나도 알아요. 내 왼팔은 잘려나가고 없다는 걸. 하지만 왼손 손가락이 손바닥을 후벼파서 너무 아파요.” 환상사지. 사고나 수술로 없어진 팔이나 다리가 그 후에도 유령처럼 환..
모르는 게 약인 '일상의 비밀' 얼마 전 리모델링을 마친 교보문고에서 앞쪽에 전시된 책들을 한바퀴 구경했습니다.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시크릿 하우스'는 아직도 그곳에 있더군요. 4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도 기억은 새록새록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은 다음부터, 식탁과 조리대에 흘린 음식을 집어먹는 데 주저하기 시작했고 화장실 물을 내릴 땐 변기 뚜껑을 닫아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곁에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과 내가 아무 생각없이 먹고 있었던 알 수 없는 화학물질들의 집합체들에 대한 폭로! 알고보면 집에 가만히 있는 것도 두려울지 모른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주시길. ‘따르릉’ 자명종과 함께 시작하는 어느 남녀의 하루. 씻고 먹고 입고 출근했다가 퇴근 후 손님을 접대하고 씻고 잔다. 아차, 책의 주인공이 집주인 남녀가 아니라는 것..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누가 읽긴 했냐고? 논문은 어려운 게 좋을까요, 쉬운 게 좋을까요? 늦게 시작한 대학원 공부로 내년 중 논문을 써야하는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사실 논문이라는 것을 직접 찾아 읽어본 것도 올해가 거의 처음인데요, 주장이 흥미롭더라도 그 근거를 옛날 어느어느 논문에서 어떻게 나왔더라는 걸 다 밝혀써야하다보니 어렵고 지루한 부분도 좀 있더군요. (방금 갓 논문을 쓰고 영국에서 돌아와 복직한 동기는 "논문은 재미있는 게 좋아"라고 하는 군요.) 태양중심설이 처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던 것은 신이 만든 세상에 대한 믿음을 깨고싶지 않았기 때문도 있겠지만, 코페르니쿠스가 내놓은 논문이 너무 어려워서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학비평가 아서 케스틀러의 주장에 따르면 그 책은 정말 파리 날렸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오언 깅거리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