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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둥둥 Book소리

사이언스 톡톡 필자들의 송년 선물 ‘올해, 기억나는 그 책’

 

또 하루 멀어져갑니다. 또 한 살 먹어갑니다.

새해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이언스 톡톡’ 운영자 임소정(쏘댕기자)입니다.


‘사이언스 톡톡’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올해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 모듬세트를 준비했습니다.
필자분들께서 한 권씩 추천해주셨고, 꼭 올해 나온 신간에 국한하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책은 두고두고 사랑받는 거니까요.


그동안 ‘사이언스 톡톡’의 문을 ‘톡톡’ 두드려주신 여러분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이 글로 대신합니다.
복된 새해 맞으세요! (나이는 생일날 먹기로 해요, 우리)

 


1. IT 칼럼 필자 채진석 교수 추천 <암호혁명>
 

스티븐 레비, 이충호 옮김, 경문사(2005)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암호의 역사는 암호를 독점하려는 빅 브라더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암호학 반군사이퍼 펑크족의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다.


암호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키(key)라는 것이 필요한데,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암호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암호화와 복호화에 모두 동일한 키를 사용하는 대칭 키 기반 암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칭 키 암호 시스템에서는 암호문과 함께 키를 안전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키를 전달하는 대상이 많아지게 되면 안전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인터넷 쇼핑, 전자 상거래, 전자 금융 등의 서비스를 사용하게 되면, 모두에게 동일한 키를 안전하게 나누어 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책에서는 개인용 컴퓨터가 막 등장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에 향후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예상하며 암호혁명을 시작한 무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MIT 출신 해커와 스탠퍼드 대학원생에서부터 시작된 암호학 반군이 암호학계의 빅 브라더인 미국 국가안보국(NSA)을 굴복시키며 인터넷에서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내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대칭 키 암호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공개 키 암호 체계를 처음으로 발견한 휘트필드 디퍼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짐 필머만이 이끄는 '사이퍼펑크 족'이 암호화 기술을 대중에게 무료로 배포하기 위해 벌인 전투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대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혁명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2. 물리학 칼럼 필자 김승환 교수 추천 <왜 인간인가?>


마이클 가자니가, 박인균 옮김, 추수밭(2009)


인간은 과연 지구상에서 특별한 존재인가?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왜 인간인가(원제 Human)>의 저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에서 찾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마이클 가자니가는 인지신경과학자의 전문가적 시각과 경험으로 뇌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침팬지는 인간의 사촌인가? 동물의 경우에도 도덕심이 있을까? 의식있는 기계가 가능한가?” 그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인간의 사회성’과 연관짓는다.


필자도 복잡계 물리학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의식 등 고등한 정신활동이 어떻게 우리 뇌가 다양한 자극에 반응해 스스로 복잡한 구조를 조직화하는 데 연계되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다. 저자는 지난 100여 년간 뇌과학의 눈부신 성과를 기초로 우리 인간의 뇌가 어떠한 특유의 구조로 만들어졌고, 또한 어떠한 특별한 방식으로 진화해온 지를 이해하고자 한다.


저자에 따르면 수천년 동안 인간은 파이보그 (fyborg, ‘기능적 사이보그’라는 뜻)였다. 삶을 쉽게 만드는 도구와 기술에 의존하여 살아온 존재라는 것이다. 현재는 스마트폰 등에 중독된 인간은 언젠가 SF 영화와 같이 지능향상 칩, 기억 칩 등으로 무장한 사이보그화를 꿈꾸게 될 것이다. 아이로니칼하게 로봇도 점차 인간을 꿈꾸고 지능적인 방향으로 공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첨단과학의 최전선을 다루는 방대한 저술이지만, 정보와 재미를 독자들에게 친숙한 형태로 잘 담아내어 아마존이 선정한 ‘2008년 과학분야 올해의 책‘의 영예도 얻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내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나의 뇌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깨닫기를 바란다.




3. BT칼럼 필자 이한승 교수 추천 <막걸리, 넌 누구냐?>

허시명, 예담(2010)


막걸리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강추한다. 막걸리의 역사, 효능, 전국 유명막걸리에서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요약해 놓은 책이다. 무엇보다 저자가 국문과 출신이시라 그런지 책이 부담없이 ‘술술’ 잘 읽히고 재미있다.

국내 유일(?)의 술 평론가 답게 막걸리에 대한 각종 뒷이야기들이 잘 정리되어 있고 사진과 그래픽 자료도 꼼꼼하다. 필자도 실험실에서는 알기 어려운 여러 가지를 새롭게 알게 되어서 유익했다. 특히 막걸리의 원가가 맥주, 소주보다 비싸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막걸리를 싸구려술이라고만 할 수 없는 건데 말이다.


저자 허시명 선생은 막걸리학교를 운영하고 계신데, 강좌가 7분 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성황이란다. 이 책의 미덕은 그런 막걸리학교 등을 통해서 얻은 다양한 체험과 술 평론가로서 오래 활동하면서 얻은 정보들이 잘 녹아있다는 것. 특히 대중들이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쉬우면서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막걸리와 탁주는 무엇이 다른가, 막걸리와 동동주의 차이, 탁주의 도스가 6도가 된 사연 등등이다. (이러면 바이오/식품공학자인 내가 따로 소개할 게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균형’이다. 술 좀 드시는 분들 사이에는 쌀막걸리가 최고다, 생막걸리가 최고다, 서민적인 것이 최고다, 이런 분위기가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인문학적 사고의 풍부함으로 다양한 의견을 아우르는 멋이 있다.


너무 좋은 소리만 하는 것 같아 아쉬운 점 한 가지를 꼽자면 책 표지 디자인이 조금 어색한 정도랄까. 과학 분야를 이외엔 <진보집권플랜>이나 <맛있는 식품법 혁명>을 재미있게 읽었다. 


(* 필자 사정으로 간략한 멘트와 개인블로그 글을 섞어 편집했습니다.)


 

                          4.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추천 <밀림무정> 


김탁환, 다산책방(2010)


  일제시대 개마고원을 배경으로 한 포수와 호랑이의 이야기다. 개마고원을 지배하는 하얀 호랑이 ‘흰머리’에게 아버지를 잃은 포수 ‘산’은 7년째 호랑이를 쫓고 있다. 그즈음 한반도를 지배한 일제는 ‘해수격멸대’를 편성해 호랑이 사냥에 나선 상황. 산은 눈덮힌 백두산에서 결국 흰머리를 만나 결투에 나서지만 마지막 순간에 눈에 파묻힌다. 

  한편 산을 따라 흰머리를 쫓던 해수격멸대는 흰머리를 생포하는 데 성공한다. 산은 해수격멸대가 흰머리를 일본에 이송해 연구하겠다는 처음 약속과 달리 흰머리의 죽여 가죽을 일황에게 바칠 계획임을 알게 되고 오히려 흰머리를 창경원에서 탈출시킨다. 

  ‘과학’ 분야에 속하지 않는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작가가 1920~1930년대 개마고원의 생태계와 호랑이의 섭생을 생생하게 되살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위해 호랑이 전문가와 러시아 일대를 현장 답사했다. 팩트에 근거한 치밀한 조사와 상상력이 어우러져 이 책을 읽은 동안 호랑이가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울러 개마고원의 모진 찬바람이 내 가슴까지 들어오는 것 같아 이 겨울이 더욱 추웠다.    



 

5. 운영자 쏘댕기자 추천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윌리엄 브로드․니콜라스 웨이드, 김동광 옮김, 미래M&B(2007)


그는 천재였다. 이라크 출신 의사 엘리아스 알사브티는 23살 젊은 나이에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11개 과학학회의 회원으로 승승장구했다. 알고 보니 그는 천재적인 도둑이었다. 동료의 연구를 훔치거나 이미 발표된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세계 곳곳의 이름 없는 저널에 투고해도, 아무도 몰랐다.


미 국립보건원에의 브라질 출신 연구원 헬레나 바쉬리히트 로드바드는 의학저널에 논문을 투고했다가 게재를 거부당했다. 한달 뒤 다른 저널의 심사과정에서 예일대학 연구진의 논문을 접한 로드바드는 깜짝 놀랐다. 그녀 자신이 ‘한구절 한구절’ 눌러쓴 문장과, 직접 고안한 공식이 다른 연구진이 제출한 논문에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과학이라는 두 글자는 우리에게 ‘잘 모르지만 믿을만한 세계'를 대변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90년대 <배신의 과학자들>이라는 책으로 번역됐다가 줄기세포 사건 이후 재출간된 이 책은 과학의 자기규찰 메커니즘이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학술지의 동료평가(Peer-review)나 과학자들의 재연은 과학 기만행위를 밝히는 데에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동료평가는 로드바드의 경우처럼 논문 표절의 창구가 되기도 했다. 결국 내부고발자 없이 기만행위를 드러내기는 어렵다. 불행히도 제보자에겐 진실을 좇은 영광 대신 비난의 부메랑이 돌아오곤 한다.


프톨레마이오스와 갈릴레이, 뉴턴, 멘델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고, 불필요한 데이터를 없애면 아름다운 결과가 나왔다. 마법 같은 ‘데이터 마사지‘의 유혹 앞에서, 과학은 한없이 나약했다.


날조(fabrication), 변조(falsification), 표절(plasiarism)... 이미 드러난 기만행위는 빙산의 일각이다. 저자들은 이런 기만행위가 논문의 질보다 양을 평가하는 외형주의와 성과주의, 그리고 논문을 둘러싼 권력관계, 실험실의 비민주적 위계 등 과학계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아, 이런 책은, 기필코, 소장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