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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둥둥 Book소리

'과학'이라 쓰고 '소망'이라 읽는다(11월27일 수정)


 지난 6월 발간된 <은폐된 과학의 불편한 진실>‘신문이나 뉴스에서는 절대 알려주지 않는 과학의 불편한 뒷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엘 고어 덕분에 유명해진 ‘불편한 진실’이라는 단어 자체의 신뢰감에 이끌려 책장을 열면 저자는 서문에서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꾸고 미래 사회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위대한 발견’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사례들을 소개하겠다고 밝힌다. 특히 그는 이들이 정계와 산업계의 입장에서 ‘불편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은폐되었다고 주장한다. 고백하자면 평소 음모론을 흠모해왔던 나는 기꺼이 책장을 펼칠 수 있었다.

 

로코코북, 고윤희 옮김, 8500원


1. 전기자동차를 석유업계가 죽였다? - 개연성이 있다. 


90년대 후반 GM이 10억달러가 넘는 돈을 투자해 개발한 전기자동차가 캘리포니아주에서 성공적으로 굴러다니다 2000년대 중반 전량 회수, 폐기된 사건. 이 차들은 니켈-수소 합금 전지를 사용해 8초 안에 시속 96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고, 6~8시간 충전으로 240km를 달리는 꽤 쓸만한 수준이었다. 배기가스는 당연히 없고 소음도 거의 없어 할리우드 스타 등 대기자가 줄을 섰던 상황이었다.


저자는 전기차의 석연찮은 죽음 뒤에 석유업계의 입김 강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캘리포니아 주 대기자원위원회가 하이브리드차를 허용할 수 있게 배기가스 관련 규제를 약화시켰고, GM과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캘리포니아주를 고소했지만 부시정부까지 캘리포니아 주 편을 들면서 결국 자동차업계는 전기차 임대 중지를 결정했다. 여기에 배기량이 크고 연비도 좋지 않지만 자동차 업체나 석유업계 모두가 이익인 SUV 붐이 일었던 것도 한몫 했을 것이란다. 

   전기차의 죽음 뒷머리에 살짝 독특한 이야기들도 덧붙여져 있다. 존 캔자스가 만든 암치료용 전파 발생기로 바닷물을 연소시키는 실험과 익명의 호주인이 만들었다는 마이너스 극성을 띤 물을 활용한 물엔진차 등 정말 듣도보도 못한 실험들이 그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전기차는 죽었을까? 

  지난 9일 연합뉴스는 USA투데이 기사를 인용해  올 12월 일본 닛산자동차의 세계 최초의 양산형 전기자동차 '리프'를 시작으로 미국의 GM, 포드가 상업용 전기차 모델을 시판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2008년부터 테슬라 모터스가 이미 전기차 로드스터 모델을 1천300여대 판매하는 등 전기차 개발을 선도해 왔다고도 덧붙였다.

중국에서 진행된 GM 친환경차 시승식에서 선보인 GM의 콘셉트 전기차(왼쪽 셋), 수소전지연료차(오른쪽 뒤), 전기차 Volt. (출처: GM대우/연합뉴스)


오바마 행정부는 전기차를 2015년까지 100만대 보급한다는 목표아래 전기차 구매자에게 7천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계속중이다. 그러나 전기차의 가격이 여전히 비싸고 (GM의 시보레 볼트의 기본 가격이 4만1천달러) 현재 기름값이 갤런당 3달러 미만이어서 유지비용 상의 인센티브도 크지 않은 모양이다. 현재 대도시 주변에 2천여 개의 충전소 설치가 진행되고 있지만 넉넉하지는 않은 상황이며 전압이 110-120 볼트인 미국의 일반 가정에서 충전을 할 경우 20시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6-8시간 만에 충전할 수 있도록 220볼트로 차고를 개조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기자동차는 다시 부활하고 있는 모양새다. 다큐멘터리영화로 제작돼 선댄스에서 상영된 'Who killde the eletric car'(2006)를 기반으로 한 이 내용이 쓰여질 당시에 비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지만, 환경문제는 더 큰 이슈가 됐고, 정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갔고, 미국 자동차업계는 경영 위기를 맞았다. GM이 다시 전기자동차라는 카드를 꺼낸 이유는 위의 복합적인 상황들의 영향으로 추정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전기차의 주요 문제는 배터리와 충전이었다. 항간에는 석유업계 눈치를 보느라 자동차업체가 질 좋은 배터리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어쨌건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전기차의 배터리는 비싸고 수명이 짧으며, 한번 충전해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가솔린이나 경유에 비해 짧다는 것은 해결되지 않은 듯하다. 




2. 전자렌지의 위험성을 산업계가 은폐?  - 믿기엔 글쎄 


전자렌지로 데운 혈액을 수혈받은 여성의 죽음으로 인해 촉발됐다는 이 논란은 스위스의 연구자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다. 전자렌지로 데운 야채를 먹은 사람들이 헤모글로빈 수치가 약해지고 심지어 야채에는 들어있지도 않은 콜레스테롤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 연구자들은 전자렌지의 작동방식과 전자파가 원자와 분자, 세포 단위의 변화 만들어낼 것이라 주장하다 전자제품 판매자 협회의 고소로 함구령을 당했다가 5년 뒤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다시 자신들의 주장을 펼 수 있게 됐다. 전자렌지의 유해성에 대한 비슷한 조사결과로 러시아에서 70년대 전자렌지 사용이 금지됐었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다. (지금은 판매가 허용됐다고 쓰여있다.)

 

 

마이크로웨이브는 분자를 로테이션(회전)시킬 정도의 에너지다. 분자들의 마찰로 인해 물분자가 데워지면서 음식물이 조리된다. 적외선은 분자의 바이브레이션(진동)을 유발하고, 자외선과 가시광선은 최외각 전자(가장 겉에 있는 전자)를 떼어내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X선 정도에 해당하는 에너지는 핵 바로 바깥의 전자를 떼어낼 수 있고, 감마선은 핵을 분열시킬 수 있다. 

아 고구마나 전자렌지에 돌릴까 (출처: LG전자)


그러나 짧은 시간동안 조리를 끝내는 전자렌지보다 고온의 숯불이 유해물질을 더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전자렌지의 억울함은 ‘바이오매니아 칼럼’을 연재중이신 이한승 교수님께서 'All about Biotechnology' 블로그에서 풀어주고 계시니 클릭클릭. 



3. 비주류에 머문 기적의 의학을 주류의학과 제약업계가 방해?- 믿거나 말거나 


40년 전 일본인 요코타 박사는 심장발작, 뇌졸중의 원인이 독성 강한 산성 부패 변이라고 봤다.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이 장 속을 강한 산성 상태로 만들고, 대장균 등 부패균이 단백질의 아미노산을 아민으로 바꾸게 되면 이 아민이 혈관 수축과 경련 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양대발작 환자의 장 속에 항상 악취가 나는 산성 부패 변이 있고, 대변의 악취가 발작이 위험도와 비례한다는 것, 그리고 평상시 혈액 속에 없던 단백성 아민류가 양대 발작 시 나타난다는 것 등이다. 일본 의학계는 요코타 박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박사의 아들이 이제는 대를 이어 산성 부패 변의 위험성에 대해 알리고 있다고 한다. 


산성 부패 변을 막는 길은 채식과 소식, 그리고 감기와 변비 등 소화기능을 떨어뜨리는 병을 예방하는 것이라 한다. 사실 예방의학적 측면에서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비전문가인 내 눈으로 보아도, 산성 부패 변이 심장 발작과 뇌졸중의 원인인지 결과인지가 분명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꼭 산성 부패 변이 아니라도, 변비와 뇌졸중의 연관성은 깊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만성 변비로 인해 화장실에서 힘을 주는 습관을 가진 친척 어른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돌아가신 경우가 있어서 말이다. 덕분에 평소 건강염려증이 있으신 우리 아버지는 화장실을 하루만 못 가도 병원에 가신다. (으음, 아버지 부러워요)


실물보단 이게 낫겠습니다. (출처: 쇼핑몰 패션플러스)



이 밖에 큰 의료기관과 언론매체로 인해 매장당했다는 샘 차쿠아 박사의 기적의 암 치료법 ‘IRT 유도완화요법’, 제약업계의 방해를 받았다는 가스통 나상의 면역 강화제 714X 등도 읽기엔 상당히 흥미롭지만 어디까지 믿어야하나 고민스러운 이야기들이다.




4. '믿거나 말거나' 유사과학을 대하는 자세


거대 권력집단과 싸우는 일은 왠지 정치적(?)으로 옳은 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례를 그런 경우로 믿어도 할 지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주로 락음악계에서 논란이 됐던 리버스 스피치가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기 전부터 터득하게 되는 기술이며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결과물이라는 주장이나, 껍질로 공동구조를 만들어 하늘을 나는 ‘반중력 플랫폼’에 가서는 거의 저자의 정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레드제플린 가사 거꾸로 들으면 진짜 그렇다고? (출처: 네이버)



  저자 케이 미즈모리의 약력은 <의학, 과학, 환경, 미국 정세 등 지식의 주변부를 탐구하는 저널리스트이자 과학 저술가>라고 되어있다. 와세다 대학 외에 전공에 대한 언급은 없고, 주요 저서 이름에 ‘수수께끼’나 ‘진실’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주류과학 밖의 이야기들에 더 흥미를 가진 것 같다.

저자는 저주파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 듯도 하다. 저주파를 들음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생물음향학을 스스로 체험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회복에 걸린 시간은 2~3주. 거의 자연치유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그는 또 책의 첫머리에서 2003년 미국 동부 대정전과 마인드 콘트롤 전자파 무기 실험의 연관성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그 마인드 콘트롤 무기가 바로 초저주파로 적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기술이었다. 내가 아는 저주파치료는 내 어깨 위에 5분여를 머물고 5만원을 앗아간 정형외과의 안마기계 뿐인데 이게 무기도 될 수 있단 말인가. 무서워라. 




이야기들 자체는 꽤 흥미롭다. 그러나 이 책의 주장들이 전부 과학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지는 말아야할 것 같다. 이 책은 부디 재미로만 읽으시라. 다 믿지는 마시고. 

7년 전에 썼던 <사이非 사이언스>라는 책의 서평으로 결론을 대신한다.


과학이론은 관찰-가설-예측-실험이라는 단계를 거쳐 수정되고 또 수정된다. 원자모델이 단순한 공모양에서 양자역학 모델까지 왔지만 그게 최종판이라 장담할 수 없는 것처럼 과학은 항상 ‘반증가능성’에 열려있다. 가설은 기꺼이 폐기처분할 조건들이 존재해야 하는 것.

그렇다면 여러 사람들이 직접 경험했다는 UFO나 초능력은 ‘과학적’ 사실인가? 화학자와 물리학자인 저자들은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한다. 이 현상들에는 믿음, 즉 ‘소망적 사고’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임소정 기자(트위터 @sowhat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