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은 무엇일까요?
1. 매년 생물학, 의학, 물리학, 평화, 경제학 부문을 시상한다.
- 다만, 안전공학, 환경보호 등 해마다 신설되는 부분이 있다.
2. 매년 대부분의 사람이 훌륭하다고 말할만한 업적에 돌아간다.
- 다만, 바보같을 수도 있다. ‘다시는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업적’이 선정 기준이다.
3. 누구나 추천할 수 있고 개인과 단체 모두 수상 자격이 있다.
- 다만, 가공의 인물이나 업적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4.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이 시상한다.
- 그들은 새로운 수상자들의 업적이 진짜인지 의심하기도 한다.
5. 수상을 거부할 수 있다.
- 직장 상사나 정부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믿는 경우에 한한다. 다만, 시상식에만 안 나타나거나 못 나타나는 (주로 수감중) 사람들도 있다.
윗 줄에서는 노벨상인가 싶다가 아랫줄로만 가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상의 이름은 이그노벨상(IGNOBEL PRIZES)이다. 1991년 시작된 이 상은 MIT 박물관을 거쳐 하버드의 샌더스 시어터로 자리를 옮겼다. 과학유머잡지 <황당무계 연구 연보>의 편집장인 마크 에이브러햄스는 자신이 만든 이 상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그노벨상 이야기 - 천재와 바보의 경계에 선 괴짜들의 노벨상>로 펴냈다. 지난달에 나온 신간이다.
살림. 이은진 옮김. 1만2000원
역대 수상자 중에는 드물게 유명한 사람들도 끼어있는데 경제학 분야의 수상자인 닉 리슨이 대표적이다. 겉으로는 엄청난 이윤을 냈으나 속으로는 영국의 유서깊은 베어링스 은행을 날려먹은, 파괴적 선물투자의 귀재다. 거대한 은행 하나를 말아먹고 꼴랑 2년간 수감생활을 했던 그는 이제 순회강연을 다니며 금융투자의 규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경고하고 있단다.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한 <갬블>(1999년작, 원제 로그 트레이더)이라는 영화가 그의 행적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생물학상 수상자 중에는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 대학의 피터 퐁 교수가 인상적이다. 피터 퐁 교수는 대합조개가 담긴 어항에 실수로 항우울제 프로작을 엎질렀을 뿐이었다. 조개들은 평소의 10배의 속도로 정충과 난자를 쏟아낸 뒤 장렬하게 전사했다. 그는 <실험 동물학 저널>에 실린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사용에 따른 대합조개 번식의 인공적 유발과 활성화’이라는 논문으로 영광을 안았다. 조개의 행복 증진에 기여한 공로였다.
대합+프로작 = 대물 (협찬: G마켓)
항우울제 프로작은 식욕과 수면, 우울증과 연관있는 ‘세로토닌’ 호르몬이 재흡수되지 않고 신경으로 전달되도록 돕는 약제 중 하나다. 프로작의 성분인 플루옥세틴이 모든 환자에게 효과적이지는 않았던 데다, 성욕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성욕 증진만을 위해 투여했을 경우엔 정반대의 효과를 낸 적도 있었다. 피터 퐁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대합조개와 인간은 신경조직의 세포단위에서 놀라울 만큼 유사성을 보이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는 게 된다는 것. 그는 그 이후에도 생물 번식에 대한 연구에 투신했으며 달팽이 생식기관이 발기하는 원리에 대해 논문을 내놓기도 했다.
비스킷을 차에 적시는 최상의 방법을 측정한다거나 신장과 발의 크기와 성기의 크기 사이의 연관성(이 깊지않음)을 밝힌 연구진들, 그리고 병 때문에 방귀냄새가 심한 와이프에게 냄새를 밖으로 배출하지 않는 팬티를 만들어준 남자, 방울뱀에게 물리면 전기충격을 줘서 독을 빼내야한다는 속설이 틀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검증한 사람 등 생활에 도움이 될 부분들도 있다.
양자역학도 양자물리학도 아닌 양자의학을 창시한 사람, 비둘기가 피카소와 모네의 그림을 구별하게 만든 고독한 연구자들과 변기 붕괴로 상처입은 사람들에 대한 조사하고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코코넛 낙하 속도와아래를 지나는 사람의 충격을 계산하는 날카로운 센스, 그리고 실탄 대신 ‘빵’소리로 전투를 대신한 영국해군이나 고대 동물 벽화를 낙서인줄 알고 열심히 닦아버린 보이 스카우트 등 황당한 발상도 당당히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우리나라 수상자도 있다. 신랑신부 100쌍의 합동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통일교 교주 문선명씨가 경제학상을, 향기나는 양복을 만든 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환경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쟁쟁한 수상자들 중에 내게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은 ‘리노틸렉소마니아’ 증상에 대한 연구였다. 리노틸렉소마니아는 인도 방갈로르의 정신 건강 및 신경 과학 국립 연구소의 치타라잔 안드라데와 B.S. 스리하리가 만든 강박적인 코 파기를 일컫는 신조어다. 그들은 2001년 <임상 정신 의학 저널>에 내놓은 논문으로 당당히 공중 보건 부문의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남의 것도 파준다는 연구결과는 드뭅니다. (출처:연합뉴스겠지만 www.i-rince.com에서 퍼옴)
그들은 4개 학교 200명의 학생의 코 파기 행태에 대해 연구했으며, 그 결과는 대부분의 학생이 하루 평균 4회 코를 푸비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대상의 7.6%는 하루 20회 이상이었고, 17%는 심각한 코파기 버릇을 호소했다.
그들은 코파기에 대한 다른 논문들을 조사하면서 코파기의 폭력성(코피 흘림 증상)에 대해 탐구했고, <자학으로 인한 코와 구개의 손상 사례보고>와 <생명을 위협하는 자학적 코 훼손> 등의 보고서를 거쳐 <식분증과 그에 연관된 현상들>이라는 보고서에서는 거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보고서는 사람들이 코딱지를 먹을 뿐 아니라 그것을 맛있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먹지 마세요, 쓰레기통에 양보하세요 - <코파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 (출처:www.i-rince.com)
그들은 수상소감에서 트리초틸로마니아(강박적 머리뽑기), 오니초파지아(강박적 손톱 물어뜯기) 등도 경고한다. (나는 남이 내 머리를 뽑아주는데 엄...) 그리고 어쨌건 이들은 인도 국내에서도 아마 유명해졌을 것이다. 유명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가 1면에 이들의 이그노벨상 수상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아주 깊게 판 인도 과학자들, 이그노벨상 수상’이라고. (인도로 편집 유학가야겠다.)
필자와 수상자들, 그리고 번역자의 유머감각이 빼어나다. 덕분에 책을 읽다가 우울한 마음이 가시는 효과를 봤는데, 이 책 때문에 세로토닌 분비가 늘었다는 걸 밝히면 나도 의학부분 수상자가 될 지 모르니 독자 여러분들도 읽고 반응들 주시라. (저에게만 주시라!)
임소정 기자(트위터@sowhat50)
p.s. 순순히 리플을 내놓으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0ㅇ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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