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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둥둥 Book소리

낚시,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미항공우주국(NASA)이 ‘비소 먹는 미생물’의 존재를 발표한 지 1주일 남짓 지났습니다. NASA가 발표한다는 것과 ‘외계 생명’이라는 단서가 주는 기대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고, 실제 내용을 보고 나서는 ‘낚였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엠바고를 깨가며 미리 보도를 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모았던 외계 생명의 가능성에서는 이제 한 발짝 멀어진 것 같습니다. 후속보도들도 극한환경에서 생존하는 새로운 생명체의 발견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지만, 다른 과학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아직 더 밝혀져야 할 부분들을 제시하거나 근거논문 자체의 결함을 지적하는 쪽으로 정리되는 모양새입니다.


영국 데일리 메일 온라인판을 인용한 연합뉴스의 9일 보도는 캐나다와 미국 일부 학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실험 절차상 대조군 설정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험과정에서 DNA를 물에 담갔다는데, 그렇다면 비소는 물에 분해됐을 것이고 소량의 인으로 생존했다는 이야기라는 주장도 보이고요.


앞서 한겨레에서도 인과 비소가 함께 존재하므로, DNA가 인이 아닌 비소로 구성됐다는 주장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인과 함께 비소를 사용할 때 더 잘 생존했으며, 비소가 든 DNA가 복제가 되는지, RNA와 단백질도 생화학 기능을 정상 수행하는지 추가 입증해야 한다는 내용도 눈에 들어오더군요.


원 논문에는 외계 생명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없다는 내용을 어디선가 본 것 같지만(죄송합니다. 저는 직접 보지 못했는데 영어가 딸리기 때문이라고 차마 밝혀봅니다), 이 발견이 새로운 생명체 연구의 서막이 될지 예산지원을 노린 NASA의 거품 발표로 끝날 지 아직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 호수인 모노 레이크 (AP)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표되는 논문들은 일단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치지만, 연구자가 데이터를 조작했다면 완벽한 검증은 어렵습니다. 논문과 같은 조건의 실험으로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결과들을 얻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 결과가 검증된다고 봐야겠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할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라는 책은 “과학연구 결과의 발표는 과학적 과정의 종착역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주장합니다. 놀라운 실험결과가 발표되었다한들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재현되지 않는다면, 새빨간 거짓말일 수 있다는 겁니다.


‘잘못된 과학 정보를 바로 가려내는 20가지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생물학과 과학/수학 교육학 학위를 받은 과학 저술가 셰리 시세일러가 썼습니다. 책이 제시하는 판단기준들은 20개 정도 되는데요. 솔직히 이 책 한권 읽는다고 잘못된 과학 정보를 가려낼 자신이 뚝딱 생기지는 않습니다만, 새겨둘 만한 것들 몇가지를 모아 정리해 봤습니다.


이충호 옮김, 1만4800원, 부키



1. 정보조작에 속지 마라

「산성비의 주요 성분이며, 기체 상태의 이것은 심각한 화상을 입힐 수 있고,
암으로 발전하기 이전의 종양에서 발견되는데, 완전천연제품이라는 음료수에도 첨가된다.」


DHMO.org라는 웹사이트는 일상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무색무취 물질인 이것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데요. 이 물질의 정체는 일산화이수소입니다. 일산화이수소, 이렇게 부르면 새롭지만 사실은...
 <O 1개 + H 2개 = H2O>
  
그렇습니다. 물이네요. 저처럼 처음부터 “잉~” 하시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정보조작 혹은 왜곡의 무서움을 말하고자 하는 예였습니다.


광우병이나 유전자 변형 식품, 지구 온난화나 우울증 치료제 뒤에는 소비자와 함께 관련 산업을 대표하는 이해당사자, 그리고 판매자의 경쟁자, 규제 당국, 그리고 얼결에 새우등 터지는 피해자 등 여러 이해당사자가 있으며 그에 따라 얼마든지 정보가 왜곡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라는 겁니다.
 

2. 단순화에 속지마라

유전자 변형 식물의 위험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계기는 99년 ‘네이처’에 발표된 모나크나비 실험입니다.   보통 박주가리 잎과 보통 옥수수 꽃가루를 뿌린 박주가리 잎과 살충성분이 든 유전자변형 옥수수에서 채취한 꽃가루를 뿌린 박주가리 잎을 먹인 나비 애벌레의 생존률을 분석했더니, 세 번째의 경우 44%의 애벌레가 죽었고, 이 실험으로 인해 모나크나비는 유전자 변형 동식물 반대운동의 선봉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 실험의 설계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이 실험은 애벌레들을 용기에 가둬놨기 때문에 다른 먹이를 택할 기회가 없어 실제 야생의 애벌레들과 동일한 환경이 아니며, 옥수수 꽃가루를 뿌린 양도 야생의 상태와 다르며, 성충은 박주가리 잎을 먹지 않으며, 이 실험에 사용된 Bt 옥수수와 달리 꽃가루가 아닌 다른 부위에 살충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Bt 옥수수도 있다는 겁니다.


모나크나비 대신 찬조출연한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일대 오베이골 습지의 남방제비나비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전통적인 농작물에 뿌리는 살충제 또한 모나크나비 등등의 곤충과 환경에 해롭고, 유기농 작물에 뿌리는 게 승인된 Bt 스프레이도 있다는 겁니다. 제가 유전자변형 전문가에게 들은 바로도 전통적인 육종 기술로 품종을 개량한 것 또한 유전자 변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더군요.


어쨌건 유전자 변형 농작물의 유해성을 말하려면 다른 전통적 농작물과 유기농 농작물 등을 동일하게 놓고 비교해봐야 한다는 겁니다. 저자는 정보의 출처를 끝까지 추적하지 않고 지나치게 단순화해 보도하는 습성과 흑백논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합니다.


3. 숫자에 속지마라

‘천연원료 99% 사용’과 ‘비천연원료 1% 사용’ 어느 쪽에 끌리십니까?

둘은 동일한 내용이지만 다른 효과를 냅니다. 손실을 이익으로 바꾸고 이익을 손실로 바꾸면 완전히 달라지는 느낌이죠. 수치의 마술입니다. 평균이라는 말에도 맹점이 있죠. 중앙값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착각을 하게 되거든요. 평균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절반인 상황이 당연할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가끔 잊습니다.


  암 발생률은 줄었다면서 암 환자 수는 두 배로 늘었다는 보도가 비슷한 시기에 나오기도 하는데요. 발생률은 특정 집단 내에서 암 발생자의 비율이고, 암환자 수는 집단의 크기와 무관하기 때문이라는 군요. 인구가 증가한다면, 즉 표본의 크기가 증가한다면 두가지가 모순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한 특정 증상의 환자가 급증한다는 건, 그 병이 더 잘 알려져서 진단 받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4. 관찰연구에 속지마라.

후향적 관찰연구와 전향적 관찰연구가 있다고 해요. 전자는 특정질병에 걸린 집단과 걸리지 않은 집단을 생활 방식과 특정물질 노출 여부를 조사하는 방식이고요. 이 연구의 약점은 부정확한 기억력입니다. 후자는 질병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인자에 노출된 사람들을 오랫동안 추적해 비교 관찰하는 겁니다.

어떤 위험인자에 노출된 사람 사이에서 발병률이 높게 나타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위험인자가 질병의 원인이라고 볼수는 없답니다. 유전자나 평소 운동습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실제로 폐경기 여성이 호르몬 대체 요법을 쓸 때 심장병 위험이 줄어든다는 결과가 나왔다가, 대규모 무작위 연구를 했을 때는 그 결과가 완전히 뒤집힌 적이 있습니다. 이는 처음 관찰연구에서는 호르몬 대체요법을 선택한 여성들이 원래부터 더 건강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군요. 그래서 관찰연구는 실험연구로 검증 과정을 거쳐야한다네요.


5. 거짓 논리에 속지 마라

책 마지막 쯤에 나온 전자기장의 위험도 흥미롭습니다. 전자기장은 국제암연구소가 2B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는데 여기에 DDT와 납도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전자기장 효과를 차단한다는 칩과 펜던트 광고 전단에 등장하는데요, 문제는 2B군 발암물질에 휘발유, 절인 야채, 커피도 함께 있다는군요. DDT와 납 사용이 금지된 이유는 암을 유발한다는 게 아니라 다른 손상들 때문이라네요.


단골 출연하는 커피 "전 억울해요"


  확증편향이라는 현상도 지적됩니다. 심리학자 벨라 디폴로가 내놓은 <동네북이 된 독신자>라는 책이 인용되는데,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경우, 결혼 전부터 행복지수가 높았던 경우도 많다 군요. 결혼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건 편견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화학물질은 반드시 나쁘다는 편견에 대해서도 지적하네요. 


  과학 지식을 얻고자 하시는 분에게는 비추입니다. 여기저기 언론, 광고 등에서 접하는 '과학으로 포장된 논리'들을 꿰뚫고자 하신다면 살짝은 추천입니다. 터무늬없는 주장 벗기기와 관련해 책 말미 쯤에 소개된 쓸만해보이는 사이트들을 추가로 소개합니다.

Snopes(www.snopes.com) * 그럴듯한 소문들의 실체를 벗기기
About Urban Legends(www.urbanlegends.about.com) * 그럴듯한 소문들의 실체를 벗기기
Break the Chain(www.breakthechain.com) * 그럴듯한 소문들의 실체를 벗기기
Sense about Science(www.senseaboutscience.org) * 공식적인 주장 속 오류(유명인사들의 엉터리 주장)
Improving Medical Statitics(www.improvingmedicalstatistics.com) * 의학연구 속 오류 자료들
The Skeptical Inquirer(www.csiop.org/si) * 과학과 비과학 구별
EurekaAlert!(www.eurekalert.org) * 논문 발표 보도자료나 동료검사 거친 과학논문 목록 조회
Google Scholar(www.scholar.google.com) * 온라인 논문 조회


고백하자면 사실 요즘 저는 자꾸 의심만 하다보니 오히려 옳은 것도 못 믿는 지경입니다. 정말 속기 쉬운 과학연구결과들에 대하여, 다음에는 논문 조작의 귀재들을 중점적으로 다룬 역작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에서 조금 더 소개해야겠습니다. 
                                                                                                    임소정 기자(트위터 @sowhat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