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둥둥 Book소리

인간을 지키겠다는 무인시스템이 부른 '인간성 없는' 전쟁의 시대

 

그는 전문가였다. 이라크 반군의 사제 폭발물을 추적하고 해체하는 팀 내에서 가장 용감하고 실력이 뛰어난 병사였다. 늘 선두에서 위험한 업무를 도맡으면서 불평 한마디 없었다. 허나 그날은 운이 좋지 않았다. 그의 바로 아래에서 폭발물이 화염을 내며 터졌다. 다른 병사들의 목숨을 수도 없이 구했던 그였지만, 스스로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다. 최고의 동료를 잃은 부대원들은 울컥하는 심정으로 그의 흔적을 수습해 헬리콥터에 실었다. 그날 밤 해군 하사관 팀장이 정성껏 작성한 부음 서신이 바다 건너 미국 보스턴에 도착했다. “그래도 모친에게 전사통지서를 보낼 필요가 없어 다행입니다.”

그 병사의 정체는 아이로봇(iRobot) 사의 팩봇(PackBot). 미 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의 요청으로 1998년 개발된, 무게 20kg에 고성능 카메라와 집게 팔이 달린 로봇이다. 팩봇은 2001년 9월11일 대중에게 첫 모습을 드러냈다. “잔해 속 시신, 먼지, 연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구조대”로서 피로감 하나 없이 그라운드 제로를 누비던 팩봇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누비기 시작했다.

2004년 3월31일 이라크 나자프 비행장에서 트럭 주변의 부비트랩을 찾고 있는 팩봇. (출처: 미 육군공보실)

팩봇은 가정용 로봇청소기 룸바(Roomba)와 함께 아이로봇 사를 이끄는 대표모델이다. 아이로봇 사의 홈페이지에는 가정주부와 군 사령관의 감사편지가 동시에 실려있다 한다.

포스터-밀러(Foster-Miller)사의 탤론(Talon)도 팩봇과 같은 날 뉴욕에서 데뷔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 집게팔 대신 총기 거치대가 달린 최초의 무장 로봇 스워드(SWORDS)는 적의 총을 맞으면 쓰러지는 대신 총알이 날아온 방향으로 바로 응사하는 게 장기다. 5천달러짜리 소형 정찰로봇 마크봇(MARCBOT)을 포함해 2008년까지 22종의 로봇시스템이 이라크에서 활약했다.

공중에선 프레데터(Predator)가 활약중이다. 24시간 동안 상공에 머무르면서 적진 깊숙한 곳을 자세히 관찰·조준할 수 있는 무인항공기 프레데터는 당초 정찰·감시용이었으나 9·11참사 이후 무장이 허용됐다. 2000년과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빈 라덴을 수차례 목격했지만 공격할 수 없었던 전력 때문이었다. 이름 그대로 ‘사냥꾼’이 된 프레데터는 2005년 6월부터 1년간 3만 3,833시간을 비행하며 1만 8,490개의 표적을 정찰하고 242회의 공습을 했다. 2008년 말 기준으로 미군 군수품 목록에는 프레데터와 글로벌호크(Global Hawk)와 섀도(Shadow), 레이븐(Raven), 와스프(Wasp) 등 다양한 무인항공기 5,331대가 등록됐다. 유인항공기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숫자다. 우리는 이미 로봇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무인항공기 프레데터.

브루킹스 연구소 최연소 선임연구원인 피터 W. 싱어는 648페이지라는 만만찮은 두께의 <하이테크 전쟁-로봇혁명과 21세기 전투>를 통해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인간 없는 전쟁'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우리의 현실이 되었음을 자세히 보여준다. 무인(無人)전쟁의 시대는 테크놀로지의 발전뿐 아니라 정치적 시류 변화의 영향도 받았다. 1993년 블랙호크 헬기 추락 참사 등으로 전사자 발생에 대한 미국인들의 거부감이 커진 데다, 젊은이들을 군에 자원입대시키기 위해 미래지향적 기술에 대한 강조가 필요하다는 점도 한 몫을 했다. 여기에 9·11참사는 미국의 무력 사용과 군대 예산, 특히 로봇공학 관련 예산에 대한 족쇄를 풀어줬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의 국방비는 74% 증가했고, 미군의 지상 무인시스템은 2001년 0대에서 2008년 말 1만2,000대로 늘어났다. 지난 주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헬기가 격추된 사건과 같은 갑작스런 희생도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시킬 듯하다. 탈레반 로켓포 공격으로 네이비실 팀식스 요원 22명 등 미군 30명과 아프간 특수부대원과 통역을 포함해 총 38명이 희생된 참변은 2001년 아프간전 발발 후 단일 사건 최대 사망자 숫자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피터W.싱어, 권영근 옮김, 지안출판사, 2만4,500원

로봇은 인간과 달리 허기를 느끼지도, 두려워하지도, 피로를 느끼지도 않는다는 ‘비인간적’ 면이 강점이다. 그러나 전쟁 또한 더 비인간적으로 변하고 있다. 프레데터와 같은 무인항공기 조종사들은 매일 전투를 치르지만, ‘전쟁에 나가’지는 않는다. 전장에서 1만2,000킬로미터 떨어진 미국 네바다 주의 트레일러 건물 안에서 마치 비디오게임기 같은 조종기로 무인항공기를 조종하고 있다. 그들은 모래바람과 총탄이 날리는 전장 대신, 자가용을 타고 실내의 칸막이방으로 출근해 컴퓨터 스크린 앞에 앉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비행을 마친 뒤 아이들과 축구장에 가거나 슬롯머신을 당긴다. “비디오게임 같아요. 조금 피가 고프기는 하죠. 하지만 그래도 죽이게 멋져요.” 그들은 살상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전장에 나가지 않지만 전투를 치른다. 커피를 마시면서 마치 비디오게임을 하듯 화면을 보며 전투를 치르고 집으로 퇴근하는 시대다. (출처: UK Crown Copyright)

이런 비인간적인 폭격의 순간이 유투브를 통해 스포츠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무인전투기가 찍어온 최신 전투장면들은 ‘충격과 공포’라는 이름 아래 마치 게임이나 오락물처럼 퍼져나가고 농담 같은 댓글과 배경음악을 입는다. 대중은 로봇이 대신 전투를 수행하기 때문에, 자신 혹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피를 쏟을 수도 있다는 전쟁의 필연적 결과를 망각한다. 국가 지도자는 미국의 위험이 미국산 기계에만 해당된다는 공감대 덕분에 참전 결정을 내리기 수월해진다. 더 많은 이들이 전투장면을 즐기면서, 역으로 전쟁의 실상과 멀어진다.

그렇다면 미국의 적들도 ‘충격과 공포’를 느끼고 있을까. 미군들은 무인시스템이 이라크 반군들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메시지를 줘서 사기를 저하시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반군들은 미군의 무기가 얼마나 우수하건, 적응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미국이 최신 테크놀로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으로만 비춰지면서, 되레 겁쟁이로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이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의 제국으로 보이면 민심은 헤즈볼라 같은 과격단체에 힘을 실어줘 끝이 보이지 않는 반격이 시작된다. 너무 사실적인 로봇은 오히려 소름끼치는 것처럼, 로봇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찬란한 무인시스템의 존재가 역효과를 내는 것이다.

무인항공기(DRONE)가 어떤 식으로 명령을 수행하는지 다룬 BBC 그래픽.

정치권이나 군 수뇌부의 로봇 전쟁에 대한 전략이나 교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덕분이다. 네오콘 수뇌부들은 무인시스템이 맹활약한 아프간/이라크 전쟁 초기의 성과를 IT혁명을 벤치마킹한 ‘네트워크 전쟁’의 결과로 오인했다. 전과 다른 무기를 사용한 게 아니라 네트워킹을 통해 정보를 완벽하게 공유하면서 ‘전장의 안개’를 거둬냈다는 주장이다. 실상은 아군부대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어도 적군이 누구인지, 언제 어디서 공격해올 지는 알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특히 전쟁 수행의 주체에서 인간이 제외되는 거대한 변화를 놓고 로봇을 올바르게 사용하고자 하는 큰 그림을 만드는 데에 소홀한 상황이다. 2차대전 때 더 많은 탱크를 가진 프랑스가 단 40일 만에 독일에 점령당한 것처럼 교리가 없는 무인시스템은 만병통치약도 마법의 총알도 될 수 없다. 미국은 테크놀로지의 가능성에 도취되어 있지만, 이 기술이 언제까지나 미국에게만 힘을 주리라는 것도 착각이다. 돈만 있으면 어린 학생들도, 북한 수뇌부도 무인시스템을 구입할 수 있는 시대다. 반군들은 이미 미국의 로봇을 따라 만들고 있고, 다른 국가들도 로봇 개발 경쟁에 뛰어들었다.

기계의 안전성에 대한 맹신 또한 위험하다. 2007년 훈련중 20여명의 사상자를 냈던 MK5 자동방공시스템의 오작동이나, 1960년 달이 뜨는 것을 소련의 미사일 공격으로 오인한 탄도미사일 조기경보체계처럼, 단순한 소프트웨어 오류 또한 예측 불가능하다. 전장에서 반군의 폭발물에 폭파 신호를 차단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파방해기는 종종 미군의 로봇들에게도 치명적이며 21세기의 테크놀로지를 무력화하는 전파무기 제조는 1950년대 수준의 과학기술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많은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곤충만한 무인항공기가 있다면 세상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NYT는 지난 7월 벌레만한 로봇항공기 개발에 관한 기사와 함께 무인항공기 크기의 변천사를 다뤘다.


로봇 분야의 혁신은 전쟁을 바꾸고 있다. 전투 수행을 위한 신체적 능력의 중요성이 낮아지면서 병사는 더 어리거나 늙어졌고, 비행기 조종기술 대신 게임 경력이 필요해졌다. 전쟁의 근본적 토대였던 희생정신은 잊혀져가고, 전쟁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더 어려워졌다. 전쟁을 치르는 인간이 적어지면서 전쟁의 인간적 면모 역시 적어지고 있다. 우리는 SF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암울한 미래, 즉 '로봇의 자율성이 커지면서 벌어질 새로운 종족과의 충돌'에 대비하기 앞서, 인간 사이에 치러지는 비인간적 전쟁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이 변화들을 아무런 준비 없이 경험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점점 더 빨라지고만 있기 때문이다.

쏘댕기자(트위터 @sowh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