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쏟아지는 해변이나 칠흑 같이 어두운 산속에서 연인과 함께 파도소리를 들으며 밀회를 즐기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가 않다. 여름은 밤이 짧고 날씨가 좋지 않고 습하기 때문에 별을 보기에는 별로 좋지 않은 계절이다. 더구나 모기라도 날아든다면 애써 준비한 이벤트를 망치기 일쑤다. 그럼에도 여름밤은 기꺼이 어두운 곳으로 연인과 함께 떠나서 그 밤하늘을 쳐다보게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다. 돌고래자리 덕분이다.
돌고래자리는 4등급 별들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작고 어두운 별자리다. 인공불빛이 많은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다. 어두운 곳에서 날씨가 좋을 때만 볼 수 있는 숨져진 보물 같은 별자리다. 먼저 여름철을 대표하는 1등성 중 하나인 독수리자리 알파별(견우성)을 찾아보자. 그런 다음 견우성의 남쪽에 있는 3등급 별과 견우성을 이은 거리만큼 견우성으로부터 움직여보자. 그곳에 작은 마름모 또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별 4개가 보일 것이다. 마름모 모양 바로 아래 비슷한 밝기의 별이 하나 더 있을 것이다. 돌고래의 꼬리에 해당하는 별이다. 마치 돌고래가 펄쩍 뛰어오르는 모습이 연상될 것이다. 돌고래자리는 작지만 예쁜 여름밤하늘의 보석 같은 존재다.
돌고래자리를 보고 있으면 근처에 흐르는 은하수에서 막 튀어 오른 것 같은 생동감을 느끼곤 한다. 은하수로 뛰어들려는 돌고래로 볼 수도 있겠다. 돌고래자리에는 유독 사랑의 메신저 역할과 관계된 전설이 많이 있다. 잘 알려진 전설 중 하나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관련된 것이다. 포세이돈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동감하겠지만 그는 늘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험한 모습을 하고 신화에 등장하곤 한다. 포세이돈이 낙소스 섬에서 춤을 추던 암피트리테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포세이돈의 무서운 모습에 놀란 암피트리테는 도망을 치고 만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돌고래다. 포세이돈의 명령을 받고 암피트리테를 찾아내서 포세이돈의 진면목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그녀를 설득한다. 돌고래의 끈질기고 진정성 있는 설득에 암피트리테는 포세이돈을 받아들이고 결혼을 하게 된다. 돌고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돌고래자리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돌고래자리에는 수아로킨(Sualocin)과 로타네브(Rotanev)라는 이름의 두 별이 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오랜 세월 동안 미스터리였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어느 아마추어천문학자에 의해서 그 기원이 밝혀졌다. 두 별의 이름은 1814년 팔레르모 천문대에서 발간한 별 목록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천문대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던 니콜로 카시톨(Niccolo Cacciatore)이라는 조수가 장난을 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라틴어 식으로 바꾼 다음 거꾸로 써서 아무도 모르게 두 별의 이름이 원래부터 그것이었던 것처럼 적어넣었던 것이다. 니콜라우스 베나토르(Niccolaus Venator)를 거꾸로 적어서 수아로킨 로타네브(Sualocin Rotanev)를 만든 것이었다. 이름을 다시 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불러온 이름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두 별은 여전히 그 이름으로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사랑의 메신저 이미지 때문인지 돌고래자리는 아마추어천문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별자리 중 하나다. 프로포즈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별자리기도 하다.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두 건의 성공 사례도 있다. 한 친구는 돌고래자리 고백을 통해서 지금의 아내를 얻었다. 또 다른 친구는 지금은 헤어졌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주었던 그 시절의 연인을 만나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도 했었다. 나도 몇 차례 돌고래자리를 이용해서 사랑 고백을 하려고 했었다. 늘 날씨가 문제였다.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돌고래자리는 내겐 더 정감이 가고 그리운 별자리로 남아 있다. 돌고래자리를 보여주면서 멋진 고백은 못했지만 그녀들을 어두운 곳으로 유인하는 데는 늘 성공했었고 어쨌거나 사랑을 즐겼으니 모두 다 돌고래자리 덕분이다.
무덥고 모기도 많고 날씨가 좋지 않은 여름밤보다 8월 말이나 9월 초가 여름철 별자리를 즐기기에는 더 좋은 때이다. 날씨가 좋을 확률이 조금은 더 높고 더위도 한풀 꺾였고 모기도 사라지는 계절이다. 무엇보다도 초저녁에 여름철의 대표적인 별자리인 백조자리와 견우성이 속한 독수리자리 그리고 직녀성이 있는 거문고자리가 머리 위에 높이 솟아올라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돌고래자리도 당신의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 은하수로 퐁당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여름과 가을이 교차하는 계절, 연인과 함께 어두운 곳으로 떠나자. 돌고래자리 전설 이야기에 덧붙여 역시 견우성 근처에 있는 4등성으로 이루어진 작은 별자리인 화살자리를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로 삼아 연인의 가슴에 쏘아버리자. 그러면 게임은 끝이다.
이명현 | 천문학자·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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