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김빠진 맥주 한 캔을 들고 앉아서 빼곡한 고층 빌딩 사이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본 적이 있다. 약간 취기가 오른 탓도 있었겠지만 왠지 늑대가 나와야 할 것 같은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뱀파이어가 날뛸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스쳐 지나갔다. 보름달이 뜰 때가 되면 서울 집 옥상에 올라가 떠오르는 달을 쳐다보곤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럴 때마다 오히려 마음이 풍성해지곤 했다. 서양에서는 보름달을 불운이나 비극의 상징으로 보지만 동양에서는 풍요로움의 징표로 보름달을 맞이한다. 한가위 보름달이나 정월 대보름달은 늘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고 달이 저렇게 컸었나 하면서 한번쯤 흠칫 놀란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한가위 보름달이나 정월 대보름달을 볼 때면 그야말로 쟁반만 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다면 둘 다 보름달인데 어느 때 달이 더 클까? 정답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달은 지구 둘레를 한 달에 한 바퀴씩 돌고 있다. 그런데 달의 공전 궤도는 정확한 원이 아니라 타원이다. 따라서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근지점이 생기고 반대로 가장 멀어지는 원지점이 생긴다. 달의 물리적 크기는 변함이 없다. 같은 크기의 물체는 멀리 있으면 작게 보이고 가까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보인다. 달도 마찬가지다.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졌을 때 제일 크게 보일 것이고 제일 멀어졌을 때 가장 작아 보일 것이다.
1년 중 어느 보름달이든 지구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기만 하면 제일 크게 보인다. 한가위 보름달이 마침 근지점에 있으면 제일 커 보이는 보름달이 되는 것이다.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동안 지구도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가장 크게 보이는 달인 ‘슈퍼문’은 1년이 아닌 대략 14개월에 한 번씩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가위 보름달이나 정월 대보름달이 평소보다 훨씬 더 커 보인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추석은 힘이 세다./ 흩어져 있는/ 가족들을 모으게 하니까.// 추석은 힘이 세다./ 초승달도/ 둥글둥글 보름달로 변하게 하니까.” 2001년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이동훈 어린이가 쓴 시 ‘추석’의 전문이다. 한가위 보름달이 엄청나게 크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힘이 아주 센 추석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을 풍성하게 맞이하려는 우리들의 예쁜 마음의 착시현상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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