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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물리학의 단열, 세상 속 단절

 

어릴 때 사용한 유리 보온병을 기억한다. 안쪽 유리병을 바깥 유리병이 둘러싸고 있는데 둘 사이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둘 사이의 안쪽 면은 거울처럼 도금해놓기도 했다. 바닥에 떨어지면 잘 깨져 낭패를 본 적도 많았다. 왜 유리 보온병은 잘 깨졌을까? 얼굴을 비춰 볼 수도 없는데 왜 거울처럼 도금을 했을까?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딱 붙여 놓으면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열이 전달된다. 높은 쪽의 온도는 내려가고 낮은 쪽의 온도는 올라간다. 결국 둘의 온도가 같아지는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붙여 놓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 걸까? 아니, 온도가 더 높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모든 물질은 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이 허락한 가장 낮은 온도인 절대영도가 아니라면 분자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여 0보다 큰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온도가 더 높은 물체 안 분자들은 더 빠른 속력으로 움직여 더 큰 운동에너지를 가진다. 온도가 다른 두 물체를 붙여 놓으면 둘의 경계에서 온도가 높은 쪽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입자가 온도가 낮은 쪽에서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입자와 만난다. 이 충돌로 빠른 입자의 속력은 줄고 느린 입자의 속력은 늘어난다. 많은 입자가 수많은 충돌 과정을 이어가면, 결국 온도가 달랐던 양쪽 입자의 평균 속력이 같아지고, 평균 운동에너지도 같아져 열평형 상태에 도달한다. 이처럼 입자들의 연이은 충돌로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을 열전도(thermal conduction)라고 한다.

보온병 안 따뜻한 음료의 분자는 안쪽 용기와 계속 충돌해 열평형 상태에 도달하고 음료의 온도는 안쪽 용기의 온도와 같아진다. 하지만 바깥쪽 용기와 안쪽 용기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면, 두 용기의 분자는 서로 만나 충돌할 일이 없고, 따라서 온도차는 시간이 지나도 줄지 않는다. 두 용기 사이의 공간을 가능한 한 진공에 가깝게 만드는 것이 성능 좋은 보온병을 만드는 방법이지만, 다른 문제가 있다. 두 용기 사이 빈 공간의 압력은 0이지만, 바깥쪽은 1기압이어서 압력차가 생긴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해도 1기압은 상당히 큰 압력이다. 가로, 세로 1㎝인 작은 면적에 무려 1ℓ 페트병이 하나 올라서 있는 압력에 해당한다. 가까스로 큰 압력차를 버티고 있는 유리 용기는 바깥에서 추가로 충격을 주면 쉽게 깨진다. 예전 유리 보온병이 약간의 충격으로도 ‘퍽’ 소리를 내며 쉽게 깨져 자주 망가졌던 이유다.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에너지가 전달되는 다른 방법이 있다. 오래전 중학생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 난방이 그리 잘되지 않는 교실에서 으슬으슬 추위를 견디다가 수업시간을 마치는 종이 울리면, 잠시 쉬는 시간 동안 바람 불지 않는 담벼락에 친구들과 옹기종기 나란히 한 줄로 서서 햇볕바라기를 하고는 했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을 통과해 검은색 교복에 닿아 내 몸의 체온을 올린다. 빛과 같은 전자기파는 아무런 분자의 충돌 없이도 훌쩍 공간을 가로질러 에너지를 전달한다. 바로 열복사(thermal radiation)다. 겨울에 검은 옷을 입고 햇볕바라기를 하면 금방 몸이 따뜻해지지만, 하얀색 옷이라면 별로 따뜻해지지 않는다. 입고 있는 옷의 색에 따라 빛의 흡수율이 달라 그렇다. 보온병의 안쪽 용기와 바깥쪽 용기 사이를 진공으로 만들어 열전도를 없애고, 두 용기 사이 공간의 안쪽 면을 거울처럼 도금을 해 열복사를 줄인다. 오래전 유리 보온병의 보온 성능을 높인 방법이다.

요즘 보온병도 과거 유리 보온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능 좋은 보온병은 하나같이 안과 밖, 두 겹으로 이루어진다. 둘 사이에 빈 공간을 두어 열의 전도를 가능한 한 차단하고, 빈 공간을 둘러싼 안쪽 면의 반사율을 높여 열의 복사도 줄인다. 안쪽 용기와 바깥쪽 용기 사이의 공간을 역학적으로 유지하는 버팀대로는 열의 부도체를 이용한다.

충돌이 있어야 평형도 있다. 얽히고설켜 토론하고 논쟁하다 보면 속도 상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서로 접촉해 만나야 합의도 평화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직접 분자가 충돌하지 않아도 빛을 통해 열평형이 이루어지듯이 몸으로 만나지 못해도, 귀 기울여 듣고 눈 크게 떠 서로 마주 서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물리학의 단열을 생각하며 세상 속 단절을 떠올린다. 직접 몸으로 만나, 애정의 눈으로 보고, 귀 기울여 들을 일이다. 화해도 평화도, 세상 속 단절을 이겨내야 가능한 것이 아닐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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