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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무심한 질소

기다림은 인간의 일이고 행성의 움직임은 우주의 일이라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계절은 바뀔 게고 그렇게 봄은 왔다. 봄이 오니 서둘러 산수유가 노랗게 꽃을 틔웠고 벚꽃도 곧 필 것이다. 식물이 꽃을 피우는 뜻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그 소임을 다한 꽃이 지면 열매를 키우는 몫은 잎이 전담한다. 하늘 높이 태양이 떠오르면 식물은 일제히 기공(氣孔)을 열고 이산화탄소를 흠뻑 들이켠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액체로 환골탈태한 뒤 설탕으로 흐르다 저장 기관에서 고체로 안착한다. 쌀알이나 옥수수, 알밤이 그런 것이다. 이런 모든 일은 빠르고 실수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재료와 에너지 모두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너무 느리면 전자 전달계 고압선을 흐르는 전자가 밖으로 튀어 나가거나 에너지가 헛되이 소모될 수 있는 것이다.

북반구 온대지역 식물에서 일제히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공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조금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동물이나 곰팡이가 호흡하며 부족해진 이산화탄소를 충당할 뿐만 아니라 밤이 되면 식물도 품앗이에 나선다. 아주 소량이긴 하지만 우리 인간의 들숨에도 이산화탄소가 들어 있다. 숨 쉴 때 들이켜는 공기의 양은 0.5ℓ 정도다. 그 안에 기체 분자가 100만개 들었다고 하면 이산화탄소는 400개 약간 넘는다. 대체로 무시할 수 있는 양이다. 대신 산소가 20만개, 질소가 79만개에 이른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렇다면 내쉬는 숨의 레퍼토리는 어떨까?

놀랍게도 우리는 들숨에 실려 온 산소를 다 쓰지 않고 밖으로 보낸다. 그 양은 생각보다 많아 날숨의 16%를 차지한다. 따라서 인간은 폐로 들어온 산소의 5분의 1 정도만을 전신으로 보내 물질대사에 사용할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공호흡으로 환자의 코에 산소를 불어 넣을 수 있다. 대신 날숨에는 이산화탄소가 4% 들어 있다. 이것이 온종일 2만번 남짓 숨을 쉬고 1만ℓ가 넘는 양의 공기를 처분하는 인간 호흡의 대차대조표이다. 생명체는 산소 없이 못 산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보리가 8할인 꽁보리밥에서 쌀 구경하기 어렵듯 숨 쉬는 공기에서도 산소는 사실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이 순간에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공기 분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질소는 산소의 독성을 누그러뜨린다. 초기 지구 대기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과 달랐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지구 역사 전반에 걸쳐 산소의 양은 어느 날 갑자기 늘어 오늘날에 이르렀고 이산화탄소의 양은 점차 줄어들었다. 화산 폭발을 통해 꾸준히 분출하는 소량의 질소도 쌓여갔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탄산염 광물로 바위가 되거나 식물의 몸통으로 숲을 이뤘지만 만약 질소가 없었다면 산소의 비율은 터무니없이 높아 동물이 살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고농도의 산소에 오래 노출되면 생체 조직이 손상된다. 대기 중에 산소의 양이 너무 많으면 산불의 위험성이 커진다. 화학적 ‘무관심’으로 심드렁한 질소는 산소를 일정한 비율에 머물게 함으로써 인간의 폐호흡을 돕는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말해도 질소는 우리 몸에 그냥 들어왔다 스치듯 지나간다. 바로 여기에 역설이 있다. 인체 단백질과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생체 고분자는 질소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다.

지구 역사 대부분 시간 동안 오직 몇 종류의 세균만이 질소를 세포가 이용할 수 있는 형태로 바꿀 수 있었다. 콩과 식물(legume)의 뿌리혹에 사는 세균이 그들이다. 모든 생명체는 사는 데 유기 질소 화합물이 필요하다. 식물도 생장하려면 질소가 필수적이다. 식량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인간들은 구아노라는 새똥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때 프리츠 하버가 등장했다. 그는 견고한 질소 결합을 끊고 그 사이에 수소 원자를 붙였다. 지구 역사에서 두 번째로 암모니아를 만든 것이다. 질소 비료 덕에 식량 생산량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하버가 ‘공기로 빵을 만든’ 인간계 프로메테우스가 된 연유다. 하지만 질소를 고정하는 데 인류는 총 전기 사용량의 1%를 투자한다. 이리 어렵사리 유기 질소를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폐를 떠나는 무심한 질소를 원망한다. 하지만 너무 탓하지 말자. 질소는 바로 그 ‘무위’로 우리 폐와 세포를 활성 산소로부터 지킨다. 79%의 너그러움이 20%를 보듬어 주는 것이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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