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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잘 변해야 맛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동태찌개입니다. 먼저 동태를 물에 씻고 비늘을 제거한 후 아가미와 배에 칼집을 넣어 내장을 제거합니다.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 저는 특히 이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참 운이 좋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알이 들어 있네요. 알을 잘 떼어내어 흐르는 물에 헹구고 찬물에 담가 놓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조리입니다. 저만의 비밀 레시피 양념으로 국물을 내고 4등분한 동태, 각종 야채, 그리고 깜짝 선물인 알을 넣고 팔팔 끓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알은 소금물에 담가 뒀어야 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도 괜찮기는 하지만, 더 훌륭한 요리가 될 기회를 놓쳤으니 아쉽기만 합니다.

 

소금물에 알을 담가 두면 좀 더 탱글탱글한 식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부드러운 생선살과는 또 다른 느낌이니 요리의 입체감이 살아납니다. 알에는 단백질이 풍부합니다. 단백질은 소금과 만나면 그 구조가 조금 더 치밀해지고 단단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단백질 변성이라 합니다. 소금물에 담가둔 알은 이런 변성작용으로 표면이 단단해지면서 고온의 조리에도 모양과 식감을 잘 유지합니다.

 

두부를 만들 때 간수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소금을 만들 때 얻어지는 간수는 콩 단백질을 단단한 두부로 변신시킵니다. 노란색의 중화면도 반죽할 때 간수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다른 면에 비해 훨씬 더 탱탱한 식감을 갖습니다. 또 다른 예로 어묵이 있는데요. 어묵을 만들 때 소금을 첨가하면 맛이 살아나면서 식감도 좋아집니다.

 

단백질은 여러 아미노산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마치 긴 실처럼 생긴 물질입니다. 그런데 일단 단백질이 만들어지면, 긴 실이 그러하듯 엉키면서 둥근 공과 같은 모양으로 변합니다. 여기에 소금이 첨가되면, 소금의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단백질의 엉킴을 풀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단백질은 원래도 잘 엉키는 성질이 있어, 주변에 있는 다른 단백질들과 다시 엉키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이전보다 그 엉킴의 영역이 더 넓어진다고 할 수 있는데요. 마치 넓은 그물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통해 단백질은 더 치밀해지고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소금 외에도 단백질을 변성시키는 물질은 많습니다. 산을 첨가해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요구르트는 이를 이용한 제품입니다. 우유를 발효시키는 유산균은 그 부산물로 산을 만들어 내는데, 산에 의해 우유의 단백질이 변성되면 점성이 있는 상태로 바뀝니다. 열 또한 변성을 일으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스테이크를 구울 때 표면이 단단해지는 것은 열로 인해 표면 단백질이 변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단단해진 표면은 내부의 육즙을 보존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요리는 마치 조각과도 같습니다. 조각가가 재료를 다듬어 아름다운 형태를 만들 듯, 요리사는 식재료를 다듬어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냅니다. 조각가는 자신이 다루는 재료의 성질을 잘 알아야 하고, 조각하는 기술도 꾸준히 연마해야 합니다. 요리사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리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식재료 그 자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식재료가 맛있는 요리로 잘 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