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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요리에 과학 한 스푼]요리는 균형이다

먹다 남은 음식을 냉장고에 넣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습니다. “당신 과학자 맞아? 뚜껑은 덮어야지!”라고 말이죠. 사실 냉장고 안에서는 음식의 건조가 빨리 진행됩니다. 냉장고라는 밀폐된 공간은 낮은 온도로 인해 공기 부피가 줄어드는데, 그러면 내부 압력이 낮은 상태가 되고, 여기에 수분을 머금은 음식이 들어오면 증발이 쉽게 일어나게 됩니다. 압력이 낮아진 공기에는 수분이 증발해 들어갈 공간이 많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곡식 알갱이로 만드는 뻥튀기에도 이 원리가 이용됩니다. 밀폐된 용기 안에 알갱이를 넣고 가열한다고 갑자기 밸브를 열면 뜨거운 공기가 빠지면서 순간적으로 내부 압력이 낮아집니다. 그러면 알갱이로부터 수분 증발이 매우 활발해지고, 수분이 기체가 되면 엄청난 부피 팽창이 일어나기 때문에 ‘뻥’하면서 알갱이가 부풀어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내부 압력을 낮추기 전에도 알갱이의 수분 증발은 계속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다만 용기 안에 증기가 많아지면 다시 이 증기가 수분으로 되돌아가려는 작용이 일어나 알갱이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즉 수분이 증발하고 다시 증기가 수분으로 응결하는 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상호 균형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이때 갑자기 내부의 압력을 낮추면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증발하는 작용이 강해집니다.

 

균형과 균형의 기울어짐은 과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은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균형에 기울기가 생기면 새로운 변화가 발생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이용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이와는 반대로 새롭게 균형을 찾아가려는 현상이 이용되기도 합니다. 요리에서 그 예를 찾아보자면 대표적으로 삼투현상이 있습니다. 이는 농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물이 이동하는 현상입니다. 농도가 높은 쪽은 물이 추가되어 농도가 낮아지고, 농도가 낮았던 쪽은 물이 빠져나가 농도가 높아지면서 서로 간의 농도 균형이 맞춰지는 것입니다.

 

배추를 소금물에 담그면 안과 밖의 농도 균형을 위해 배추 안의 물이 밖으로 빠져나옵니다. 이렇게 물을 빼내지 않으면 발효 도중에 서서히 물이 흘러나와 김장을 망칠 수 있습니다. 삼투현상의 또 다른 예로는 다량의 설탕을 넣고 과일을 졸여서 만드는 잼이 있습니다. 무게 대비 거의 절반 이상의 설탕이 사용되는데, 설탕의 농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사용되는 과일뿐 아니라 과일에 숨어 있던 미생물도 심각한 탈수 상태에 빠져버립니다. 균이 번식할 수 없기 때문에 보존성은 높아집니다. 단무지나 장아찌와 같은 염장 식품도 마찬가진데요. 수분이 제거되면서 보존성이 좋아지고, 오독오독 씹히는 독특한 식감 또한 얻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요리사는 균형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선 서로 궁합이 잘 맞는 식재료들을 선별해야 하고, 그리고 이것들을 가공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풍미의 균형도 잘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요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활발한 작용들 사이의 균형 관계를 잘 이해하는 일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