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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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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공지능 만들기? 최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케임브리지대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인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등장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평소 현대 물리학에 따르면 신은 불필요하다는 등의 대중적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주장을 자주 하곤 했던 호킹의 말이어서인지 이번에도 언론의 반응은 뜨거웠다. 호킹의 우려가 현실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착한’ 인공지능만을 개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호킹 주장의 현실성은 매우 논쟁적이다. 과연 인간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사악한’ 인공지능이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까? 필자가 인공지능 학자는 아니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비교적 자신있게 할 수 있다. 현재의 인공지능 연구 수준을 고려할 때, 선하건 악하건 인간..
똑똑해지는 32가지 방법 에 등장하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는 램프의 주인이 요구하는 대로 뭐든지 들어주는 요정이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요정에게 소원을 빌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소원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요정이 등장하는 한 우화에서, 오래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천 년 동안 살고 싶다’고 소원을 말했다. 그러자 요정은 그를 천년 동안 살 수 있는 나무로 만들어 주었다. 인간으로 천년 동안 살고 싶다고 좀 더 자세하게 소원을 말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 우화의 교훈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늙고, 병들어, 고통스러운 채로 천년을 살아 봤자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
메르스, 임계전이 그리고 계산역학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전쟁과 전염병은 인류를 위협하는 대표적 사건이다. 14세기, 1억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흑사병이나 1920년 5000만명을 사망케 한 스페인 독감은 대표적인 지구적 전염병이다. 이후 과학 지식의 증가와 개인별 위생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이전과 같이 수백만명 단위의 사망자는 생기지 않지만 전 지구적 수준의 전염병 출현 빈도는 더 잦아지고 있다. 전염병 퇴치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병원체와 감염경로를 확증하는 일이다. 그 다음으로는 그 확산 범위를 예측하고, 중요 길목을 지켜 더 이상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런데 지도를 펼쳐 발원지에 중심을 둔 동그란 원을 그려 그 구역을 격리하는 방식은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나 통할 방법이다. 도시화가 완성..
고구마와 인간의 공통점 지금 미국에서는 유전자변형식품(GMO) 표시제 시행을 두고 활발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GMO 개발 최강국인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표시제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다만 몇 년 전부터 주별로 GMO 표시제를 요구하는 소비자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르면 내년 7월부터 버몬트 주에서 표시제가 시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과학계의 전반적인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됐는데 굳이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표시제가 시행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외국 과학계에서 발표된 논문과 성명서에는 이런 불편한 심기가 확연히 드러나는 듯하다. 자신이 사 먹는 식품의 성분을 알고 싶다는 소비자의 요구가 과학적으로는 가치가 없어 보인다는 의미일까. 지난달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논문 한 편이 ..
과학교육, 무엇을 담느냐가 핵심 2018학년도부터 초중등 교육과정이 크게 바뀔 예정이다. 정부안의 핵심은 문이과 구별을 없애는 통합형 교육과정이다. 미래 지식기반 융합시대를 살아갈 다음 세대 학생들이 다양한 시각과 지식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를 위해, 과학교육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듣는 ‘통합과학’이 차세대를 위한 기초 과학소양 제공을 담당하게 되고, 전문적인 심화 내용은 기성세대의 귀에 익숙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의 교과목이 나누어 맡게 된다. 정부안의 전체적인 구도는 바람직해 보인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받게 될 과학교육에 문과적 내용과 이과적 내용이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교육과정을 모든 학생이 배우는 공통 부분과 학생들마다 필요에 따라 선택하여..
현대인의 ‘비동기식 문화’ 선호 정보통신 시스템을 설계할 때 동기식과 비동기식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선택된 방식에 따라서 초기 투자비용과 이후의 확장성 문제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동기식은 각 개체들이 정해진 공통의 시각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는 방식을 말한다. 군대는 동기식 문화의 전형적인 예이다. 6시에 취사병은 식사를 준비하고 병사들은 그 시간에 와서 식사를 한다. 취사병이 병사들의 기상 여부를 체크한다거나, 또는 병사들이 식당에 밥이 나왔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없다. 동기식은 이렇게 정해진 시간에 각자 자기 일을 하면 된다. 이와 반대로 비동기식의 과정은 좀 복잡하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의 아침식사는 전형적인 비동기식 진행이다. 식사는 꿈틀대며 자고 있는 아이들의 상황을 수시로 보면서 준비되어야 ..
정원과 삼림을 지배할 GMO 형형색색의 예쁜 꽃을 피우며 도심의 화단을 장식하고 있는 피튜니아. 이제 피튜니아가 스스로 빛깔을 바꿔가며 우리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게 될지 모르겠다. 지난 3월 미국 콜로라도주의 분자생물학자 두 명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에서 하루에 몇 차례 색이 바뀌도록 ‘마법을 건’ 피튜니아를 개발하겠다며 연구비 지원을 요청했다. 아침에 햇살을 받으면 하얀 꽃이 파랗게 변하고, 연구진이 개발한 액체를 뿌리면 빨갛게 바뀌도록 피튜니아의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목표액인 7만5000달러의 30% 정도만 모금돼 프로젝트 진행은 실패했지만, 현대 과학기술이 꽃의 색깔 정도는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다.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돼온 유전자변형식품(GMO)은 사람과 가축이 섭취하는 농작물이었..
인간을 위한 우주? 역사적으로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의미를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논박한 것에서 찾는 사람이 많았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따르면 인간은 우주의 변방에 위치한 지구에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실은 당시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에는 불완전한 4원소가 존재하고 오히려 중심에서 떨어진 천구가 완전한 원소인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는 것이 꼭 더 고귀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자연의 근본 법칙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우주에서의 인간 지위가 매우 특별하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증거가 속속 발견된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 원리(anthropic principle)’라는 독특한 설명 원리도 제안되었다. 일단 지구의 위치와 궤도가 특별하다. 태..
엄정함과 효율의 이득과 비용 스마트폰에서 배터리를 아껴주는 애플리케이션(앱)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항시 켜져 있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앱을 강제로 꺼버리거나, 와이파이 송수신 작업의 정도를 상황에 맞게 조정하면 배터리 소모를 줄일 수 있다. 화면 밝기나 중앙장치의 성능을 낮추는 방식으로도 전원이 절약된다. 휴대폰을 구석구석 뒤져서 낭비되는 부분을 깨알같이 조사하면 전원을 아낄 수 있지만, 문제는 이 과정 자체에도 만만찮은 전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론 배터리 절약 앱 그 자체 때문에 더 빨리 전원이 소모되는 황당한 경우도 나타난다. 메모리 절약 프로그램도 같다. 메모리를 상시 감시한다는 핑계로 큰 덩치의 프로그램이 도리어 메모리를 더 차지하기도 한다. 메모리 절약, 절전 앱은 그때그때 매우 정밀하게 설정해야만 원하는 효과를 ..
GMO용 농약이 더 무섭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안전성을 두고 과학계에서 다시 논란이 촉발되고 있다. 이번에는 GMO 자체가 아니라 GMO를 재배할 때 함께 살포하는 농약의 위해성에 대한 논란이다. 지난달 21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한 의학 학술지를 통해 글리포세이트가 높은 수준의 발암성 물질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글리포세이트는 세계 경작지에서 널리 사용돼온 제초제이다. 특히 GMO를 재배할 때 주로 살포되고 있으며, 바로 GMO 때문에 그 사용량이 대폭 증가하고 있는 제초제이기도 하다. 과연 GMO가 무엇을 위해 개발되고 있는지에 대한 오랜 의구심이 새삼 생기게 한다.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진 GMO가 재배돼왔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GMO는 두 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핵을 둘러싼 ‘비현실적 몽상’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광복은 일본이 1945년 8월15일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찾아왔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이었다. 1945년이 되면서 일본 전역에 퍼부어진 소이탄으로 전국이 불바다가 되면서 일본의 패망은 거의 확실해졌다. 그런 와중에도 일본 군부는 천왕제를 지키기 위해 막판까지 미국과 항복 조건을 협상하려 들었지만, 핵폭탄은 일본의 마지막 자존심도 굴복시켰다. 핵폭탄은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이끄는 대규모 과학자 및 공학자 팀이 로스 알라모스에서 수행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졌다. 핵폭탄 개발 과정에서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수많은 이론적 난제와 정교한 기폭장치 개발과 같은 실천적 문제를 풀어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
인터넷에도 ‘공정한 제삼자’는 없다 정보 유출은 심각한 사회문제이긴 하지만 이젠 만성화된 일상사가 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해커의 손에 이미 넘어갔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주민번호 대체 용도인 아이핀까지 뚫려 상황은 더 꼬이고 있다. 당국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공문서에 주민번호, 전화번호 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공무 행정용 컴퓨터를 불시에 점검해 주민번호와 같은 개인정보가 담긴 파일이 나오면 엄중한 조치를 당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해킹이나 내부자에 의한 정보 유출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정보 노출이다. 정보 유출은 피해자가 나타나거나, 이번 한수원 사태와 같이 해커들이 떠벌림으로써 공론화되지만 자발적인 정보 노출은 당사자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
2세대 GMO의 등장 최근 미국에서 새로운 종류의 유전자변형식품(GMO)이 잇달아 상업용 재배 승인을 받고 있다. 잘랐을 때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 사과, 튀겼을 때 발암물질이 적게 나오는 감자가 그것이다. 농업 생산자의 이익을 주로 강조한 1세대 GMO에서 최종 소비자의 직접적인 기호를 겨냥한 2세대 GMO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세대 GMO의 대표적인 농작물은 콩과 옥수수이다. 1996년 상업용으로 출시된 이후 지난 20여년간 세계인이 섭취하고 있는 종류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들의 존재를 잘 실감하기 어렵다. 유전자변형 콩과 옥수수는 대부분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콩의 기름 성분과 옥수수의 전분 및 전분당은 우리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가공식품에 포함된다. 콩과 옥수수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은 소비자..
수학의 ‘둥글둥글’ 인성교육? 올해부터 인성교육을 시행한다고 하지만, 수학 교육에서는 이미 발빠르게 몇 년 전부터 이를 실천해 왔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 ‘원’이라는 단원의 교사용 지도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인성교육 활동’이라는 제목으로 제시되어 있다. ‘성격이 모나지 않고 매우 원만한 사람을 성격이 둥글둥글하다고 한다. 모난 부분이 없는 원처럼 우리도 세상 사람들과 둥글둥글 지낸다면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인성교육이라 할 수 있는지는 미뤄놓고, 과연 수학과 인성교육이 관련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에서 수학자 케이스 데블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학은 전적으로 인간이 창조한 산물이며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성 자체의 연구이다. 왜냐하면 수학의 기반을 이루는 것 중에서 그 어떤 것도 물리..
우리는 정말 ‘똑똑’해지고 있나 예전에는 집집마다 ‘지식의 보고’라 불리던 백과사전 한 질씩은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두꺼운 책을 꺼내기도 쉽지 않고 정작 궁금한 내용은 찾아도 없는 경우가 많아 활용도는 높지 않았다. 그에 비해 요즘에는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간단한 사실부터 학술논문까지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모르는 것을 찾아보고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물론 저작권 문제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정보도 많지만 그때 그때 떠오르는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결하기에는 몇 번의 클릭과 검색어 조합만으로 충분하다. 누구나 자신이 ‘만물박사’라도 된 것처럼 으쓱해질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내’가 똑똑해진 것일까? 혹시 내가 ‘똑똑한’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똑똑해졌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똑똑한’ 기계에..
친구들이 항상 부러운 이유 내 친구들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를 친구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전체 사용자의 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수를 모두 더해서 사용자로 나누면 평균적인 친구 수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친구의 친구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를 더해서 친구 수로 나누면 평균적인 친구의 친구 수를 구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볼 때 어떤 사람의 친구 수와 그 친구들의 친구 수, 이 둘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어차피 친구도 전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 두 값은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놀랍게도 이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2011년 720여만명의 페이스북 전체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되었다. 페이스북 사용자의 친구 평균은 200명 정도인 데 비..
유전자변형생명체의 위험성 지금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지역에서는 유전자변형생명체(GMO)를 생태계에 방출하는 문제를 두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농작물 얘기가 아니다. 열대지역에서 뎅기열이나 치쿤구니아 열병을 일으키는 모기가 논란의 대상이다. 영국의 생명공학회사 옥시테크는 열병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유전자변형기술을 활용했다. 암컷과 짝짓기를 했을 때 후손이 죽도록 수컷의 유전자를 변형한 것이다. 이미 브라질, 말레이시아, 파나마에서는 이 모기의 생태계 방출 실험이 진행됐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동일한 실험에 대한 승인을 검토하고 있어 미국에서도 논란이 시작됐다. 승인이 이뤄진다면 300만마리 이상의 유전자변형 수컷 모기가 방출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을 무는 모기는 암컷이기 때문에 수컷의..
수ː직썬과 수직썬 하나의 단어에 여러 가지 뜻이 들어있는 동음이의어는 맥락을 알기 전에는 그 뜻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배’라는 일상적인 단어도 사용되는 문장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을 가진다. ‘먹어 본 배 중에서 가장 달다’, ‘배가 너무 고파 쓰러질 것 같다’, ‘강물에 이 배를 띄우자’에서와 같이 문맥을 살펴보아야만 사용되는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이들 동음이의어 사이에도 적자생존의 싸움이 일어난다고 한다. ‘창밖에 내리는 눈(雪)을 바라보는 그의 눈(眼)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에서의 ‘눈’이라는 단어와 ‘겨울밤(夜) 옹기종기 모여앉아 화로에 구워먹는 밤(栗) 맛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에서의 ‘밤’이라는 단어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은 각각 소리의 ..
99%를 위한 과학 교육 지난해 극장가 대표 흥행작 중 하나가 과학영화 다. 그런데 신기한 미래기술이 난무하는 다른 과학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의 미래세계는 다소 실망스럽고 낯설다. 전 지구적 환경재앙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조차 너무 힘들어진 미래에 주민 대다수는 농부다. 자연스럽게 당장의 생존에 별 도움을 못 주는 우주탐사를 위한 과학기술 연구에 시민 대다수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주인공인 쿠퍼는 이런 상황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일 말고도 추구할 가치가 있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는 점을 역설한다. 영화의 결말은 결국 쿠퍼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 그의 딸이 과학 연구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인구의 99%가 농부인 사회에서 이루어질 과학 연구가 고도 산업사회의 과학 연구와 상당히 다르리라..
코딩과 요리는 ‘생존 수단’ 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일반 가정에는 잡다한 공구가 준비되어 있어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곤 했다. 아이들도 놀이 기구, 예를 들면 가오리 연이나 자치기 막대, 썰매, 새총 등은 각자 만들어야만 놀이에 낄 수 있었다. 요즘은 뭐든 인터넷이나 마트에서 팔기 때문에 집에서 뭔가를 만들거나 집안 물건을 뚝딱이며 고칠 일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집안 물건이 고장 나면 수리 기사가 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야 한다. 그 안을 뜯어보고 싶은 호기심은 굴뚝같지만, 그런 짓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물건 여기저기에 시퍼렇게 쓰여 있기 때문에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기사가 와도 직접 고치는 시범을 보여주는 경우도 별로 없다. 어떤 부품을 얼마에 갈아야 하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운이 없는 날에는 고치느니 새로 사는 것이 좋다는 ..
복제동물 전성시대 얼마 전 과학자들이 멸종에 이른 야생 소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인도에 단 한 마리만 남아 있던 종을 국립낙농연구소가 복제함으로써 멸종위기를 넘길 수 있는 희망을 준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별다른 화제가 되지 못했다. 멸종위기란 말도 그렇지만 복제동물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 무관심해진 대상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복제동물이 우리 생활에 이미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새삼스럽지만 복제동물이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6년 복제양 돌리가 태어났을 때 세상은 무척 떠들썩했다. 인간이 포함된 포유동물이 복제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세간의 관심은 우선 복제기술 자체의 경이로움에 맞춰졌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수..
노란 중앙선과 수학적 정의 수학은 약속에서 시작한다고 할 때, 그 약속은 “점은 크기가 없고 위치만 있다” 또는 “선은 폭이 없는 길이다” 등과 같은 수학적 정의이다. 크기가 없는 점과 폭이 없는 선이라니 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이처럼 낯설고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통 사람들이 다가가기 쉽지 않아 보이는 정의가 여럿 있다. 걔중에는 말장난 같아 보이는 것도 있는데, “유한이 아니면 무한”이라는 정의가 그것이다. 무한의 세계를 상상하며 어느 정도 신비스러움을 기대했다면 정말 싱겁기 짝이 없어 실망감을 지나 무엇인가에 사기당한 느낌마저 들 수도 있다. 그럼 도대체 유한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이어가겠지만, 그렇다고 ‘무한이 아닌 것은 유한’이라는 식의 정의는 물론 아니다. 유한에 대한 정의는 좀 복잡하니, 아쉽겠지만 관심이..
원숭이도 공정하지 않으면 참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알려진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법률을 비롯한 사회제도는 약육강식의 ‘자연 상태’에서 살던 이기적 인간이 자신의 장기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한 해결책이다. 이런 사회제도에는 개인들 간 상호작용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약속 준수의 의무나 상호작용이 공정해야 한다는 조건 등이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반면 공정함을 추구하는 것은 본성에 반하지만 장기적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도입한 인공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경험과학의 연구 결과는 이와 다른 결론을 시사한다. ‘최후통첩’ 게임 상황이 대표적이다. 연구자들은 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피실험자를 모집하여 둘씩 짝을 지어 조편성을 했다. 그런 다음 각 조마다 일정한 액수의 돈을 주고 ..
사람과 비행기 판매 단위로 볼 때 가장 복잡한 기계는 현대식 비행기일 것이다. 하드웨어로나 소프트웨어 구조 면에서 이같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융합된 기기에 비교할 대상은 없다. 사람과 비행기의 공생 과정을 보면 인간과 기계의 기술문화사를 압축해서 확인할 수 있다. 1924년 관리자가 탑승하지 않는 전자동 승강기가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고 한다. 관리원이 사라진 커다란 통 속에 들어가면 나 홀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승강기의 추락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성추행이나 폭행 따위를 더 조심해야 한다. 기계화에 일찍 눈을 뜬 서양인들에게 비행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이트 형제는 시작부터 무인 비행기에 관심이 있어 진자를 이용한 자동 운항장치를 고안했다. 이 장치는 이후 ..
영국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 미국에서 중단된 유전자 검사 서비스가 영국에서 새롭게 시작됐다. 의료기관이 아닌 민간업체로서 인간의 유전자를 검사해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을 제공해온 23앤드미(23andMe)가 영국에서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유전자 검사 장비가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 의료기기라는 이유로 서비스 중단 명령을 받은 지 1년 만의 일이다. 영국 정부는 미국에서의 논란을 벗어난 범위에서 서비스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미국에서와 동일한 논란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심지어 ‘맞춤형 아기’가 태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유전정보를 궁금해하고 알 권리가 있다는 업체 측의 주장은 한편으로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유전자 검사 시장이 확장됐을..
자연의 시간, 인간의 시계 12월, 시간을 의식하는 시간이 잦아지는 시간이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색 바랜 옛 사진 속 얼굴은 시간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3차원 공간과는 달리 우리에게 시간은 1차원이다. 하나의 선 위에 과거, 현재, 미래가 차례로 놓여 있어 마치 강물이 흐르는 듯 시간을 연상한다. 손으로 물이 움켜잡히지 않듯 시간은 늘 흘러만 간다. 현재를 의식하는 찰나 그것은 이미 흔적만 남긴 채 과거가 되어버린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그 존재마저 장담하기 어렵다. 많은 철학자들이 시간의 본질에 관해 성찰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시간은 길이, 무게, 부피와 같이 측정이 가능하지만 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형체도 없고 냄새도 없어 우리의 감각기관으로는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시간을 표현하는 역법과 이를 측정..
루빈, 샌드버그에게 묻다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의 책 에는 그녀가 정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시기에 겪었던 인상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던 로버트 루빈은 아직 업무도 파악하지 못한, 풋내기 공무원 샌드버그에게 당시 진행되던 국세청의 구조조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경험 많은 고위직 공무원을 다 제쳐두고, 회의실 뒤쪽에 앉아 있던 샌드버그를 지목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샌드버그는 아는 것도 거의 없는 데다 일단 너무 놀라 제대로 답을 못했다. 의아해하는 샌드버그에게 루빈은 “당신이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신참이어서 오히려 이 일에 몰두해 온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말했다. 루빈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재무..
인터넷 세상과 자살 스위치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오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거의 모든 신분 확인에 휴대폰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없으면 좀비와 같은 처지가 된다. 문제는 분실했을 때다. 그래서 잃어버린 휴대폰의 내부 데이터를 원격으로 완전히 지울 수 있는 기능이 제공되고 있다. 기계는 잃어버려도 그 안의 정보는 이렇게라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퇴각하는 군인이 남은 무기를 모두 불태워 적군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전략과도 같다. 특히 대부분 업무를 폰으로 하는 요즘 그런 정보 덩어리가 경쟁 업체에 들어간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요즘 산업스파이는 금고 속 설계도가 아니라 책임자급의 폰을 노린다. 그런데 데이터가 완전히 지워진 휴대폰도 초기화를 거치면 새 기기로 되팔 수 있다. ‘잃어버린 휴대폰의..
GMO 안전성 프로젝트 유전자변형식품(GMO)이 인체에 위험한지를 추적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가 출범할 예정이다. 이미 20여년간 세계인이 섭취해온 GMO의 안전성을 새삼스레 검증하겠다고 나선 사실 자체가 의아할 수 있다. 그동안 개발사는 동물섭취 실험 등을 통해 GMO가 보통 농산물처럼 인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과학계 일각에서는 안전성을 입증하는 기존의 실험설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프로젝트의 출범은 GMO의 안전성을 둘러싼 과학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시사한다. 11일 러시아, 유럽, 미국의 과학자들이 새로운 실험설계에 기반을 둔 ‘팩터 GMO 프로젝트(factorgmo.com)’를 내년에 가동한다고 세계 언론에 알렸다. 비정부기구를 표방한 러시아의 한 단체(NAGS..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10여년 전 이 무렵이다. 출제한 수학 문제는 이미 오래전에 인쇄소로 넘겼다. 늦가을에 남아 있던 낙엽마저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쓸쓸한 바깥 풍경 탓이었는지, 아니면 고작 30문항의 수학 문제에 당시 80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인생이 좌지우지된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감내하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저 소주잔만 기울였던 기억은 지금도 또렷이 남아 있지만. 3주 정도 작은 방에 갇혀 있어 그런지 맹맹했던 술맛까지. 올해도 어김없이 ‘교과서만 충실하게 공부하면, 그리고 교육방송의 강의만 제대로 들으면’과 같은 공허한 소리가 조만간 들릴 것이다. 순진하게 이를 곧이곧대로 믿고 따라 했다가는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기는커녕 수능시험에서도 틀림없이 낭패를 볼 것이다. 수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