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서 배터리를 아껴주는 애플리케이션(앱)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다. 항시 켜져 있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앱을 강제로 꺼버리거나, 와이파이 송수신 작업의 정도를 상황에 맞게 조정하면 배터리 소모를 줄일 수 있다. 화면 밝기나 중앙장치의 성능을 낮추는 방식으로도 전원이 절약된다. 휴대폰을 구석구석 뒤져서 낭비되는 부분을 깨알같이 조사하면 전원을 아낄 수 있지만, 문제는 이 과정 자체에도 만만찮은 전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론 배터리 절약 앱 그 자체 때문에 더 빨리 전원이 소모되는 황당한 경우도 나타난다. 메모리 절약 프로그램도 같다. 메모리를 상시 감시한다는 핑계로 큰 덩치의 프로그램이 도리어 메모리를 더 차지하기도 한다. 메모리 절약, 절전 앱은 그때그때 매우 정밀하게 설정해야만 원하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이 과정은 우리를 무척 피곤하게 만든다. 절전 문제는 그냥 여분의 배터리를 가지고 다니거나 잠시 꺼두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간결한 해법이다.
효율은 공학의 궁극적인 화두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성능의 제품이나 방법을 만들어내는 것은 모든 공학자들의 사명이다.
예를 들어 쿨리-튜키의 고속 푸리에 변환 알고리즘은 문명사에 한 획을 그은 효율화의 결정체이다. 그런데 이 효율의 문제를 공학이 아닌 사회에 적용할 때에는 그 효율화 과정의 효율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효율화의 효율, 즉 메타 효율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 문제를 고려하지 않으면 모순된 상황에 빠지기 쉽다.
이를 설명하기 좋은 황당한 실화가 생각난다.
일선 학교를 방문한 높으신 분에게 선생님들이 행정 잡무를 개선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 이후 해결책이 하달되었는데 그 내용인즉, 각 잡무별 강도와 빈도, 잡무라고 생각하는 이유 등을 개선방법과 함께 정리해서 정기적으로 보고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효율을 달성하기 위하여 집단이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은 감시와 처벌이다. 감시가 치밀하고 처벌이 정교할수록 효율은 극대화되지만 그 과정의 비용은 간과된다. 공무원 마일리지 관리제도가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출장 때 얻은 항공 마일리지를 보고하고 이를 엄정하게 관리하여 사사로이 사용치 못하게 하는 것은 좋으나, 그 감시와 관리에 드는 비용에 대한 고려는 보이지 않는다.
30개가 넘는 항공사별로 마일리지를 관리하는 일부터 간단치 않다. 엄밀하게 본다면 마일리지가 공유되는 항공사들끼리는 합산을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국제학회는 성수기에 열리기 때문에 마일리지 항공권 자체를 구할 수 없다. 그때마다 어떤 이유로 마일리지 항공권을 구할 수 없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일은 꽤나 번거롭다. 또 퇴임이 가까운 공무원들은 마일리지 특별 관리대상으로 분류된다. 더구나 마일리지의 유효기간까지 고려한다면 일은 더 복잡해질 것이다.
무상급식, 선별급식이 논란이다. 행정에서 뭔가를 엄밀하게 구별하는 것은 아닌 경우보다 대부분 더 나은 정책을 만들어내지만, 높으신 분들에게 그 과정의 비용은 쉽게 무시된다.
선별급식 정책의 요체는 가난함을 확증하는 일이다. 그 확증을 당사자가 안 해도 되게 배려해줄 수는 있지만 결국은 누군가 이 일을 해야 한다. 아무나 손을 든다고 다 지원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경남도의 무상급식 중단 첫날인 1일 경남 지수면 지수초등학교 학부모들이 학교 건물 뒤편 공터에 조리시설을 설치하고 자녀의 점심을 만들어 나눠주고 있다. _ 연합뉴스
부유한 피부양자들로 인하여 보험재원이 낭비되는 현실을 봐도 엄중한 감시는 꼭 필요하다. 따라서 선별급식의 철학대로라면 가난의 상태를 상시 확인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월별로 급식비를 내기 때문에 같은 원리로 수혜자가 가난에서 벗어났는지, 또 새로운 가정이 가난의 굴레로 들어왔는지 매월 확인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일을 과연 누가 어떻게 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 엄정함이 사회정의에 중요한 일이라면 노년층 무임승차로 인한 연 4000억원의 지하철 적자 해소를 위한 등급별 선별지원책도 같이 따져볼 만한 일이다.
프로그램을 개선할 때는 프로파일링 작업을 통하여 가장 많은 계산이 몰리는 곳을 찾아서 그곳부터 손을 봐야 한다. 그런 정보 없이 여기저기 들쑤시면, 성능 개선은커녕 프로그램은 누더기가 된다. 무상 공동급식의 이념과 효율을 따지기 전에 먼저 효율이 필요한 가장 뜨거운 곳이 어딘지를 찾아야 한다. 우리가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재평가와 책임 추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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