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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정원과 삼림을 지배할 GMO

형형색색의 예쁜 꽃을 피우며 도심의 화단을 장식하고 있는 피튜니아. 이제 피튜니아가 스스로 빛깔을 바꿔가며 우리의 눈길을 더욱 사로잡게 될지 모르겠다. 지난 3월 미국 콜로라도주의 분자생물학자 두 명이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인디고고에서 하루에 몇 차례 색이 바뀌도록 ‘마법을 건’ 피튜니아를 개발하겠다며 연구비 지원을 요청했다.

아침에 햇살을 받으면 하얀 꽃이 파랗게 변하고, 연구진이 개발한 액체를 뿌리면 빨갛게 바뀌도록 피튜니아의 유전자를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목표액인 7만5000달러의 30% 정도만 모금돼 프로젝트 진행은 실패했지만, 현대 과학기술이 꽃의 색깔 정도는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다.

그동안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돼온 유전자변형식품(GMO)은 사람과 가축이 섭취하는 농작물이었다. 이제는 화훼와 삼림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기능을 갖춘 GMO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사실 화훼용 GMO는 콩과 옥수수로 대표되는 식량용 GMO와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했다. 1997년 호주의 플로리젠사가 파란 카네이션을 시장에 내놓았다. 2009년 일본의 산토리사가 선보인 파란 장미는 일본 내 240개 점포에서 판매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작회사가 피튜니아의 수명을 연장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기능을 갖춘 국화, 나리, 선인장, 잔디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승인심사 절차는 식량용 GMO에 비해 간단하다. 음식으로 섭취할 때 생길 수 있는 건강 위해성에 대한 심사는 제외되고 환경 위해성 위주의 평가가 이뤄진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유전자가 변형된 아주 이색적인 꽃들이 주변 정원을 가득 채울지 모를 일이다. 삼림 분야로의 진출도 본격화됐다. 지난달 브라질 정부는 이스라엘의 퓨처진사가 개발한 유전자 변형 유칼립투스의 상업적 재배를 승인했다. 잡초에서 분리한 성장촉진 유전자를 삽입함으로써 보통의 유칼립투스보다 20% 이상 빨리 자라도록 개발됐다.

호주가 원산지인 유칼립투스는 원래부터 빠른 성장속도로 유명하다. 10년 내에 100m 이상 자라고 목질이 단단해 산업용으로 활발하게 재배되고 있다. 퓨처진은 지금보다 좁은 면적에서 더욱 많은 산업용 목재를 얻기 위해 유칼립투스의 유전자를 변형시킨 것이다.

유전자 변형으로 만든 해충방지 목화와 일반 목화 (출처 : 경향DB)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들도 뒤를 바짝 따라가고 있다. 원래 열대지역에서 자라던 유칼립투스를 한겨울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변형시켜 미국 남동부 지역에 심겠다는 계획이다. 미국과 중국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이미 상업화돼 야외에서 자라고 있는 품목도 있다.

포플러, 파파야, 자두나무 등이다. 세계적으로 삼림용 GMO에 대한 시험재배가 승인된 건수는 최근 20여년 동안 700건 이상이다.

한편에서 생태학자들은 유전자 변형 유칼립투스가 기존의 삼림 생태계를 지배함으로써 기존의 자생식물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원래 목표대로 한정된 지역에서만 자라지 않고 주변으로 급속히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발사들은 불임기술의 적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미생물에서 분리한 특정 유전자를 삽입하면 유칼립투스의 꽃가루 생산을 억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불임의 성공률이 얼마나 높은지 따져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그 전에 유칼립투스가 생태계에 이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에 유칼립투스 조림지가 형성되면서 토착 원시림이 사라지고 있다. 유칼립투스가 워낙 물과 영양분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자생종이 살아남기 어려워진 데다, 조림지를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벌목작업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이 유칼립투스 조림지대를 ‘녹색사막’이라고 부르며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개발사의 입장은 다르다. 오히려 유전자 변형 유칼립투스가 지속가능한 삼림경영을 실현시켜 준다고 주장한다. 새삼 ‘지속가능한 개발’이란 개념이 얼마나 모호한지 알 수 있다.

다음 세대의 생존을 위해 무분별한 개발을 자제하자는 취지에서 1980년대에 등장한 이 용어가 이제는 GMO로 생태계를 직접 변화시키는 업계에서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