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유출은 심각한 사회문제이긴 하지만 이젠 만성화된 일상사가 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해커의 손에 이미 넘어갔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주민번호 대체 용도인 아이핀까지 뚫려 상황은 더 꼬이고 있다.
당국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공문서에 주민번호, 전화번호 같은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공무 행정용 컴퓨터를 불시에 점검해 주민번호와 같은 개인정보가 담긴 파일이 나오면 엄중한 조치를 당한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해킹이나 내부자에 의한 정보 유출이 아니라 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정보 노출이다.
정보 유출은 피해자가 나타나거나, 이번 한수원 사태와 같이 해커들이 떠벌림으로써 공론화되지만 자발적인 정보 노출은 당사자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누른 “좋아요” 정보를 분석하면 재산 정도, 결혼 여부, 지능, 정치적 성향을 기존의 어떤 검사방법보다도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좀 낮은 정확도이긴 하지만 심지어는 동성애, 부모의 이혼 여부, 마약 복용 이력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블로그의 글 하나만 읽고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다른 글까지를 넓혀 읽어보면 짐작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해당 블로그에 연결된 친구들 사이트까지 확장하면 원하는 정보를 더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다. 이 일을 수작업으로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여기에 초대형 컴퓨터가 동원되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아무리 티끌만 한 개인정보라도 비슷한 사람이 많고, 오랜 시간 동안 쌓이게 되면 현재는 노출되고, 미래는 예측된다. 빅데이터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우리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살까 말까 망설이며 카트에 넣었다 뺐다 한 물품은 모두 기록되고 있다.
그 패턴과 유사한 고객의 최종 결정과 비교하면 구매자가 어떤 가격대의 어떤 물건을 좋아하는지 예측할 수 있어 맞춤형 쇼핑몰이 가능해진다. 이전에 살까 말까 망설인 물건이 인터넷 팝업창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이전의 소비 패턴에 따라서 사용자마다 다른 가격을 계산해서 유혹하는 쇼핑몰도 있다. 비행기가 일상의 이동수단인 미국에서 도시괴담에 따르면 항공권 구매사이트에서 표를 구하느라 허둥대며 바쁘게 클릭을 할수록 가격은 조금씩 더 올라간다고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인터넷 쇼핑 전에는 이전 행적이 기록된 로그나 쿠키 파일을 지울 것을 권한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친구와 인터넷 “이웃”을 맺는 행동 자체는 모두 기록되고 가공된 후 다시 판매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정보를 가공하여 불량 고객을 따로 판별해주는 업체도 있다. 한편 인터넷에 이미 공개된 개인정보를 찾아 숨겨주는 ‘온라인 개인사물함’ 기능을 제공하는 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인터넷 세상이다.
정보 노출과 이를 이용하는 기업의 번성은 대중조작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2012년 페이스북은 뉴스 우선순위를 조작하는 심리실험을 했다. 비관적인, 또는 즐거운 소식만 골라서 보내줄 때 그 대상자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추적한 것이다. 이 비윤리적 실험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뉴스 공급 조작만으로도 심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실험으로 확인됐다.
한 때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열풍이 불어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 등의 지지를 보냈었다. (출처 : 경향DB)
지난해 경찰 총격으로 사망한 흑인 소년 퍼거슨 사건으로 현실에서는 난리가 났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한가하게 아이스버킷 뉴스를 더 중요하게 다뤄 비난을 받았다. 페이스북으로만 세상을 관찰한 사람에게 죽은 퍼거슨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거 때마다 검색어 조작 시비가 있어왔듯이 인터넷의 정치사회적 중립성은 물리적 망중립성보다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
인터넷을 의도가 없는 하나의 중립적 도구라는 믿는 것은 미신이다. 이미 모든 것이 알게 모르게 인터넷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를 통제하는 알고리즘이 미래의 세상을 지배하고 조정할 것이다.
쇼핑부터 뉴스까지, 인터넷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각 다른 매트릭스 세상을 보여줄 것이다. 어떤 시대에도 공정한 제삼자는 없었다. 이건 인터넷 세상에도 마찬가지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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