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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2세대 GMO의 등장

최근 미국에서 새로운 종류의 유전자변형식품(GMO)이 잇달아 상업용 재배 승인을 받고 있다. 잘랐을 때 색깔이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 사과, 튀겼을 때 발암물질이 적게 나오는 감자가 그것이다. 농업 생산자의 이익을 주로 강조한 1세대 GMO에서 최종 소비자의 직접적인 기호를 겨냥한 2세대 GMO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1세대 GMO의 대표적인 농작물은 콩과 옥수수이다. 1996년 상업용으로 출시된 이후 지난 20여년간 세계인이 섭취하고 있는 종류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이들의 존재를 잘 실감하기 어렵다. 유전자변형 콩과 옥수수는 대부분 가공식품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콩의 기름 성분과 옥수수의 전분 및 전분당은 우리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가공식품에 포함된다. 콩과 옥수수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은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과와 감자는 다르다. 가공된다 해도 얇게 잘라지는 정도이다. 그동안 가공식품 속에 섞여 있던 GMO가 이제 자신의 모습을 실감나게 드러내고 있다.

유전자변형 사과와 감자는 소비자가 선호할 만한 기능을 내세우고 있다. 사실 1세대 GMO는 소비자에게 눈에 띄는 장점이 없었다. 주요 목표가 생산량 증대였기 때문이다. GMO 개발자들은 제초제를 뿌렸을 때 잘 견디고, 병해충이 침투할 때 잘 버티도록 농작물의 유전자를 변형함으로써 결국 농업 생산자에게 큰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소비자로서는 생산량의 증가가 얼마나 이뤄졌는지는 물론 GMO를 왜 섭취해야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에 GMO 개발자들이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킬 목적으로 새롭게 선보인 품목이 사과와 감자이다.

사과와 감자에는 콩과 옥수수에 비해 새로운 기술이 적용됐다. 최근까지 GMO는 주로 미생물이 갖고 있는 특정 기능의 ‘외래’ 유전자가 삽입돼 만들어졌다. 제초제저항성이나 살충성 기능을 수행하는 단백질을 미생물에서 찾고, 그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DNA를 콩과 옥수수에 넣었다. 따라서 유전자변형 콩과 옥수수에 외래 단백질이 잔존할 수 있어 안전성 논란이 지속돼 왔다. 이에 비해 사과와 감자의 경우 ‘외래’라는 용어가 다른 의미로 쓰인다. 삽입되는 유전자는 분명 다른 생명체에서 가져온다. 다만 DNA가 아니라 RNA이다.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DNA 대신, DNA의 활동을 억제하는 RNA를 삽입한 것이다. 즉 특정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능을 없애는 방향으로 GMO를 개발했다. 가령 사과를 잘랐을 때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는 사과에 해당 작용을 담당하는 단백질(효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발사 측은 이 효소의 생성을 주관하는 DNA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도록 RNA를 삽입했다. 이른바 ‘유전자침묵 기술’을 적용한 것이다. 사과 안에는 기존의 GMO와 달리 외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개발사 측의 주장이다. 더욱이 삽입한 RNA 역시 미생물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사과에서 추출한 것이므로 안전하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의 한 지하철역에서 15일 행인들이 시민단체 생태주의자 동맹이 유전자조작(GMO) 식품에 반대하는 내용의 광고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_ AP연합


물론 유전자침묵 기술이 안전성을 완전히 보장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예를 들어 삽입된 RNA가 사과에서 유용한 단백질들을 만드는 DNA도 침묵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논란 외에도 건강을 상징하는 대표 과일인 사과를 GMO로 개발하는 데 대한 반감이 미국 사과업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2월 미국 농무부(USDA)는 상업적 재배를 허가했고, 현재는 식품의약국(FDA)의 최종 검토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개발사 측은 유전자변형 사과가 시장에서 큰 이익을 거둘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하고 있다. 이 사과의 우수성을 소비자에게 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상품명을 표시하겠다고 한다. 현재 미국에 심겨질 2만여그루의 사과 묘목을 보유하고 있으며, 조만간 유전자변형 복숭아와 체리에 대한 승인도 신청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미국의 한 합성생물학 회사로부터 4100만달러 규모의 주식과 현금을 지원받기로 계약을 맺었다. 상당히 공격적인 기세이다.

식량문제 해결을 표방한 GMO가 이제 소비자의 기호를 내세우며 점차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 유전자변형 사과와 감자의 등장이 관련 생산업계와 유통업계에는 한편으로 반가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비자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의 범위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