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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GMO용 농약이 더 무섭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안전성을 두고 과학계에서 다시 논란이 촉발되고 있다. 이번에는 GMO 자체가 아니라 GMO를 재배할 때 함께 살포하는 농약의 위해성에 대한 논란이다. 지난달 21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한 의학 학술지를 통해 글리포세이트가 높은 수준의 발암성 물질로 분류된다고 밝혔다. 글리포세이트는 세계 경작지에서 널리 사용돼온 제초제이다. 특히 GMO를 재배할 때 주로 살포되고 있으며, 바로 GMO 때문에 그 사용량이 대폭 증가하고 있는 제초제이기도 하다. 과연 GMO가 무엇을 위해 개발되고 있는지에 대한 오랜 의구심이 새삼 생기게 한다.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진 GMO가 재배돼왔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GMO는 두 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제초제에 견디는 기능과 살충 기능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에서도 제초제저항성 GMO의 양이 단연 압도적이다. 예를 들어 2014년 전 세계에서 경작되는 GMO 가운데 제초제저항성 GMO는 57%, 제초제저항성과 살충성을 동시에 갖춘 GMO는 28%에 달한다.

대표적인 GMO인 콩과 옥수수가 제초제에 견딘다는 말은 제초제 성분을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를 미생물에서 얻어 콩과 옥수수에 삽입했음을 의미한다. 한동안 개발사 측은 과거에 비해 동일하거나 적은 양의 제초제를 살포해도 콩과 옥수수는 살아남기 때문에 결국 수확량이 증가해 농업 생산자에게 큰 이익이 주어질 것이라 주장했다. 다만 제초제는 GMO 개발사의 제품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몬산토의 글리포세이트는 상품명이 라운드업(Roundup)인데, 자사의 GMO는 이 제초제에 견디도록 준비된 제품이라는 의미에서 라운드업-레디(Roundup ready)라고 부른다. 다른 개발사의 제초제에는 ‘약발’이 듣지 않는다. 농업 생산자로서는 GMO와 제초제를 한 회사로부터 함께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GMO 재배가 늘어나면서 제초제 사용량이 오히려 증가했다는 보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2009년 미국 유기농센터의 찰스 벤브룩 박사는 미국에서 GMO의 상업적 재배가 시작된 1996년부터 13년간 제초제 사용량이 3억8260만파운드(1파운드는 약 0.45㎏) 정도 증가했다고 밝혔다. 증가 원인은 기존의 제초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잡초 때문이었다. 미국 GMO 재배 농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제초제가 바로 글리포세이트이다. 2013년 5월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는 당시까지 세계 18개국에서 총 24종의 글리포세이트 내성 잡초가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이런 상황이기에 최근 국제암연구소의 발표는 지난 20여년간 GMO를 섭취해온 세계인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글리포세이트의 위험 정도는 상대적으로 높았다. 연구소는 특정 물질의 암 발생 정도를 다섯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글리포세이트는 두 번째 수준인 2A등급으로 분류됐다. 암을 확실히 일으키는 1등급 물질, 발암 가능성이 있는 2B등급 물질의 중간 지점이다. 연구소는 글리포세이트의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실험동물의 경우 충분히 확보됐지만, 인간에 대한 자료는 아직 제한적이어서 2A등급을 매겼다고 밝혔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통복장을 한 채 유전자변형식품(GMO)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즉각 개발사 측의 반박이 제기됐다. 연구 방법상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글리포세이트의 위해성에 대한 연구는 공공의 영역과 산업계 등의 주도로 진행돼왔는데, 이번 발표는 산업계의 연구 결과를 의도적으로 빠트리고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과학계 일각에서는 신중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권위를 가진 연구소가 이 같은 민감한 사안을 그리 허술한 과정을 거쳐 발표할 리가 없다.

당장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28개 GMO 재배국의 농업 생산자와 생태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을지 우려되고 있다. 유전자가 변형된 콩과 옥수수는 멀쩡하다지만, 발암성 제초제의 사용량이 꾸준히 증가해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제암연구소의 발표로 글리포세이트 사용에 대한 정부 차원의 규제가 곧바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미국 환경청(EPA)은 이번 발표를 참고해 글리포세이트의 안전성을 다시 공식적으로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이 착잡하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