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플로리다주 남부지역에서는 유전자변형생명체(GMO)를 생태계에 방출하는 문제를 두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농작물 얘기가 아니다. 열대지역에서 뎅기열이나 치쿤구니아 열병을 일으키는 모기가 논란의 대상이다. 영국의 생명공학회사 옥시테크는 열병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유전자변형기술을 활용했다. 암컷과 짝짓기를 했을 때 후손이 죽도록 수컷의 유전자를 변형한 것이다. 이미 브라질, 말레이시아, 파나마에서는 이 모기의 생태계 방출 실험이 진행됐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동일한 실험에 대한 승인을 검토하고 있어 미국에서도 논란이 시작됐다. 승인이 이뤄진다면 300만마리 이상의 유전자변형 수컷 모기가 방출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을 무는 모기는 암컷이기 때문에 수컷의 변형된 유전자가 우리 몸에 들어올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유전자변형 모기가 과연 질병을 완전히 퇴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단기간에 모기의 숫자를 줄일 수 있겠지만, 복잡한 먹이사슬로 얽혀 있는 생태계가 장차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로 최근 학계에 보고된 연구 결과는 유전자변형 모기의 등장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가 심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난해 5월 파나마에서 옥시테크가 개발한 유전자변형 이집트숲모기가 대량 방출됐다. 옥시테크는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연산’ 이집트숲모기의 수가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집트숲모기처럼 뎅기열이나 치쿤구니아 열병을 일으키는 아시아타이거모기의 존재였다.
파나마 연구진에 따르면, 이집트숲모기의 수가 줄어드는 그 공간에서 좀 더 공격성이 강한 아시아타이거모기가 번성할 수 있다. 또한 유전자변형 이집트숲모기의 방출이 중단될 경우 ‘자연산’ 개체수가 다시 창궐할 가능성이 있다. 유전자변형 모기의 가격을 알 수는 없지만, 질병을 없애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생태계의 악순환 속에서 대책 없이 늘어날 것이다.
사실 GMO가 개발자의 기대와 다르게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은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바로 인간과 가축이 섭취하고 있는 농작물 얘기다. 지난해 미국의 몇몇 연구진들은 유전자변형 옥수수가 자라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강력해진 해충이 등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곤충이 옥수수를 갉아먹어 수확량이 줄어드는 일을 막기 위해 옥수수에 아예 살충성 미생물 유전자를 삽입한 사례였다. 문제는 이 옥수수에 내성이 생겨 먹고도 죽지 않는 ‘슈퍼 해충’이 생긴다는 점이다.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유전자변형 농작물의 등장으로 웬만한 제초제에도 끄떡없는 ‘슈퍼 잡초’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10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통복장을 한 채 유전자변형식품(GMO)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_ AP연합
한편에서는 GMO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 가능성이 과장돼 소개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 유럽의 학술지에 보고된 논문은 다른 결론을 내렸다. “GMO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합의는 없다”라는 파격적인 제목으로 1월24일자 ‘환경과학 유럽(ESE)’이라는 학술지에 게재된 리뷰논문이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인도의 전문가 15명이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GMO가 인간과 생태계에 안전하다는 결론이 최근까지 세계적으로 전파되고 있지만, 실제로 과학계의 관련 논문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과학적’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요지이다. 특히 살충성 유전자를 가진 GMO가 살충의 대상이 아닌 동물이 섭취했을 때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논문을 소개하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 과학계의 결론이 상이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연구비 출처와 전공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연구비를 GMO 업계로부터 지원받거나 분자생물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은 대체로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나타낸다. 반면 공공자금을 지원받거나 생태학을 전공한 경우에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에서 불확실성이 강조되고 있다. 과학은 일반인이 떠올리는 이미지와 달리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연구비의 출처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내려질 수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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