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극장가 대표 흥행작 중 하나가 과학영화 <인터스텔라>다. 그런데 신기한 미래기술이 난무하는 다른 과학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인터스텔라>의 미래세계는 다소 실망스럽고 낯설다. 전 지구적 환경재앙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일조차 너무 힘들어진 미래에 주민 대다수는 농부다. 자연스럽게 당장의 생존에 별 도움을 못 주는 우주탐사를 위한 과학기술 연구에 시민 대다수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주인공인 쿠퍼는 이런 상황에서 먹거리를 구하는 일 말고도 추구할 가치가 있는 일이 세상에는 많다는 점을 역설한다.
영화의 결말은 결국 쿠퍼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 그의 딸이 과학 연구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하지만 인구의 99%가 농부인 사회에서 이루어질 과학 연구가 고도 산업사회의 과학 연구와 상당히 다르리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대한민국 성인의 대다수는 고등학교까지 상당 시간의 과학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그 시간이 즐거웠다고 회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필자처럼 어린 시절부터 쭉 과학을 좋아했던 사람도 대학 이전까지 받았던 과학 수업 중 특별히 기억나는 시간은 많지 않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할까?
교육과 관련된 문제가 늘 그렇듯 원인은 중층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원인의 일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과학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성인이 된 후에야 과학 교양서를 읽고 과학의 매력에 빠져드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도 ‘재미있을’ 수 있고 자신의 삶에 중요한 함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이런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싫어하는 이유가 과학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미없어서라기보다는 과학이 교육되는 방식과 그 구체적인 내용이 학습자의 흥미와 삶에 공명하지 못하기 때문임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성분 중 비교적 무거운 원소인 탄소와 산소는 어디에서 왔을까? 물론 일차적으로는 우리가 섭취한 음식에서 온 것이고, 그 음식은 결국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로부터 얻어진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지구의 물질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에 대한 답은 20세기 핵물리학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려졌다. 헬륨처럼 가벼운 원소는 우리 태양처럼 비교적 질량이 작은 별의 중심에서도 핵융합 반응을 통해 합성될 수 있지만, 탄소처럼 무거운 원소는 태양보다 훨씬 질량이 커서 엄청난 온도와 압력 조건이 마련될 수 있는 별의 내부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 그 별이 성장해서 초신성 폭발이라는 극적 사건을 통해 자신의 내부 물질을 우주에 흩뿌려 놓고 그 물질이 우주공간을 떠돌다 중력의 힘으로 행성을 만든 것이 지구가 된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조차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몇 년이나 걸리는 먼 거리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얼마나 장구한 세월을 여행했을지를 생각하다 보면 정신이 아찔할 정도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초신성의 후예’이고 우주적 사건의 ‘극적인 산물’이다.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에 대한 이런 과학적 사실에 직면하면 겸손함과 경외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 중 한 장면 (출처 : 경향DB)
인간 조건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런 내용과 분석이 중등 과학교과서에 등장하는 일은 거의 없다. 설사 등장하더라도 이론적 기초와 사실적 내용이 차근차근 채워진 후 교과서의 한 귀퉁이에 짤막하게 소개될 뿐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중등 과학교육이 전체 인구의 1%도 안될 미래의 과학자를 키워내기 위한 내용과 형식으로 주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중등 과학교과서와 대학 과학교과서는 그 구조와 형식이 거의 동일하다. 차이는 얼마나 ‘심화’된 내용이 담겼는지에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과학자가 아닌 삶을 살아갈 99%의 시민들에게 과학은 자신의 삶과 무관한 재미없는 과목으로 기억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는 과학기술이 점점 더 중요해질 미래사회에서 과학기술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의 주체인 책임있는 시민을 길러내기에는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인터스텔라>처럼 잘 만들어진 과학영화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과학시간에도 학생들이 즐겁게 현대과학의 가치와 세계상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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