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초등학교 시절 일반 가정에는 잡다한 공구가 준비되어 있어 필요한 도구를 직접 만들곤 했다. 아이들도 놀이 기구, 예를 들면 가오리 연이나 자치기 막대, 썰매, 새총 등은 각자 만들어야만 놀이에 낄 수 있었다. 요즘은 뭐든 인터넷이나 마트에서 팔기 때문에 집에서 뭔가를 만들거나 집안 물건을 뚝딱이며 고칠 일은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집안 물건이 고장 나면 수리 기사가 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야 한다.
그 안을 뜯어보고 싶은 호기심은 굴뚝같지만, 그런 짓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물건 여기저기에 시퍼렇게 쓰여 있기 때문에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기사가 와도 직접 고치는 시범을 보여주는 경우도 별로 없다. 어떤 부품을 얼마에 갈아야 하는지를 알려줄 뿐이다. 운이 없는 날에는 고치느니 새로 사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듣게 된다. 현대화될수록 우리가 뭔가를 직접 창조해볼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다만 현대인들은 오로지 구매를 통하여 그 창조 욕구를 조금씩 소진시킬 뿐이다.
코딩은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특히 아이들에게 창조의 기쁨을 줄 수 있는 중요한 공간이다. 코딩을 모르는 사람은 디지털 시대의 문맹자라고 평하는 학자도 있다. 대부분의 기계가 디지털화된 요즘 코딩은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요구된다. 수천 줄의 프로그램을 짜는 수준의 코딩도 있지만 몇 개의 버튼을 눌러서 원하는 동작을 기계에 전달하는 작업도 사실은 낮은 수준의 코딩이다. 최신형 세탁기의 조작 방법은 거의 코딩 수준에 맞먹을 정도로 정교하다. 스마트폰은 더욱 그렇다. 코딩 능력 부족으로 최첨단 폰의 기능을 10분의 1도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기차표나 여권 수속을 할 때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잘 준비된 자동화 기계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는 창구 쪽 줄을 선택한다. 이유는 많겠지만 그중 하나는 디지털 기계를 코딩해야 한다는 두려움이다. 앞으로 비용경쟁이 심해지면 자동화 기기는 더 번성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화된 기기를 코딩할 수 없는 사람들은 길고 긴 줄에서 기다리는 참을성을 미리 배양해야 한다. 미국 주요 대학에서 프로그래밍 언어를 제2외국어로 취급하는 것은 코딩의 미래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코딩을 가르치려는 운동은 디지털 시대의 문명퇴치 운동과도 같다.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코드 클럽’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미취학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고 있다. 영국은 초등 아이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능력인 읽기, 쓰기, 산술 외 계산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를 추가하였으며, 이젠 코딩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이스라엘, 중국은 물론 베트남에서도 어린이 코딩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 일에 가장 적극적인 에스토니아는 2012년부터 코딩을 초등 필수과목으로 가르쳐왔다. 여기엔 어린이용 언어인 스크래치 등이 사용되고, 고학년은 파이선(python) 언어를 배운다. 교육용 언어는 블록을 끼워 맞추는 식으로 조작할 수 있어 아이들에게는 장난감 정도로 쉽고 재미있다. 아이들은 곧바로 이 창조적 놀이에 홀딱 빠진다. 어린이 코딩 교육은 프로그래머 예비군 양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코딩 놀이의 목표는 디지털 시대의 핵심인 추상화 능력과 계산적 사고를 길러주는 데 있다.
소프트웨어 세상이 되면 코딩은 생존 수단이다. 그 수준은 버튼 조작에서부터 심오한 고급 프로그래밍까지 다양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코딩에 능숙한 사람이 더 편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코딩은 요리와 같다. 요리를 전혀 못하면 만들어진 냉동식품만 먹는 수밖에 없지만, 솜씨가 좋으면 같은 재료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맛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맛도 맛이지만 뭔가를 창조하는 즐거움은 요리의 가장 큰 미덕이다. 우리도 한때 디지털 교과서, 스마트 교실로 떠들썩했지만 정작 아이들에게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적 창조의 즐거움을 주는 일에는 실패했다. 국사가 국가주의 교육의 통로가 될 바에야 그 시간에 코딩을 가르치는 것이 낫다. 코딩이 아니면 차라리 요리를 가르치는 것이 모두에게 더 유익할 것이다. 눈앞의 생산력에만 올인하는 창조경제보다 더 앞서야 할 것은 창조 그 자체의 순수한 즐거움을 대중이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일이다. 그 일에 코딩이나 요리만 한 것이 어디에 또 있을까 싶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 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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