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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복제동물 전성시대

얼마 전 과학자들이 멸종에 이른 야생 소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인도에 단 한 마리만 남아 있던 종을 국립낙농연구소가 복제함으로써 멸종위기를 넘길 수 있는 희망을 준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별다른 화제가 되지 못했다. 멸종위기란 말도 그렇지만 복제동물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 무관심해진 대상이 된 것 같다. 하지만 복제동물이 우리 생활에 이미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새삼스럽지만 복제동물이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996년 복제양 돌리가 태어났을 때 세상은 무척 떠들썩했다. 인간이 포함된 포유동물이 복제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세간의 관심은 우선 복제기술 자체의 경이로움에 맞춰졌다.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는 과정이 불필요했다, 귀나 머리카락에서 채취한 체세포, 그리고 핵을 제거한 난자만으로 생명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곧이어 복제인간의 출현 가능성을 두고 세계적인 논란이 일어났다. 세계 각국은 서둘러 인간 복제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이후 20년가량 세월이 지나면서 일반인들은 혹시라도 불법으로 복제인간이 태어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 어린 우려를 갖는 정도로 무덤덤해지는 듯하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복제된 인간이나 동물이 종종 등장하지만 그야말로 영화 속 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돌리가 태어난 후 복제동물의 종류는 꾸준히 늘어났다. 현재 세계적으로 20종 넘는 동물이 복제됐다. 한편으로 과학자들은 생명 출생의 원리를 탐색하고 인간의 난치병을 치료하는 유용한 도구로 복제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당장 시장 진입에 성공할 수 있도록 여러 응용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 결과 소비자가 매력을 느끼고 기꺼이 구매할 수 있는 첨단 생명공학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우리나라 얘기다.

이미 실현된 상품은 복제 애완동물이다. 1억원 정도를 내면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던 동물이 죽어도 복제기술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당연히 복제된 애완견이 원래의 애완견과 동일할 수 없다. 다만 원리적으로 99% 이상의 유전자가 서로 동일하기 때문에 외모가 거의 같은 애완견을 얻을 수 있다. 성격도 같기를 기대할 수 있겠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고 느끼며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려는 고객은 적지 않은 것 같다.

일반인의 욕구와는 다소 동떨어진 특별 상품으로 마약을 탐지하거나 인명을 구조하는 특수견의 복제 역시 이미 실현됐고 그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검문대를 통과한 마약 소지자를 찾아낸 개가 사실 복제견이라는 소식이 소개될 날이 머지않았다.

충북대 동물바이오신약장기개발사업단 연구원이 특정 단백질 유전자가 나타나는 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기술로 생산한 형질전환 복제돼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조만간 소비자에게 가장 실감나게 다가올 상품은 복제식품이다. 국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지자체의 지원 아래 특산 한우의 복제 성공 소식이 계속 전해졌다. 과거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을 만큼 고품질의 한우를 복제하거나, 그 정자나 난자를 이용해 인공수정을 시킴으로써 대량의 소비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최근에는 정부의 지원 아래 중국과 공동으로 복제기술의 대규모 실용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사업안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소고기 소비시장이 거대해질 것에 대비한 식용 복제소의 개발이었다.

소비자로서는 당연히 복제 소고기를 먹어도 괜찮은지가 궁금하다. 미국에서는 2008년 식품의약국(FDA)이 복제소의 고기와 우유가 안전하다고 밝혔다. 무려 10여년간 과학계, 축산업계,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다. 미국의 판단에 대한 입장과 무관하게,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와의 소통을 거치는 과정이 요구된다. 하지만 최근의 추세를 보면 정부가 이미 안전성에 대한 결론을 내린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복제기술은 돌리의 등장 때부터 현재까지 윤리적인 이유뿐 아니라 기술적인 불안정성으로 인해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단적으로 한 마리의 복제동물이 ‘정상’으로 태어나는 과정에서 기형의 ‘비정상’ 개체가 상당수 폐기된다. 복제동물의 생산 과정과 이로부터 파생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종합적으로 공개하고 고민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