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단위로 볼 때 가장 복잡한 기계는 현대식 비행기일 것이다. 하드웨어로나 소프트웨어 구조 면에서 이같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융합된 기기에 비교할 대상은 없다. 사람과 비행기의 공생 과정을 보면 인간과 기계의 기술문화사를 압축해서 확인할 수 있다.
1924년 관리자가 탑승하지 않는 전자동 승강기가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경악했다고 한다. 관리원이 사라진 커다란 통 속에 들어가면 나 홀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승강기의 추락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성추행이나 폭행 따위를 더 조심해야 한다. 기계화에 일찍 눈을 뜬 서양인들에게 비행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이트 형제는 시작부터 무인 비행기에 관심이 있어 진자를 이용한 자동 운항장치를 고안했다. 이 장치는 이후 로렌스 스페리에 의해 자이로스코프로 발전되어 모든 비행체에 활용되었다. 정해진 운항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무인 폭격기도 1917년 스페리가 이미 제시했다.
2차 세계대전은 무인 비행체의 절실함을 일깨워준 극적인 계기가 되었다. 보병과 달리 쉽게 보충되지 못하는 조종사를 아끼는 길은 무인 비행기 개발뿐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원인 중 하나는 가마카제 특공대와 같은 무자비한 인력소모 전략이라는 지적이 있다. 귀축미영 적개심이 아무리 높아도 며칠 만에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연합군의 전략은 반대였다. 미국은 폐기 직전의 폭격기를 무인기로 이용하는 아프로디테 작전을 세웠다. B-17 폭격기에 폭탄을 가득 채워 목표물 근처로 접근한 뒤 조종사는 일단 낙하산으로 탈출시키고 다른 사람이 무선 카메라로 B-17을 원격조종해 목표물에 명중시킨다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위성항법장치(GPS)도 없는 당시 낮은 전파기술로 인해 대부분은 실패했다.
조종사가 없는 비행기를 개발하려는 목적은 안전 강화와 경비 절감에 있다. 항공사고의 원인 중 조종사의 실수가 기계고장, 날씨, 태업, 정비 불량 등에 비해 훨씬 많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복수의 기계적 판단을 종합한 결론이 항공기 안전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비행기 조종은 이미 사람에게서 기계로 상당히 넘어가 있는 상태다. 이륙·착륙 외 대부분은 자동항법장치가 담당하고 있다. 초기에는 기장, 부기장, 항법사, 기관사, 통신사 5명이 조종석에 있었지만 하나씩 사라져 이제는 조종사와 부조종사만 남았다. 항공 전문가의 예상에 따르면 이도 머지않아 기장 한 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항공사는 조종석 승무원을 줄임으로써 급여뿐만 아니라 엄청난 액수의 교육 관련 경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체인력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조종사들의 파업 역시 무인기 개발에 구미가 당기게 한다.
남은 문제는 과연 마지막 남은 한 명의 기장까지 비행기에서 밀려날 것인지, 그것이 일어난다면 언제쯤일까 하는 것이다. 조종석에 아무도 없는 여객기를 사람들이 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많지만 승강기의 예와 같이 결국은 익숙함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비용도 문제고. 여러 시험비행에 성공한 화물기는 빠르게 무인화될 것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26일 공개한 미니트램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석이 깔린 노선을 따라 운전자 없이 자동 운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 경향DB)
현대에서 안락한 삶이란 인간과 기계의 적절한 공생에 달려 있다. 만일 라식수술을 레이저 장치가 아니라 의사가 직접 메스를 들고 집도한다면 이에 응할 환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생명유지 장치나 수술기구의 안정성을 의심하면서 수술실에 들어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만큼 인간의 영역은 기계로부터 사실상 잠식당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소수 인간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는 자동화의 역설이다. 허드슨강에 기적적으로 불시착한 에어버스 320 사례는 정교한 비행 소프트웨어와 슐렌버그 기장의 용기, 이 둘의 합작품이며 자동화 역설의 좋은 예이다. 자동화가 심화될수록 소수의 전문가는 더 귀한 대우를 받게 되고 이는 결국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다. 자동화에서 사람은 더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그런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비행기 역시, 앞으로는 슈퍼 기장 한 사람이 조종뿐만 아니라 기내 서비스까지 담당할지 모를 일이다. 이때가 되면 아무리 일등석 승객이라도 땅콩은 제 손으로 가져다 까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 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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