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의 책 <린인>에는 그녀가 정부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시기에 겪었던 인상적인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던 로버트 루빈은 아직 업무도 파악하지 못한, 풋내기 공무원 샌드버그에게 당시 진행되던 국세청의 구조조정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경험 많은 고위직 공무원을 다 제쳐두고, 회의실 뒤쪽에 앉아 있던 샌드버그를 지목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샌드버그는 아는 것도 거의 없는 데다 일단 너무 놀라 제대로 답을 못했다. 의아해하는 샌드버그에게 루빈은 “당신이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신참이어서 오히려 이 일에 몰두해 온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문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고 말했다.
루빈이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데는 계기가 있었다. 재무부 장관이 되기 전 골드만삭스의 이사회 의장이었던 그는 회사가 금에 지나치게 많이 투자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직원에게 물었다. 직원은 당황하며 “의장님 때문인데요”라고 답했다. 알고보니 루빈이 전에 증권 부서를 돌다가 무심결에 “금이 괜찮아 보이네”라고 말했고, 이를 직원들은 “루빈은 금에 투자하기를 원한다!”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이후 루빈은 전문가들이 좁은 시야에 갇혀 있을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감히 지적하지 못하는 회사가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지에 대해 절실하게 깨닫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중으로 교훈적이다. 특정 주제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간과하기 쉽다는(혹은 알게 되더라도 ‘분위기’를 깨기 싫어 대놓고 토론하지 않는다는) 점, 이런 상황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루빈이 샌드버그에게 기대한 것도 이런 새로운 시각이었다.
아마도 샌드버그가 기막힌 아이디어를 낼 가능성은 높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외부적 시각을 애써 구하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볼 수 있음을 알기에 루빈은 신참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는 현명함을 실천한 것이다.
루빈과 샌드버그의 일화는 신기술에 대해 흔히 제기되는 이분법이 왜 문제인지 잘 보여준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 사전에 주의하자는 견해에 대해 기술낙관론자들은 산업혁명 초기의 러다이트주의를 끌어들여 반론을 제기하곤 한다. 러다이트주의자들이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 즉 일자리 감소를 두려워해 기계를 파괴했지만, 결국은 기술 발전으로 더 많은 일자리가 등장해 그러한 우려가 얼마나 불필요했는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러다이트주의가 아니라 기술낙관론을 택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항상 더 풍요롭고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사람들의 우려에도 성공한 기술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낙관적으로 전망했던 기술적 미래 중 실현되지 않은 것도 무수히 많다. 1950년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시작되면서 많은 기술낙관론자들은 곧바로 가정용 원자로가 도입되어 에너지 문제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자력 옹호론자조차 가정용 원자로가 현실적인 미래 기술이라 생각지 않는다. 이런 예는 기술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게다가 기술 전망에 대한 우리의 기억에는 심각한 비대칭성이 있다. 낙관적 기술예측이 실패한 사례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반면, 지금은 한심해 보이는 이유로 기술에 반대했던 러다이트주의자들은 오래오래 기억된다. 신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저항을 조롱하며 기술 개발의 당위를 설득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선보인 수직이동하는 무인자동 미니트램 (출처 : 경향DB)
기술에 대한 태도를 러다이트주의와 기술낙관론으로 양분하는 것은 잘못이다. 기술 개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더라도 기술 발전이 가져올 복합적 영향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며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기술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루빈이 깨달았듯이 그런 작업에는 기술공학자만이 아니라 ‘외부적’ 시각, 특히 그 기술을 사용할 시민들의 직관과 소망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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