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오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느낌을 받는다. 거의 모든 신분 확인에 휴대폰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이 없으면 좀비와 같은 처지가 된다. 문제는 분실했을 때다. 그래서 잃어버린 휴대폰의 내부 데이터를 원격으로 완전히 지울 수 있는 기능이 제공되고 있다. 기계는 잃어버려도 그 안의 정보는 이렇게라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퇴각하는 군인이 남은 무기를 모두 불태워 적군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 하는 전략과도 같다. 특히 대부분 업무를 폰으로 하는 요즘 그런 정보 덩어리가 경쟁 업체에 들어간다면 큰일이다. 그래서 요즘 산업스파이는 금고 속 설계도가 아니라 책임자급의 폰을 노린다.
그런데 데이터가 완전히 지워진 휴대폰도 초기화를 거치면 새 기기로 되팔 수 있다. ‘잃어버린 휴대폰의 위치를 추적해보니 남중국해를 늠름하게 통과하고 있더라’는 도시괴담이 피부로 느껴지는 시절이다. 이런 되팔이 목적의 휴대폰 절도를 막기 위해 요즘 폰에는 자살 스위치 기능이 제공되고 있다. 잃어버린 휴대폰에 원주인이 자살신호를 보내면 휴대폰이 복구할 수 없는 수준의 완전 먹통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켜자마자 자살해버리는 휴대폰을 위험을 무릅쓰고 훔칠 도둑은 없을 것이다. 자살 스위치 사용 강제규정 덕분에 휴대폰 절도가 20%나 준 지역도 있다.
킬 스위치 작동개념도 (출처 : 경향DB)
군사무기에서 도난은 훨씬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게릴라 세력을 도와 소련의 막강 정규군사와 대적한 람보는 신냉전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탈레반 게릴라에게 공급한 미국 무기가 나중에 미국을 위협하는 탈레반 무기가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어 후세인 축출 이후 이라크 정규군에 제공된 미국 무기가 이슬람 근본주의자 세력에게 고스란히 넘어가 미국은 같은 고생을 반복하고 있다. 최신 에이브러햄 탱크를 비롯해 험비 장갑차, 최신의 방공 미사일까지 각종 신무기가 이슬람국가 세력에게 넘어갔다. 자발적으로 무기를 넘겨준 수니파 이라크 군인의 수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동일한 수준의 최신 무기를 갖추고, 강력한 적개심과 종교적 열정으로 똘똘 뭉친 세력을 이익이 제각각 다른 서방세력이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첨단 무기에 자살 스위치를 장착하는 것도 고려되고 있다. 요즘 대부분의 무기에는 거의 노트북 수준의 컴퓨터 장치가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원격으로 그 사용을 통제할 수 있다. 폰과 같은 원리의 자살 스위치를 활용하면 훔쳐간 무기를 쓸모없는 화약 보관함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또는 GPS 신호를 감지해 특정 지역으로는 미사일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일정 높이 이하에서만 작동하도록 한다든지 얼마든 무기의 제어가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미래가 미심쩍은 나라에는 코드 유효기간이 1년으로 제한된 무기만 판매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무기시장의 핵심 상품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수준이 될 것이다.
값비싼 정품 소프트웨어나 10일간의 시험판이나 본질적으로는 똑같다. 단지 몇 줄의 코드로 저장기능과 같은 특별한 기능만 막아두었을 뿐이다. 이렇게 소프트웨어적으로 제어되는 무기는 이제 대여의 개념으로 판매될 것이다. 무기 수출국에서는 보관에 따른 비용도 줄일 수 있고, 필요한 경우 가격을 올려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후 서비스 중단으로 XP의 씨를 말려버리듯 원래의 판매 목적에서 벗어난 무기는 총 한방 쏘지 않고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사물인터넷 개념의 무기체계가 해킹으로 뚫릴 때이다. 사람이 만든 모든 정보기술(IT)에서 해킹은 자연발생적이다. 패치를 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패치란 오래된 A 에러를 새로운 B 에러로 교체하는 작업이라고 한다. 사물인터넷 시대가 만들어줄 장밋빛 환상에만 몰입되어서는 곤란하다. 먼 여행지에서 집 내부를 볼 수 있는 기능이 해킹으로 악용되면 도둑에게 집에 사람이 없음을 당당히 알려주는 꼴이 된다. 작은 토스터기의 고장이 보일러와 목욕 욕조를 자극해 집 안 전체를 온통 물바다로 만들 가능성도 있다. 편한 만큼 불편해진다는 장자의 지혜가 다시금 곱씹어지는 시절이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 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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