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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친구들이 항상 부러운 이유

내 친구들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를 친구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전체 사용자의 폰에 저장된 전화번호 수를 모두 더해서 사용자로 나누면 평균적인 친구 수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친구의 친구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를 더해서 친구 수로 나누면 평균적인 친구의 친구 수를 구할 수 있다.

평균적으로 볼 때 어떤 사람의 친구 수와 그 친구들의 친구 수, 이 둘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어차피 친구도 전체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이 두 값은 거의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놀랍게도 이 둘에는 큰 차이가 있다. 2011년 720여만명의 페이스북 전체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되었다. 페이스북 사용자의 친구 평균은 200명 정도인 데 비해 친구의 친구 평균은 3배가 넘는 630명 정도로 확인되었다. 게다가 이런 현상을 보인 사용자는 전체 사용자의 93%라고 하니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내 친구는 나보다 항상 더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는 이 괴이한 현상이 바로 친구의 역설(friendship paradox)이다.

이 역설은 사회학자 스콧 펠드가 1991년에 발견한 것이다. 친구가 무작위하게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 현상의 정도는 1차 친구 수의 분산값과 연관되어 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더도 덜도 없이 딱 20명씩의 친구를 가진다면 이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 현상은 복잡계(complex system)의 대표 격인 온라인 세계가 가지는 부익부빈익빈 특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친구가 많은 것을 기회로 더 쉽게 친구를 만들어가는 반면, 외톨이는 더 급속하게 외톨이가 되기 쉽다. 즉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 엮이는 과정은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편향된(bias) 과정이기 때문에 친구의 역설이 나타나는 것이다.

SNS 페이스북의 전체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거의 대부분의 자신의 친구는 자신보다 더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음을 보였다. 이를 친구의 역설이라고 한다. (출처 : 경향DB)


전파성이 빠른 인터넷에서 이 현상은 더 확연하다. 뭔가 잘나고 자랑할 만한 거리가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노출되고 친구관계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압도적인 수의 친구를 만들게 되고 이를 자랑한다. 따라서 이런 마당발은 모든 사람에게 친구의 친구 수 값을 급격하게 올려준다. 최근에는 한국인 과학자가 학술논문에서도 친구의 역설이 일어남을 밝혀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연구에 따르면 거의 모든 논문의 유명도는 그 논문이 인용한 논문의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한편 친구의 역설은 공학적으로 활용된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집단에서 친구관계가 높은 사람을 선택하려면 몇 명을 임의로 선택한 뒤 그들의 친구 중에서 다시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친구보다는 친구의 친구가 확률적으로 더 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방접종 대상자 선택에 활용되고 있다.

친구의 역설은 모든 문화에 나타난다. 특히 부유함의 정도나 유명세 등도 친구의 역설과 같은 현상을 보인다. ‘엄친아’ 현상, 즉 엄마 친구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공부도 잘하고 좋은 대학에만 간다는 소문은 친구 역설의 변주곡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집단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의사들은 항상 친구 의사들의 벌이가 자기보다 더 낫다고 한다. 그 낫다는 친구 의사에게 물어봐도 역시 답은 같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확인되는 친구들을 보면 하나같이 해외여행도 자주 가고 명품도 쉽게 구입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여행에서 명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여러 사람에게 자랑삼아 떠벌리고 다니고 싶기 때문에 친구 만드는 일에 훨씬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이 친구들 씀씀이 평균치를 올리게 된다. 요즘은 이런 친구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여행 사진이나 명품 구입 사진을 조작해서 올리는 사람까지도 있다고 한다. 연구에 따르면 SNS에 몰입되면 될수록 부러운 친구 때문에 자신의 만족감은 갈수록 떨어진다고 한다. 심하면 이 때문에 우울증 치료까지 받아야 할 정도라고 한다.

친구의 역설이 보여주듯이 현대사회에서는 사람끼리 엮이면 엮일수록 상대적인 행복감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막말댓글 판사 사건이 보여주듯이 SNS에 대한 집착은 이제 병리현상으로 간주해야 할 수준이 되고 있다.

행복은 절제와 자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옛말의 의미를 친구의 역설은 다시 보여준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