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여성 호신술만큼 한심한 것도 찾아보기 힘들다. 치한이 손을 뻗어서 가슴을 만지려 하면, 한 걸음 물러남과 동시에 치한의 손목을 잡아 비튼 후, 기우뚱거리는 치한의 낭심을 강하게 차는 호신술이 있다. 여인이 손을 비틀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뒤, 낭심을 찰 동안 마네킹같이 서 있을 치한은 없을 것이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 특히 초등교육에서 첨단 IT 활용이 혁신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을 보면 여성 호신술이 떠오른다. 그런 분들은 한 학기 정도 주장한 방법으로 직접 가르쳐본 뒤 그런 주장을 하시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고급 IT기기를 쥐여주고 수업을 하면 그것은 더할 수 없이 좋은 장난감이 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신기기나 복잡한 프로그램의 경우, 기계를 손봐주고 프로그램 사용법을 지도하느라 정작 수업 내용은 산으로 올라간다. 수업에 복잡한 기기를 쓸수록 교사와 학생 간의 소통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최근 LA에서는 야심차게 추진한 태블릿 PC를 이용한 디지털교육을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계획은 2014년까지 모든 고등학생들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하고 그것으로 교과서를 대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학생들은 그것으로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접속하며 수업은 등한시했다. 어떤 지역에서는 지급된 태블릿 PC의 잦은 고장과 부주의한 파손으로 인해서 해당 사업을 중지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디지털교과서는 인터넷 연결이 기본이다. 등교하면 폰을 모두 수거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교육에 방해되는 사이트는 모두 차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쉽지 않다는 것은 곧 비용이 든다는 얘기다.
디지털 교과서 (경향DB)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교육정보화 사업으로 e교과서 사업이 있다. 400억원 이상이 투입된 이 사업은 완벽히 실패한 사업의 전형이다. 당국에서 각종 지원책과 은근한 압박까지 동원하여 e교과서 내려받기 운동까지 했지만 사용자는 10%를 넘지 못했다. 우리 집 쌍둥이가 초등학교 6년간 다니는 동안 필자는 e교과서의 그림자도 본 적이 없다. 이젠 e교과서에 이어 수백억원짜리 디지털교과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설치한 디지털교과서앱은 컴퓨터 전공인 필자도 사용하지 못한다.
디지털책이 교육매체로서 종이책보다 나은 근거는 없다. 실제 국내에서 행한 실험에서도 별 차이는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농어촌의 경우 디지털교과서가 더 우수하다고 나오는데, 첨단 기기에 늦게 노출된 학생들에게 신기한 기기가 더 강하게 기억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효과를 선다형 문제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런 식이라면 1970년대식으로 문제당 ‘빠따’ 한 대씩이 단기 성적에는 아이패드보다 훨씬 더 우수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단기 효과뿐만 아니라 지속성 여부도 같이 봐야 한다.
국내외 IT업체, 통신업체들에 디지털교과서 사업은 엄청난 시장이다. 교육당국은 무료지원을 아끼지 않는 업체들의 속셈을 생각해야 한다. 디지털교과서는 컴퓨터 위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다. 운영체제 버전이 올라갈 때마다 이전의 디지털교과서는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정부안대로 2015년까지 디지털교과서를 배포하려면 기기 값을 포함하여 15조원이 필요하다. 2년마다 모든 스마트 기기가 바뀐다고 볼 때 대략 매년 3조원이 사업의 영속성을 위해서 필요하다. 우리보다 일찍 디지털교과서를 시작한 싱가포르가 나자빠진 이유다.
시장에서 전자책은 대략 15%를 차지한다. 처음의 기세에 비해 점유속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지금의 전자책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비싸다. 종이책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지만 전자책은 그 기기와 묶여 있어 태블릿 PC 통째로 넘겨줘야 한다. 이건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다. 디지털카메라의 성공 모형으로 봤을 때 전자책이 종이책을 이길 수 있었다면 이미 10여년 전에 종이책을 완벽히 밀어냈어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교과서는 사용이 단순해야 하고, 교사와 학생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은 방해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내용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이긴다면 흑백TV라도 즐겁겠지만, 0-5로 왕창 깨지는 장면을 디지털 TV, 그것도 3D로 생생히 목도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 될 것이다. 전시성 디지털교과서의 환상에서 허우적대지 말고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공적 영역인 디지털교과서를 사적 영역인 전자책으로 착각하는 것은 혼란과 실패를 예약하는 것과 다름없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 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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