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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빼앗긴 봄날의 꿈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머잖아 알알이 붉은 열매를 매단 채로 산수유꽃이 필 것이다. 꽉 닫혀 있어야 할 ‘북극 냉장고’ 문이 지구온난화로 슬쩍 열리면서 미국 텍사스주에 보기 드문 폭설이 내렸지만 그래도 꿋꿋이 봄은 온다. 봄의 출현을 알리듯 꽃봉오리가 벌고 노란 우산을 펼친 듯 20여개의 꽃잎을 일제히 드러내는 산수유의 모습은 가히 장관(壯觀)이다.

 

동아시아 원산인 산수유는 지구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후 거의 7000만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꽃을 피워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잎 없이 꽃을 피운다. 산수유처럼 광합성 공장을 가동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성질 급한 식물들은 안타깝게도 작년에 쌓아둔 식량을 덜어 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른 봄꽃을 찾는 꿀벌들은 먼 거리를 움직이며 적은 양일망정 꿀을 모은다.

 

곤충이 날개를 달게 된 것은 오래전 양치식물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자라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주식으로 먹었던 양치식물의 포자가 덩달아 솟구쳤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를 접하면 태양 빛을 좇아 중력을 거스르는 식물의 특성이 날개 달린 곤충의 진화를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날개를 갖춘 곤충은 이제 기탄없이 날아 식물의 조직과 줄기에 구멍을 뚫고 알을 낳는 장치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침이다. 애초 안전한 장소에 알을 주입하는 장치인 산란관으로 출발한 침은 진화과정에서 또 한 차례 변신했다. 숙주의 몸에 자신의 알을 낳는 기생말벌이 그 주인공이다. 자애로운 신이라면 도저히 창조했을 것 같지 않은 생명체로 다윈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기생말벌은 숙주 벌레를 죽이지 않은 상태에서 보금자리와 영양소를 얻어 자신의 알을 성장시킨다. 침에서 독(毒)을 분비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생말벌의 독소는 몸통을 마비시켜 살아 있지만 옴나위 못하는 상태로 숙주를 옥죈다. 침을 가진 벌은 모두 암컷이다. 수컷 벌은 침이 없다.

 

사람의 혈액을 탐하는 모기도 암컷이다. 적혈구 단백질을 분해하여 알을 키우는 영양소로 쓰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벌이나 모기의 침은 한쪽 성(性)에게 생식이라는 과도한 짐을 부과하는 생물학적 장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인간의 태반도 곤충의 침과 기능적 상동 기관으로 간주할 수 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꿀벌은 침의 기능을 사회적으로 분화시켰다. 일없이 빈둥거리며 오직 여왕벌에게만 정자를 공급하는 수컷 벌은 산란 기능을 독점한다. 반면 독과 침을 지닌 채 움직이지 못하는 알과 번데기 그득한 육각형 밀랍 주거지를 지키는 일뿐만 아니라 꽃과 꽃 사이를 돌며 식량을 확보하는 일은 모두 일벌 소관이다. 이러한 진화의 역사를 따져보면 기생말벌 조상에서 꿀벌이 분기해 나온 때는 꽃식물이 등장할 즈음이다. 2006년 미얀마에서 발견된 백악기 중기 호박 속의 1억년 전 꿀벌 화석이 그 증거다.

 

인간이 등장하기 전부터 꿀벌은 이리저리 꽃가루를 옮기며 식물의 수정을 매개하는 곤충으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많게는 6만마리에 이르는 거대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꿀벌은 양초의 재료가 되는 밀랍으로 집을 지어 꿀을 저장하고 새끼를 키운다. 사회성 벌목(目) 가운데 꿀벌은 그 어떤 종보다 영양이 풍부한 자원을 저장한다. 포식자들이 그 보물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이에 꿀벌은 침팬지나 인간처럼 고도한 지능을 가진 포식자에 맞서 박히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 미늘 같은 침을 피부에 박아 거기에 독을 밀어 넣는 방법을 터득했다. 하지만 침에 쏘여도 여간해 죽지 않는 인간은 일찌감치 꿀벌을 인간 집단 안으로 들여와 길들였다. 바람을 타고 수정하는 곡물 몇 가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많은 과실은 꿀벌의 도움을 받아 열매를 맺는다. 산수유도 마찬가지다.

 

일주기 태양 리듬에 맞춰 나른한 아지랑이가 하늘로 솟을 오후 두 시경, 따스한 햇볕 덕에 근육에 힘이 잔뜩 실린 변온성 꿀벌의 분주한 날갯짓이 자못 그립다. 서울 잠실역 지나 지상으로 나서던 2호선 순환 전동차에서 창밖으로 산수유의 여리고 노란 꽃을 무심코 보았던 적이 언제던가? 우리는 지난 한 해 봄을 코로나19에 고스란히 헌납했다. 그렇다고 다가올 두 번째, 세 번째 봄도 허투루 앗기고 말 것인가? 허튼 상념이 깊어진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