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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아르키메데스의 위조 금관 찾기

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지난 금요일 흥미로운 발표를 하나 들었다. 과학교육에서 어떻게 지식융합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지에 대한 발표 내용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준 내용은 사례로 등장한 아르키메데스의 유명한 금관 이야기였다.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 287년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 있던 그리스 식민지 항구도시 시라쿠사에서 태어나 기원전 212년 로마군이 자신의 조국인 시라쿠사를 2년간 포위하며 함락시킬 때 죽었다. 아르키메데스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전해지지 않지만 그가 수학, 물리학, 공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탁월한 기여를 하는 동시에 여러 유용한 발명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학문의 분화가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던 고대 세계 기준으로도 아르키메데스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뛰어난 ‘융합형 인재’였던 셈이다.

아르키메데스와 관련된 일화로는 자신의 계산을 방해하는 로마 군인에게 ‘내 원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했다가 죽음을 당한 이야기와 신전에 봉헌된 금관에 은이 섞였는지 여부를 금관을 훼손하지 않고 알아내고 너무 기뻐 벌거벗은 채 거리로 뛰쳐나와 ‘유레카!’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필자도 이 일화들을 여러 곳에서 수없이 들어왔지만 둘 모두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에 대해 비교적 권위있는 서술인 플루타르크의 기록에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진리탐구를 위해 호기있게 외치는 아르키메데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위대한 인물의 삶에 극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위한 후대의 창작일 가능성이 높다.

유레카 일화 역시 아르키메데스 사후 200년이나 지나 비트루비우스의 저작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당시 유행했던 금관의 특징을 고려할 때, 실제로 은이 금관의 색깔을 변화시키지 않을 정도로 섞였을 때 진짜 순금과 은을 섞어 무게만 같게 만든 가짜 사이의 부피 차이는 너무 작아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게다가 물의 표면장력까지 고려하면 넘치는 물의 부피로 가짜 금관을 알아내는 일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이유를 들어 이미 갈릴레오는 아르키메데스가 왕관을 물에 넣어 넘치는 물의 양을 재는 방식이 아니라 아주 작은 밀도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천칭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물론 아르키메데스가 진짜로 이 금관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를 확실하게 알아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이 사례는 과학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물이 꽉 찬 욕탕 안에 아르키메데스가 들어가면 정확히 아르키메데스 몸의 부피만큼 물이 넘친다고 가정하면(이 가정은 근사적으로만 맞다), 금관처럼 복잡한 형태를 가진 물체의 부피는 그것을 물이 가득찬 욕조에 넣어 넘치는 물을 측정함으로써 알 수 있다. 무게는 쉽게 측정할 수 있으므로 은을 섞어 만든 가짜 금관을 만들려면 순금으로 만든 금관과 무게는 같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금보다 밀도(질량 나누기 부피)가 낮은 은을 사용해서 똑같은 무게의 가짜 금관을 만들려면 가짜 금관의 부피는 순금 금관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 금관을 욕조에 넣어 흘러넘치는 물의 양을 비교하는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완벽하다. 

만약 과학교육의 목적이 부피, 질량, 밀도 사이에 성립하는 개념적 상관 관계를 올바르게 전달하려는 것이라면 설사 사실이 아니라도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일화는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가짜 금관을 찾는 문제에 직면한 사람이라면, 즉 아르키메데스라면 이런 깔끔한 개념적 해결책으로는 부족하다. 흘러넘치는 물의 양이 너무 적고 표면장력이 두 금관의 대조를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작은 밀도 차이가 눈에 확 뜨이는 결과를 가져오는 어떤 방법을 창안할 필요가 있고, 물 속에 넣은 천칭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천칭은 조금이라도 밀도 차이가 있다면 금방 한쪽으로 기울어지며 그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DB

 

이런 해결책은 아르키메데스처럼 수학적인 사고와 공학적인 사고를 결합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해결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결책은 융합형 교육을 지향하는 STEAM 교육처럼 구체적인 상황에서 다양한 자원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교육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에 따라 바람직한 과학교육의 내용과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추상적 개념 사이의 명쾌한 논리적 관계를 깔끔하게 이해시키고 싶다면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를 맞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는 신화를 계속 언급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뉴턴역학을 활용하여 ‘실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복잡한 현실적 상황에 개입하는 다양한 인과 관계를 고려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과학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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