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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둥둥 Book소리

"우주야, 너 왜 태어났니"


과거에는 말입니다. 과학자들의 본업 중 1위는 목사, 2위는 교수였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어쩐지 과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작가...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하더란 말이죠.

과학 법칙은 새로 발견될 때마다 큰 저항을 겪지만 결국 이전 법칙들을 밀어냈습니다. 하지만, 신의 존재만큼은 지우지 못했습니다. 분명 자연을 움직이는 법칙들이 있는데, '어떻게'는 설명이 되어도 '왜'는 모르니까요. "그래도 지구는 돈다"가 아니라 "그래도 신은 존재한다"였다고나 할까요.

까치. 전대호 옮김. 1만8000원


하지만 "우주가 무가 아니고 유인 것은 자발적 창조의 증거다"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지난달 초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으로 과학과 종교 사이의 해묵은 논쟁을 부활시켰던 스티븐 호킹 박사의 발언입니다.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인류의 오랜 고민이었습니다. 하나뿐인 태양, 적당한 거리, 그리고 원에 가까운 공전궤도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생명을 품게 된 지구는 창조의 산물일까요, 아니면 자연발생적인 결과물일까요. 스티븐 호킹/레오나르드 물로디노프의 '위대한 설계' 우주의 시작이 신적 존재의 개입 없이도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약 137억년 전으로 추정되는 대폭발(빅뱅) 이후 우주는 팽창해왔습니다. 저자들은 우주의 시작을 양자적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입자 각각의 역사(이동경로)는 유일하지 않다’는 파인만식 역사 합으로부터우주의 역사도 유일하지 않다는 주장으로 나아갑니다. 

저자들은 끓는 물에 생기는 수많은 물거품처럼 수많은 우주가 생길 수 있다고 비유합니다. 양의 물질에너지와 음의 중력에너지가 0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불균일한 밀도로 인해 물질들이 뭉치면서 은하와 별이 생겼을 것이라고요. 각각의 우주가 자연법칙들의 미세조정 결과로 탄생했다는 거죠.

또, 우주의 역사는 과거에서 현재로 탐구할 것이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역사를 만들어내야한답니다. 더불어 인간은 관찰을 통해서 우주 역사를 ‘창조’하는 의미도 갖게 되고요.

인간이 관찰을 통해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은 초반에 파인만식 역사 합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두개의 틈으로 버킷볼 날리기 실험'에서도 살짝 언급됩니다. 실제 축구공을 쏠 때와 전혀 다른 위치에 공이 쌓이는 것에서 양자의 이동경로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이 확인되는데 빛을 비춰 관찰하면, 원래와 다른 형태로 쌓여버립니다. 양자 수준의 아이들은 빛을 즉 광자를 만나면 움직임이 변하는 겁니다. 관찰자의 영향이 미치게 되는 거죠. 

책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신화적 아이디어부터 고대 그리스의 이오니아 학파의 자연관, 고전물리학과 상대성이론을 아우르며 결국 끈이론과 M이론에 도달합니다. 10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M이론은 서로 다른 다양한 이론이 동일한 바탕 이론의 한 측면일 수 있다는 가정에서 한데 모은 ‘이론 네트워크’라네요. 저자들은 우주를 속속들이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이 발견된다면, M이론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물리학 같기도, 철학책 같기도 합니다. 아마도 물리학의 탈을 쓴 철학책일까요. 
모형 이론적 실재론이 등장할 땐 그래도 자세한 설명의 힘으로 버텼고 기존 물리법칙의 역사를 정리해줄 땐 '아하 그렇구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백컨데, 뒤쪽에서 '약한 인본원리' '강한 인본원리'까지 나왔을 때는 머릿 속에 대혼란이 오더군요. 첫머리에서 철학은 죽었고, 과학자가 발견의 횟불을 들고있다고 할 때 맘 단단히 먹었어야 했습니다. 

신문용 서평을 쓸 땐 한 페이지라도 빠뜨리면 제대로 쓸 수 없을까봐 마감시간을 넘겨가며 읽었습니다만, 어려운 이야기 다 써보니 분량이 두배로 늘었고, 줄이다보니 다시 내용이 없어졌습니다. 뭐 그냥 여기다 사죄합니다.

어쨌건 화재를 일으킨 신간의 번역은 무척이나 빠르더군요. 해외 출간 1달이 채 못되어 벌써 국내 출간됐습니다. 읽기쉬운 활자와 행간, 그리고 그래픽들을 포함해 200p 남짓의 두껍지 않은 책이라서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번역에서 급한 냄새가 나긴 합니다. 몇몇 오자와 어색한 문장도 눈에 띄더군요.

아참, 우주의 시작을 만든 대폭발을 뜻하는 '빅뱅'은 원래 이 이론을 조롱하는 쪽에서 붙인 어휘였다고 합니다. '위대한 설계'도 실은 창조론자들의 지적 설계론을 반박하는 제목이고요. 논쟁을 작정한 듯한 느낌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