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던 지구 종말이 오지 않은 2012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 아마 정치의 해로 기억될 가능성이 제일 높다. 우리나라 대선을 마지막으로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6자회담 국가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바뀐 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빠져 있는 가운데도 지구는 돌고 여러 가지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계속됐다.
보통 한 해의 끝은 10이라는 숫자와 함께 저문다. 각종 분야에서 10대 뉴스를 선정해서 한 해를 마감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엔 가수도 10대 가수를 뽑아 시상을 하곤 했다.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의 유명 과학 저널이나 대중 과학 잡지들도 한 해의 주요 뉴스나 성과를 10가지로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10대 가수 중에서 가수왕을 뽑듯이 보통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기도 한다.
올해 과학계 최대의 뉴스는 힉스 입자의 ‘사실상 발견’이고 올해의 인물은 그 발견의 주역인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롤프-디터 호이어 박사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그 외에도 무인우주탐사선 큐리오시티호의 화성 착륙이나 인간게놈프로젝트의 후속 프로젝트 격인 인코드(ENCODE) 등도 손에 꼽히는 성과로 선정됐다.
하지만 나는 어디서도 언급되지 않는 한 인물을 소개하고 싶다. 어디서도 언급되지 않지만 사실 그 어떤 과학자보다도 유명한 사람이다. 그 이름은 제임스 캐머런, 나이 든 사람에게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감독으로, 조금 젊은 사람에겐 <타이타닉>의 감독으로,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아바타>의 감독으로 유명한 그 사람이다. 나는, 완전히 주관적으로, 그를 올해의 과학자로 선정하고 싶다.
올해의 과학자라고 한다면 혹자는 캐머런 감독이 영화와 관련된 대단한 신기술을 개발했나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와 관련된 기술이 아니다. 대신 그는 2012년 3월26일 인류 역사에 기념비적인 기록을 하나 남겼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저를 혼자서 탐사한 것이다. 이름하여 “심해 도전(Deepsea Challege)” 프로젝트였다.
지구상의 가장 깊은 바다는 북태평양 괌 인근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딥(Challenger Deep)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깊이는 에베레스트 산 높이보다 더한 해저 약 11㎞에 달하고, 압력은 무려 1100기압에 이르며, 한 줄기 빛조차 전혀 없는 환경이다. 역사상 무인 잠수정도 딱 2번밖에 내려가지 못했고, 유인잠수정은 1960년 트리에스테호를 탄 2명이 촬영 장비도 없이 20분 정도 머문 것이 유일할 정도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이다. 그 미지의 세계를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혼자서 내려갔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마리아나 해구의 바닥 탐사를 위해 특수 제작된 잠수정에 타고 있다. (출처; 경향DB)
제임스 캐머런을 모험을 좋아하는 탐험가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2년제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 중퇴한 전력이 전부인 영화감독을 과학자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되묻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캐머런의 영화 이력을 들여다보면 그의 독특하고 특별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적 데뷔작인 <터미네이터>부터 최근작인 <아바타>까지 그의 영화에는 놀랍고도 신기한 기술들이 많이 사용됐고 과학과 기술 문명에 대한 그의 큰 관심이 잘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초기작 <심연(The Abyss)>이나 <타이타닉>, 그리고 심해를 배경으로 한다는 <아바타2>를 관통하는 주제가 바다이다. 올해는 타이태닉호 침몰 100주년을 맞아 이에 관한 TV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캐머런의 “심해 도전”은 무려 7년을 구상해 온 프로젝트였다. 그는 오랜 친구이자 탐사팀의 수석 엔지니어인 론 앨럼과 함께 수직으로 강하하는 유인 잠수정 딥 챌린저(Deep challenger)호를 설계했고 자신이 실제로 조종간을 잡았으며 세 시간이 넘게 심연의 바닥에서 다양한 생물과 지구 환경을 3D 카메라로 촬영했다. 어쩌면 우리는 몇 년 뒤 <아바타2>에서 그 광경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제임스 캐머런의 탐사팀은 스크립스 해양연구소,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 와카야마 대학 등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과 함께 심해 생태계와 해저 생물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미 몇몇 국제학회에선 이에 관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한때 국내에선 <쥬라기 공원>과 같은 영화 1편의 수입이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서 번 돈과 같다는 식으로 영화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영화로 엄청난 돈을 번 감독이 과학 기술에까지 큰 기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정말로 영화 산업을 발전시켜야겠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된다. 2013년에는 이런 인물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뜻에서 올해의 과학자로 제임스 캐머런을 내 맘대로 선정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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