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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나노안전센터’ 만들자

대만에는 나노마크센터라는 것이 있다. 기업이 생산한 나노제품의 품질을 심사해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정부가 나노마크를 부여함으로써 제품을 인증해 주는 곳이다. 이 센터는 나노기술이 발전하면서 나노제품들이 시장에 넘쳐나자 우수한 나노제품과 질 낮은 나노제품을 구분함으로써, 우수한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격려하고 소비자에게는 나노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실제로 나노마크를 부여받은 제품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시장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나노제품에 대한 공신력 있는 인증이 소비자의 신뢰를 향상시켜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나노제품에 대해 국가가 직접 나서 그 성능을 인증해 주는 시도는 대만의 나노마크가 세계적으로 유일하다. 하지만 대만의 나노마크에는 안전성에 대한 인증이 사실상 빠져있다. 나노물질의 뛰어난 기능성-가령 은나노 물질의 높은 항균 능력, 탄소나노튜브의 뛰어난 내구성 및 전기전도성 등-이 나노제품의 성능으로 잘 발현되고 있는지를 주로 다룰 뿐, 나노물질의 독성이 나노제품에서 어느 정도 발현되는지에 관한 안전성 평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능성과 안전성은 서로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 제품의 성능을 높이고자 나노물질의 사용량을 늘리면 그만큼 위해성이 증가할 것이고, 반대로 위해성을 줄이고자 나노물질의 사용량을 줄이면 기능성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대만의 나노마크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케이앤제이씨 '자연애 은나노 물티슈'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나노물질 및 나노제품의 안전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나노기술을 상용화·산업화하려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나노안전성 문제보다는 나노기술의 산업화가 주된 화두였다. 하지만 나노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지기 시작하고 더욱이 제품에 사용된 나노물질 자체의 인체 및 환경에 대한 위해성이 다양한 연구결과를 통해 보고되면서, 2005년 이후로는 나노안전성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노기술 선진국들이 나노제품에 원료로 사용되는 나노물질의 위해성 연구에 많은 예산과 노력을 들여온 결과, 나노물질의 안전성에 대해 많은 정보들이 축적돼 있다. 하지만 이를 원료로 사용한 나노제품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신뢰할 만한 정보들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나노제품의 안전성과 관련해서 나노물질의 독성이 제품 안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 기제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한데, 실제로 이에 대한 연구가 매우 어려워 거의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제품에 원료로 투입되는 순간 나노물질은 다른 물질들과 결합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결합이 이루어지면 제품은 원래의 나노물질과 달리 독성이 매우 약하게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실제로 이를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나노제품을 사용할 때 다양한 환경에서 나노물질들이 그 자체로 방출되기보다는 다른 물질과의 중합체 형태로 방출될 텐데, 이 때 방출된 중합체의 특성은 무엇이고 독성은 어느 정도인지를 분석·측정할 수 있다면 나노제품의 안전성에 대해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연구를 전제로 나노제품의 안전성을 공식적으로 평가할 때다. 나노제품의 위해성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나노물질의 위해성과 어느 정도 다른지, 특히 과학적인 예측대로 매우 약한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동안 나노물질의 독성으로 나노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던 갖가지 불신과 불안감, 그로 인해 나노물질을 사용했음에도 나노제품으로 표시하지 못하는 기업의 고충과 시장의 혼란, 이 같은 현실에 발목이 잡혀있는 나노산업의 활성화 지연 등 나노 안전성 관련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노안전센터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다.



나노하이브리드 '아토시스'


이외에 나노안전센터는 국내에서 제조·사용되고 있는 나노물질의 위해성도 평가해야 한다. 나노물질의 위해성에 관한 한 현재 국제적으로 다양한 규제가 있는데 국내에는 사실상 규제조치가 없어 자칫 안전 사각지대가 될 우려가 있다. 국내 나노물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그리고 국외의 규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나노물질의 안전성 평가가 보다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정부 주도하에 진행될 필요가 있다. 또한 센터는 나노물질 및 나노제품의 안전성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기업에는 보다 안전한 나노물질 및 제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소비자에게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나노물질 및 제품에 대한 불안감 증폭을 해소시켜야 한다. 또한 나노제품 표지기술을 개발해 국내 시장에서도 소비자가 나노 표지를 보고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나노안전센터가 나노기술 선도국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