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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이유있는 GMO 공포

미국산 ‘GM 밀 사건’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승인을 받아 세계인이 섭취하고 있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대해서도 안전성과 표시제 시행 논란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번 GM 밀은 승인을 받지 않은 불법 품목이기 때문에 논란의 범주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 GMO의 재배와 유통에 대한 관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GMO를 발견하는 일은 물론 사건의 발생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가 너무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한 농부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9년간 격년으로 밀을 경작해오던 그는 올해 초 새로 종자를 심기 전에 밭에 제초제를 살포했다. 지난해 수확 후 남아있던 밀도 제거 대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제초제에 살아남은 다량의 밀이 발견됐다. 



오리건주의 곡창지대;오리건 헬릭스근교의 광활한 농경지; (경향DB)



제초제는 몬산토가 생산한 글리포세이트(일명 라운드업)였다. 몬산토는 그동안 콩, 옥수수, 면화, 유채 등에 제초제 저항성을 갖도록 외래유전자를 삽입한 GMO를 개발해 왔으며, 그 종자들에 제대로 기능이 발휘되는 ‘맞춤형 제초제’인 글리포세이트를 함께 판매해 왔다. 따라서 농부가 밭에서 발견한 밀은 몬산토의 GM 밀이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4월30일 농부는 오리건주립대 연구진에 검사를 의뢰했다. 그 결과 글리포세이트에 대해 저항성을 가진 GM 밀이라는 1차 판정이 나왔다. 5월3일 연구진은 미국 농무부(USDA) 산하 동식물위생검사국(APHIS)에 관련 사실을 보고했고, 29일 농무부는 동일한 판정을 내려 한국을 비롯한 밀 수입국에 공식 통보했다.



농부, 연구진, 농무부 모두 크게 놀랐다. GM 밀은 세계적으로 상업적 재배가 허용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몬산토가 GM 밀(MON71800)을 1998~2005년 미국 16개 주에서 100여건에 걸쳐 ‘시험재배’를 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오리건주의 경우 2001년 시험재배가 승인됐으며, 이후 몬산토는 상업적 재배를 포기하고 시험재배 중이던 GM 밀을 완전 폐기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12년이 지난 현재 어떻게 GM 밀이 다시 자라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당시 시험재배 중이던 개체들이 살아 남아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심증이 물증으로 확인되기는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보통 GMO가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에 섞여 있는지 확인하려면 공인검사법이 확립돼야 한다. GMO 품목별로 제각각의 검사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검사법을 개발하려면 대상 GMO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정보는 정부의 재배 승인을 받은 품목에 한해 제공된다. 하지만 이제껏 GM 밀은 재배 승인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검사법을 개발할 자료 자체가 없다.



몬산토는 최근 관련 자료와 MON71800의 검사법을 미국 농무부는 물론 한국을 비롯한 밀 수입국 정부에 제공했다고 밝혔다(6월5일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발표는 자체 검사법으로 얻은 잠정적 결론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몬산토는 오리건주의 GM 밀이 MON71800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리건주에서 시험재배를 했지만, 이번에 발견된 지역은 시험재배 장소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밀의 꽃가루 이동은 지극히 짧으며, 무엇보다 MON71800은 봄밀인 데 비해 이번 GM 밀은 겨울밀이어서 품종 자체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농무부는 가능한 한 빨리 검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몬산토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어쩌면 이번 사건은 과학적으로 미궁에 빠질 수 있다. 



2006년 8월 미국 농무부는 바이엘이 시험재배 중인 GM 쌀(LLRice601)이 보통의 쌀에 섞여 선적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바이엘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미국 농가에 7억5000만달러를 배상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시험재배 중인 쌀이 섞였는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입 밀에 GMO가 섞여 있는지가 가장 큰 우려사항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발단이 시험재배용 GMO라는 점을 상기하면 우려의 폭이 더욱 넓어진다. 한국에서도 시험재배 중인 GMO가 있기 때문이다. 


식품점에서 옥수수를 고르고 있는 어린이. (경향DB)



<생명공학백서>에 따르면 2011년 8월 현재 국내 개발 중인 GMO는 49개 작물, 171종으로 추정되며 정부 승인을 받아 21개 기관에서 16개 작물에 대한 환경방출실험 223건이 진행되고 있다. 벼가 120건으로 가장 많고 콩, 배추, 고구마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미 외국에서 수입되는 GMO가 국내 곳곳에서 자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번 GM 밀 사건은 국내 농지가 GMO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이유가 단지 수입 GMO에만 있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