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요즘 재계에서 창의산업, 창의경영이 화두다. 창의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기업 경영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기존의 제조업 등 산업 분야에 창의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거나 새로운 융합 분야를 창출하여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함일 것이다. 여기서 창의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천재적 상상력보다는, 남과 다른 방식으로 기존의 여러 가지 정보들과 방법들을 결합하고 확대하여 독창적인 것을 구상하고 만들어 내는 인간의 능력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창의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결국 창의능력을 지닌 인재 양성이 지금 재계 화두의 귀결이자 관건인 셈이다.
사실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 기업, 대학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중요 사안이다. 예를 들어 2008년에 영국 정부의 문화·미디어·스포츠부가 작성한 ‘창의 영국, 새로운 경제를 위한 새로운 능력’이란 보고서를 보면 영국의 창의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들, 특히 교육부문에서의 전략과 노력들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국가경쟁력위원회를 주축으로 창의적 융합인재를 키우기 위한 새로운 학제 제안과 산학협력에 기반한 공학교육 혁신 등 융합인력 양성체제를 갖추고 있다. 역시 모두의 주된 관심은 대학에서 창의적 융합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인재를 대학에서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요즘 미국과 영국의 많은 대학들이 창의적 융합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산학 연계에 기반한 문제-해결형 학습(Problem-Based Learning) 방법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문제-해결형 학습방법은 창의성을 키우는 대표적인 교육방법론의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학습방법은 우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자체를 학생 스스로 설정하도록 요청한다. 남이 보지 못했던 문제를 학생 스스로 발견하고 탐구하도록 함으로써 창의성을 키우고자 하는 것이다. 융합 분야의 경우 개별 전공 분야에서 발견하기 어려웠던 새롭고 참신한 문제들이 많기에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 다음 설정한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해결책 또는 관련 지식을 찾아보도록 하고 기존의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을 확인하게 한 뒤, 이 부분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임무들을 정하도록 한다. 임무가 정해지면 팀을 구성하여 해당 전공 분야 튜터들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필요한 연구를 수행토록 한다. 최종적으로 연구 결과를 분석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융합적인 전문지식에 대한 상세한 이해뿐만 아니라, 문제 설정 능력, 자원·정보·기술 활용 능력, 의사소통 및 결정 능력, 팀워크 형성 능력, 연구 능력, 자기관리 능력 등 문제 해결에 필요한 다양한 능력들을 함께 배양하게 된다. 실제의 운영 사례를 보자.
LG전자-연세대 산학협력 협약 체결
(경향신문DB)
미국의 스탠퍼드대학은 기업과 함께 기업의 제품 개발 및 설계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스탠퍼드대학의 대학원생들이 기업에서 파견된 전문 인력과 타 대학의 관련 전문 연구자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해결하는 문제-해결형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한 예로 2005년에 독일의 폭스바겐 자동차 회사가 운전자의 손동작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컴퓨터에 기반한 동작제어 인터페이스를 자동차에 설계하도록 요청하여, 25주 동안 학생들에 의해 프로젝트가 수행된 바 있다. ‘ME310’이라 불리는 이 프로그램에는 현재 전 세계 45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프로젝트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또 다른 좋은 사례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공학 비즈니스 프로젝트다. 공과대학 학부 3, 4학년 과정에서 운영되는 이 프로젝트는 학생들로 하여금 벤처기업 혹은 대기업의 신사업 분야를 대상으로 이에 맞는 기술제안서 및 사업제안서를 작성하도록 진행하고 있다. 5명이 한 팀이 되어 산업체에서 파견된 현장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단계적으로 마케팅 개념에 기반한 신제품 설정 및 시장 예측, 제품에 대한 기본 설계 완성 및 시제품 제출, 생산 계획 및 수익성 분석 그리고 세부 사업계획서 제출 등 창의적인 공학 비즈니스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들은 산학연계를 바탕으로 한 다학제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교육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우리의 대학들도 이러한 창의적 융합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융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그리고 대기업들의 경우 자체적인 창의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도 좋지만, 사례들이 보여주듯 대학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창의적 융합인재가 양성될 수 있도록 산학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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