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인터넷에는 온갖 종류의 괴담이 넘쳐난다. 자유로운 정보의 소통을 보장하는 인터넷의 특성이 신뢰할 만한 정보와 그렇지 못한 정보를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DDT 괴담’도 그 중 하나다. 그 핵심은 화학물질의 무분별한 사용의 문제를 지적한 레이첼 카슨이 히틀러만큼이나 많은 사람을 죽인 끔찍한 살인자라는 주장이다. 카슨의 <침묵의 봄>은 당시까지 최신 연구결과를 유려한 문체로 녹여내어 환경오염의 폐해에 대한 대중의 경각심을 높였다. 카슨의 노력은 구체적인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1972년 미국 환경청의 주도로 미국 내에서 DDT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된 것이다. 그런데 괴담은 이러한 카슨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한다.
최근 보수성향의 미국기업연구소나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이 같은 정책의 핵심을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에 정부가 법률적으로 제한한 것으로 파악하고 그로부터 야기된 ‘무서운’ 결과를 선전하는 데 열심이다. 인류에게 큰 고통을 주는 말라리아와 같은 질병을 막는 데 DDT가 가장 효과적임에도 카슨의 과장된 선전 때문에 대중적 히스테리가 확산되면서 불필요하게 그 사용이 금지되고 수많은 인명의 희생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솔깃한 괴담이 대부분 그렇듯 ‘DDT 괴담’도 신빙성 있는 사실과 논쟁적인 주장 그리고 터무니없는 거짓이 뒤범벅되어 있다. 일단 DDT가 이상적인 살충제로 평가되었다는 점은 역사적 사실이다. DDT는 값이 싸고 살충력과 지속성이 우수했으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인체에 직접적인 해가 없어 보였다. 그러기에 무차별 공중살포를 통해 광범위한 지역을 DDT로 장기간 오염시키는 일이 흔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DDT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생물의 신경계에 작용하여 심각한 부작용을 장기간에 걸쳐 일으킨다는 점 또한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게다가 DDT의 사용방식에 따라 그 살충력은 민감하게 달라진다. 카슨이 반대하던 무차별 대량살포는 모기와 같은 목표 생물의 내성을 증가시켜, 곧 DDT의 살충력을 급격히 감소시킨다는 점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말라리아 모기가 피를 빨아 먹는 모습
(경향신문DB)
전 세계 어디에서도 DDT 사용만으로 말라리아를 근절하는 데 성공한 나라는 없다. 공중위생의 개선, 사회적·경제적 환경의 개선 그리고 DDT 사용을 병행한 이탈리아와 달리 비슷한 규모의 DDT만을 사용했던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말라리아가 잠시 주춤했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최근 DDT의 사용이 다시 고려되는 이유도 DDT의 장기적 효과가 이처럼 사용량, 적용지역 범위, 사용 간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현재까지 이루어진 과학연구는 DDT가 매우 효과적인 살충제이지만 적절한 양을 현명하게 사용할 때에 한해서 유용하며, 그 경우에도 부작용은 피할 수 없기에 사용결정 과정에서 여타의 복합적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72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진 DDT 사용 금지가 말라리아로 인한 엄청난 희생을 가져왔다는 주장 역시 근거가 희박하다. 우선 환경청의 금지정책에는 예외조항이 있었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지역에서 DDT가 사용될 수 있도록 DDT를 제조하는 미국 회사가 이를 세계보건기구에 판매하는 것을 허용했고, 미국 내에서도 공중보건상의 긴급한 상황에서는 DDT 사용을 허가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 금지정책은 미국에만 해당된 것으로 미국이 다른 나라에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별 나라는 각자 자신들의 구체적인 정치상황의 배경에서 DDT 사용에 대한 입장을 결정했다. 결정적으로 DDT 규제법안은 미국의 공화당 집권 시절에 이루어졌으며 정파를 초월하여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공공정책은 정확한 과학적 사실의 기반하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 말은 물론 관련 과학적 사실이 정해지면 공공정책의 내용이 저절로 확정된다는 말은 아니다. DDT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정책결정자가 잘 알고 있더라도 정책이 시행되는 지역의 보건위생적 환경, 경제적 환경, 정치적 환경에 따라 최종적으로 도출되는 결론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DDT 괴담’처럼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주장에 근거하여 공공정책에 대한 특정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려는 시도는 삼가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되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한 효율적 공공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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