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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공감하고 분노하는 애덤 스미스

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요즘 코믹하면서도 씁쓸한 일이 자주 보도된다. 평범한 사람이 했으면 당연히 처벌받을 일을 한 사람들이 인사검증 과정에서 ‘억울하다’고 이야기한다. 사회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하는 일을 했을 뿐인데 자신에게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것이 억울하다는 말일까? 굳이 언론의 조명이 없더라도 바람직하지 못한 공직자의 행동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분(公憤)을 느끼게 마련이다. 이런 분노의 느낌은 언론이 조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깊숙이 자리잡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동서고금의 여러 학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주변의 상황에 대해 도덕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따라 공감하거나 분노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생득적 능력이라는 점을 체계적 이론으로 발전시킨 사람으로 애덤 스미스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스미스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오해받고 있는 사상가도 드물다. 흔히 그는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옹호한 사람으로 평가되지만 사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만으로는 경제 제도나 사회의 효율적 운용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성향 이외에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과 부당한 상황에 대해 분노하는 능력을 본성적으로 타고났다고 믿었다. 그는 이들 능력이 우리가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스미스는 이러한 공감과 분노의 능력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사람들의 복지를 전반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사회제도를 마련하기를 원했다. 개인의 이기심에 근거한 자본주의적 거시적 틀을 각종 사회적 제도장치로 보완하고자 하는 것이다.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가 영국의 신권 20 파운드짜리 지폐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출처 :경향DB)



1723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스미스는 글래스고 대학에서 경험주의 윤리학자 허치슨 밑에서 공부했으며 에든버러 대학에서 절친인 유명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함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철학운동을 이끌었다. 그후 글래스고 대학의 도덕철학 교수로 일하면서 1959년 그의 첫 주저인 <도덕 감성론>을 출판한다. 경제학의 아버지 스미스가 도덕을 가르쳤다는 사실이나, 그의 첫 책이 타인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하는 우리의 능력에서 도덕적 판단의 근원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 의외로 여겨질 수 있다. 통상적 해석은 <도덕 감성론>의 저자, 순진한 도덕철학자 스미스가 <국부론>의 저자, 냉정한 경제학자로 ‘변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문헌 연구에 따르면 글래스고 대학 시절에 <국부론>과 <도덕 감성론>이 함께 기획됐다는 점이 확인됐다. 스미스가 변신했다는 견해는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스미스 도덕철학의 핵심은 무엇인가? 경험주의자로서 스미스는 인간의 도덕 능력을 결코 이상화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공감과 정당한 분노를 느낄 수 있으나 그것에는 일정한 경향성과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전개되는 고통이나 나와 가까운 사람의 불행은 절절하게 공감하지만,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다는 소식에는 그다지 동요하지 않기 마련이다. 스미스의 이러한 관찰은 현대 자선단체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보다 많은 기부금을 얻어내는 데 객관적 통계치를 나열하는 것은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오히려 기부자의 기부를 이끌어내는 데는 구체적 이름과 이야기를 가진, 고통받는 사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스미스는 또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처벌하는 것이 사회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도덕성 진화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타인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려는 무임승차자(free-rider)를 응징하는 것이 사회적 신뢰 구축에 필수적이다. 여기에 더해 인간의 협동이 친족을 넘어서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데, 도움을 주고받는 사람들끼리만 서로 돕는 것이 결정적이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선은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만이 아니라 인간 도덕성에 대한 과학적 관찰을 도덕철학의 기초와 연결시킨 뛰어난 학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중요한 점은 그가 무한경쟁을 옹호하기보다는 이기심, 공감, 그리고 그 한계를 모두 인정하고 각각의 문제점을 제도적으로 보완할 것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스미스에 따르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도덕감성을 가졌기에 철저하게 자기 이익에 따라서만 행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도덕감성은 일정한 한계도 지니기 때문에 이상화된 인간성에만 근거한 사회운용도 효율적일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효율이냐 정의냐의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복잡한 측면을 정확히 이해한 바탕에서만 시행될 수 있는 균형잡힌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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