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누구나 그랬겠지만 필자도 어린시절 만화를 무척 좋아했다. 모든 만화가 재미있었지만 멋진 과학기술이 펼쳐진 미래 신세계를 다룬 만화가 특히 매혹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일본만화의 번안작인 <동짜몽>이 그중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동글짜리몽땅’한, 고양이처럼 생겼지만 결코 고양이가 아니라고 우기는 웃기는 로봇이 나오는 만화였다. 이 만화를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던 때는 곤경에 처한 주인을 위해 동짜몽이 주머니에서 신기한 물건을 척척 꺼내는 순간이었다. 찹쌀떡을 먹고 싶다고 하면, 작은 인공태양과 양탄자 논을 끄집어내어 순식간에 찹쌀을 수확해 먹음직한 떡을 눈앞에 내놓는 대목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정말 미래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저런 기계들이 나올 것이라 잔뜩 기대했었다. 과학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셈이다.
애니메이션 '도라에몽' (출처: 경향DB)
이런 생각은 아이들이 멋진 미래를 상상하던 70년대보다 훨씬 오래전에 등장했다. 예를 들어, 근대 과학 방법론의 성립에 중요한 기여를 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말년에 발표한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그 꿈의 구체적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 책에서 베이컨은 미지의 섬 벤살렘에 표류한 유럽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과학기술 연구에 의해 인도된 이상적인 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벤살렘 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종의 과학기술 연구기관인 ‘살로몬의 집’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직분으로 세분화된 학자들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장치를 사용해서 경험적 지식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인과관계를 파악해낸다. 그런 다음 파악된 인과적 지식을 활용해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장치를 만들어낸다. 벤살렘 섬에 표류한 유럽인들이 경탄할 정도로 섬 원주민들이 풍요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가 후원하는 이 같은 조직적 연구를 통해 과학지식과 기술적 인공물들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이컨이 꿈꾸었던 이상사회는 최초의 지식기반 사회였던 셈이다.
살로몬의 집과 벤살렘 섬 이야기를 읽다 보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낯선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살로몬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연구에는 지식을 위한 연구와 사람들의 복지를 위한 연구 사이의 구별이 없다. 거기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원인을 규명하면 그것은 인류의 복지에 도움이 되리라는 점이 당연시됐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주제는 간단치 않다. 제한된 자원을 이른바 순수연구와 응용연구에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 순수연구와 응용연구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은 과학자와 공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골치 아픈 문제다.
살로몬의 집은 또 다른 특이한 점을 가진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오직 ‘좋은 일’만 일어난다. 살로몬의 집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선한 의도를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선한 의도를 갖고 연구한 결과가 예기치 못한 나쁜 결과를 가져오거나, 실제 상황에서는 무엇이 ‘선한’ 의도인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음을 알고 있다. 토마스 미즐리는 화학적으로 이상적인 성질을 가졌지만 오존층에 구멍을 내는 결과도 가져오기도 하는 프레온 가스 대량합성 연구를 수행했다. 프리츠 하버는 나중에 자신을 버린 조국이 1차대전에서 이기도록 독가스를 연구했다.
게다가 벤살렘 섬의 활동에는 생태적 고려가 철저하게 빠져 있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산업 및 상업의 발달로 인해 지구 생태계가 치뤄야 할 대가에 대한 언급은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이야기 전체를 통틀어 오염이나 쓰레기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경기도 안성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 오염 (출처: 경향DB)
17세기 초에 발표한 글에서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문제들이 예견되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베이컨이 예견했듯이 지식은 끊임없이 진보해왔고, 그 결과 인류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지식의 진보에 따른 여러 부작용을 인식하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현재에도 필자가 어린시절 동짜몽을 보고 상상했던 방식으로 과학지식의 진보와 미래기술의 발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베이컨이 꿈꾸었던 세상은, 아쉽지만 그의 사후에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된 여러 경험적 사실로 인해 도달할 수 없는 이상형임이 판명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이컨의 유토피아적 전망에 집착하기보다는 연구자원의 효율적 배분, 예기하지 않은 부작용에 대한 대비, 오염과 쓰레기를 줄이는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매혹적인 꿈을 꾸어야 할 것이다.
'과학오디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름과 개념, 그리고 오해 (0) | 2013.01.27 |
---|---|
나노제품의 안전성 (0) | 2013.01.13 |
아날로그로 살아보기 (0) | 2012.12.17 |
내가 보지 못하는 고릴라 (0) | 2012.12.09 |
융합 선도하는 유비쿼터스 기술 (0) | 2012.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