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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검사’ 소비 시대

“당신과 자녀의 유전정보가 궁금하십니까? 20년 뒤 어떤 질병에 걸릴지 알고 싶습니까? 간단한 샘플을 보내면 한 달 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조만간 국내에서 이런 광고문구가 대거 등장할지 모르겠다. 광고를 내는 주체는 의료기관이 아니다. 컴퓨터를 이용해 사람이 가진 엄청난 양의 유전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생명공학업계와 정보통신업계가 유전자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동안 의학계에 보고된 다양한 유전질환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의 유전자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알려준다. 국민건강검진에서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도 안심할 수 없다. 1997년 공상과학영화 <가타카>의 한 장면 처럼 우리가 수십년 뒤 각종 질환에 걸릴 확률이 수치로 나타난다. 다만 영화와 달리 병원이 아닌 민간업체가 직접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이른바 ‘비의료기관과 환자 간 직접검사(DTC·Direct-To-Consumer)’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지난달 29일 열린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DTC 방식의 유전자 검사 허용에 관한 안건이 논의됐다. 현재의 규제 제도를 완화해 민간업체에도 일부 질환에 대해 유전자 검사의 기회를 터주겠다는 취지에서다. 이미 미국과 영국에서 적지 않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사안이 국내에서는 너무 조용히 추진되고 있는 느낌이다.

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DTC 방식의 검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이 자유로운 유전자 검사를 원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그렇게 판단할 만한 근거 자료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민간업체의 수요가 커지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첨단 유전자 분석 장비를 보유한 국내 업체들이 그동안 DTC 방식의 검사를 희망해왔다. 환자 외에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리고 병원과의 계약 없이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시행한다면 현재보다 고객의 수는 상당히 늘어날 수 있다. 신청자의 유전정보를 담는 검사키트를 개발할 능력이 있는 업체에도 호재이다. 하지만 검사 결과에 대한 판단을 전문 의료진의 도움 없이 신청자 스스로 한다는 점에서 많은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국내 분위기는 경제적인 사업모델의 정립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듯하다.

DTC 검사업체로 성공했다고 거론되는 회사는 미국의 23앤드미(23andMe)가 거의 유일하다. 지난해 말 99달러라는 파격적인 검사비용을 내세우며 인기를 끌던 이 회사는 신청자의 타액을 담아 보내는 검사키트가 의료장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제재를 받아 잠시 서비스를 중단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2월 희귀질환인 블룸증후군의 진단에 한해 FDA의 허가를 받으면서 다시 화제를 낳았다.

유전자 검사를 하는 유전자 정보센터 (출처 : 경향DB)


그런데 언론의 관심은 주로 사업성에 맞춰지고 있다. 99달러의 검사비용을 지불한 미국인 수가 무려 90여만명에 달한다는 점, 장차 정부 허가를 받는 질환의 수가 늘어나리라는 전망, 관련 시장이 수조달러에 이른다는 기대감 등이 잇따라 보도됐다. 최근에는 23앤드미의 창립자 앤 보이치키가 후원자이자 남편인 구글 창립자 세르게이 브린의 불륜 문제로 이혼함으로써 위자료를 얼마나 받을지 궁금하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서구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둔 기업인 얘기에선 정작 해당 제품이 소비자에게 어떤 문제점을 일으킬지에 대한 지적은 거의 없다.

학계에서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것도 의아스럽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23앤드미가 등장했을 때 의료계가 먼저 강력하게 우려를 표명했다. 의료인도 해석하기 어려운 유전정보가 일반인에게 간단히 전달되면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청자의 가족력을 알 수 있다는 얘기도 허황되다는 지적이 있다. 영국의 한 진화학자는 유전정보로 조상의 계보를 알려준다는 서비스는 ‘유전자 점성술’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DTC 유전자 검사에 대한 의료계와 생물학계의 공식 반응은 잠잠하다.

지난달 초 미국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애플이 아이폰 사용자로부터 유전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연구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앱 개발 사업에 조심스럽게 착수했다고 밝혔다. 왜 조심스러울까. 앱이 연구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신청자에게는 아이폰으로 자신의 유전정보를 볼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별 이득이 없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이다. 정부가 유전자 검사 규제를 완화하기에 앞서 소비자에게 과연 어떤 이득이 있는지 알려야 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