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개인에게 유전자 정보를 제공하는 민간 서비스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11월22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3앤드미(23andMe)라는 ‘잘나가는’ 바이오기업에 경고 서한을 보냈다. 회사가 당장 서비스를 중단하지 않으면 제품을 압수하고 범칙금을 부과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23앤드미는 이 경고를 받아들여 12월 초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한편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유전자 정보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는 점을 내세워 FDA의 조치에 반감을 표했다. 하지만 FDA의 제동은 일반인이 ‘제대로’ 알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정당해 보인다.
23앤드미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전자를 검사하고 온라인을 통해 그 결과를 제공하는 업체다. 2007년 설립됐을 때 서비스 비용은 1000달러였다. 인간의 DNA를 구성하는 30억개 염기 가운데 50만개 정도를 검사해 신청자의 혈통은 물론 각종 질환에 걸릴 확률을 알려줬다. 검사 키트에 타액을 넣어 보내면 몇 주 만에 결과가 통보됐다. 많은 미국인들이 이 검사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회사의 창업자인 앤 보이치키는 예일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며, 늘 개인적으로 자신의 유전자에 관심을 가졌다. 어머니와 이모할머니가 파킨슨병에 걸린 이력이 있기 때문에 이들과 자신의 유전자가 동일한지 여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궁금증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창업을 감행했다. 23앤드미의 ‘23’은 인간의 유전정보가 모여 있는 염색체 23쌍에서 따온 말이다.
회사 설립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남편의 힘이 컸다. 남편은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이다. 구글은 23앤드미가 창업할 때 390만달러를 투자했다고 알려졌다. 당시 외신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유전자 정보에 쉽게 접근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당신의 유전자를 구글링한다”는 표현이 곧잘 등장했다.
FDA는 2010년부터 23앤드미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원래 유전자 검사 장비는 질병 가능성을 진단하는 의료기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품질과 정확성에 대한 FDA의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제작돼야 한다. 타액을 담는 23앤드미의 검사 키트 역시 의료기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FDA는 유전자 정보 서비스 회사들이 판매하는 장비에 대해 FDA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현재 미국에서 관련 서비스 회사의 수는 30여개에 달한다. FDA는 23앤드미와 여러 차례에 걸쳐 이 사안에 대해 논의해 왔다.
(경향DB)
그런데 23앤드미가 올해 들어 대대적인 홍보를 펼친 것이 화근이었다. 그동안 23앤드미의 문을 두드리는 새로운 신청자는 주로 검사 경험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 수가 수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23앤드미는 전문 경영인을 영입하고 연말까지 100만명의 회원을 모집한다는 공격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행사 특가는 99달러에 불과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족에게 유전자 정보를 선사하라는 구호가 따랐고, 올해 5월 유전자 검사를 계기로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를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라고 소개했다.
FDA는 23앤드미와 더 이상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경고 서한의 핵심은 23앤드미의 검사 키트가 정확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서한에는 졸리를 의식한 듯 유방암 유전자를 예로 들어, 만일 결과가 사실과 다르게 나온다면 여성들은 쓸데없이 수술을 받게 되거나 실제 발병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치할 위험이 있다는 설명이 담겼다. 11월 말에는 23앤드미의 검사를 받은 한 여성이 23앤드미가 틀린 정보를 제공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면서 5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궁지에 몰린 23앤드미는 결국 100만명 회원 모집 이벤트를 접어야 했다.
사실 유전자 검사 결과는 전문가가 분석하는 경우에도 부정확하게 나올 수 있다. 일례로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힌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은 2007년 한 전문회사의 권유로 자신의 유전자를 검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데이터에는 왓슨이 28세에 걸렸던 기저세포암과 그의 아들이 앓고 있는 정신병과 관련된 유전자 정보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남성임에도 오히려 유방암이나 난소암 발병 위험이 높다는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그렇다고 개인별 유전자 검사 서비스가 당장 중단되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의 관련 회사들은 서비스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유전자 정보를 단순히 제공하기보다 의료계 전문가들과의 협조모델을 갖추기 시작했다. FDA가 우려하는 검사의 부정확성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해결될 것이다. 가족의 유전자 정보를 알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이제 과학기술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별 선택의 문제로 다가왔다.
김훈기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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