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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과학소설에는 ‘공상’이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문학적 맥락에서 허구란 “실제로는 없는 사건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창조해 냄. 또는 그런 이야기”를 의미한다. 한편 공상이란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봄. 또는 그런 생각”을 의미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과학소설(SF)에는 허구는 있지만 공상은 없다. 대신 과학소설에는 실제 과학 이론에 근거한, 삶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있다.

 

그럼에도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공상과학소설’도 등재되어 있는데, 그 정의는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가상하여 그린 소설”이다.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모든 허구는 현실적 시공간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볼 수 있기에 결국 공상과학소설에서도 ‘공상’은 오직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허구인 한에서만 허용된다고 보아야겠다.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부커상을 비롯한 여러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저명 작가이다. 그가 2005년 발표한 소설 <나를 보내지 마>는 인간 장기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장기를 제공할 클론을 제도적으로 도입한 허구적 사회를 그리고 있다. 과학소설의 하위 장르인 대체역사소설에 해당되는 이 작품은 그해 타임지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로 뽑혔고, 2010년 영화화되어 많은 사람을 매료시키기도 했다.

 

이 작품의 특징은 분명 우리에게는 비인도적 행위, 즉 장기를 얻기 위해 인간을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일이 이기적 개인의 암묵적 합의를 통해 널리 시행되는 디스토피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영국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을 헤일셤이라는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각각 개성이 넘치는 세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스토피아적 과학소설이라면 할리우드식 좀비 영화를 떠올리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나를 보내지 마>는 순수문학인지 장르문학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하는 문학적 깊이를 보여준다. 이런 이유로 이 작품을 헤세의 <데미안>처럼 전형적인 성장소설로 간주하는 평자도 여럿 있었다. 이 작품에서 펼쳐지는 죽음과 상실, 사랑 같은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탐색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공상’ 과학소설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데 많은 사람들이 주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주저함은 과학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막연히 어린 시절 보았던 황당무계한 로봇 만화영화의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작가에 따라 현대 과학이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소설적 상상력을 구사하려는 경향과 미래 과학연구가 새롭게 밝혀낼 가능성까지 포함해 허구를 만들어내려는 경향 등 다양한 창작 태도가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려보는 방식으로 과학소설을 쓰는 작가는 없다.

과학소설의 이야기 전개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관련 과학적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과학소설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는 어린아이들에게나 적합한 저급한 ‘공상’이 넘쳐나서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첨단 과학기술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소설은 우리에게 근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여러 복잡한 과학기술 관련 정치, 사회, 윤리 문제를 가상적으로 체험하고 이에 대해 선제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역시 부커상 수상작가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 <인간종말 리포트>는 과학기술적 혁신과 경제적 이윤추구를 결합한 기업 권력이 명목으로만 남은 정치권력을 대신하는 근미래가 배경인데, 이 소설이 다루는 쟁점이 오싹할 정도로 생생해서 마치 현대 과학기술사회에 대한 치밀한 사회문화적 분석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런데 물론 훌륭한 소설답게 <인간종말 리포트>는 읽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존 바딘이라는 물리학자는 다른 물리학자들은 한 번도 타기 힘든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각각 순수과학 연구로 분류되는 초전도 연구와 응용과학 연구로 분류되는 반도체 연구를 통해서였다. 두 연구 모두 과학이 세상의 인과적 작용을 해명하고 이를 활용해 더 나은 세상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과학소설이 순수문학이 아닌 장르문학이기에 가치가 떨어진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훌륭한 문학작품과 그렇지 못한 문학작품이 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공상’ 과학소설이라는 용어로 뛰어난 과학소설을 폄하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정말 좋은 과학소설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이 점에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상욱 | 한양대 철학과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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