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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기계와 더불어 살기

오심 논란으로 프로야구가 뜨거웠다. 오심 장면은 다음 날 인터넷에 어김없이 등장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요즘은 방송사 카메라뿐만 아니라 개인 카메라까지 등장해 심판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비디오 판독은 경기를 지연시켜 흥미를 잃게 만들기 때문이라곤 하지만 오심으로 피해를 본 선수나 팀을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개선돼야 한다. 비디오 판독 동안 광고를 띄울 수도 있으니, 스포츠 중계에서 이 과정은 이용하기 나름이 아닐까 싶다.



산업혁명 이후로 인간이 기계를 줄곧 지배했었지만, 현대인은 컴퓨터로 무장한 기계군단의 거대한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스포츠 판정에 기계가 간섭을 시작한 것은 테니스 경기가 그 시작이다. 잘 알려진 예는 호크아이(Hawk-Eye)라는 공 추적시스템이다. 원래는 영국에서 크리켓 판정을 위해서 고안된 것이지만, 시범운영을 거쳐 2006년 US 오픈 테니스에서 공식적으로 활용됐다. 이 시스템은 경기장 지붕에 설치된 7대의 고속 카메라에서 찍은 사진을 분석해 공을 정밀 추적한다. 그 과정에 인공위성용 GPS에서 사용하는 삼각측량법이 사용된다. 테니스에서 서비스 볼의 인(in) 아웃(out)은 점수와 바로 연결되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항상 시비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사람의 눈은 실제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구성하는 특성이 있어 본 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한다.

 


진화의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물체의 위치를 실제보다 좀 더 앞 쪽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수적으로 낙하위치를 잡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고, 그런 시각 체계를 가진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아 자손을 퍼뜨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계자료에서도 인(in)을 아웃으로 잘못 판정한 경우가 그 반대보다 유의미하게 많다는 것이 이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하간 호크아이 덕분에 테니스 인-아웃에 따른 판정 시비는 많이 줄어들었다. 현재 호크아이 시스템의 오차는 3㎜ 정도라고 개발사는 주장한다. 일부에서는 오차가 1㎜ 이내가 되어야만 믿을 수 있다고 하지만 테니스공 겉면의 보푸라기 털실 길이가 1㎜ 안팎임을 알 때, 테니스공을 단단하고 매끈한 볼링공 타입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 정도가 그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호크아이는 심판 보조시스템이며 세트별로 최대 2번까지 판독된다. 다음 브라질 월드컵부터 골인 판정을 위해서 호크아이가 공식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골라인 판독기 '호크아이' (경향DB)



기계에는 감정이 없기 때문에 항상 공평무사하다. 은행이나 관공서 민원창구에서의 새치기와 같은 악습은 번호표 기계 하나로 정리됐다. 새치기를 하지 말라고 교양에 호소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번호표 기계이다. 아무런 기계장치 없이 새벽 5시에 스스로 깨어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듯이 현대인의 생활은 어떻게 보면 자동기계와의 공생이다.



프로야구 판정에서 비디오 판독 도입이 늦어지는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기계에 대한 인간의 경계심의 역사는 깊다. 산업혁명 시대의 기계 파괴 운동과 같이 우리는 기계를 항상 경계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등장은 많은 직종을 사라지게 했다. 2005년을 기준으로 볼 때 IT기술로 인해 사라진 일자리 수가 IT기술이 만들어준 일자리 수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거대한 분리(great decoupling)”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이 담당한 수작업은 자동화 시스템이 빼앗아 가고 있으며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경비원은 CCTV와 분석 프로그램으로 대치되고 있다. 심지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만을 식별해주는 카메라 시스템까지 존재한다니, 안전요원의 자리도 위태해지고 있다. 박스터(BAXTER)사의 로봇은 그 표정까지 사람을 모방하여, 같이 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로봇임을 잊게 해주고 있다. 


산업현장 INI스틸 압연공장의 자동화시스템 (경향DB)



구글에서 개발중인 무인자동차는 운전기사를 무력하게 만들 것이다. 구글이 지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특히 방위산업에서 기계군단의 등장은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조짐을 보인다. 지난주 무인전투기 X-47B의 항모 이착륙 성공소식은 불길한 느낌마저 주고 있다. 전투기에서 조종사 안전장치를 빼면 제조원가를 크게 줄일 수 있어 무기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 또한 무인항공기에는 국경이라는 개념조차 희미해 설사 무인항공기를 격추시킨들 추락한 쇠붙이를 포로교환용으로 쓰지 못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무인 비행기 조작 교육비용이 실전비행 조종사 교육비용을 상회하기 시작했다니 미래 전쟁의 모습이 그려진다.


무인자동차에 탑승한 구글의 경영진.



현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기계를 배척하는 러다이트 운동은 불가능하다. 노예제가 불가능한 현대에서 경쟁력의 요체는 얼마나 적극적으로 기계와 공생하는 것인가이다. 기계가 잘할 수 있는 일은 기계에 넘겨주고 인간은 다른 영역을 개척해야 할 것이다. 사람의 눈보다 훨씬 더 공정하고 정확한 비디오 판독을 프로 스포츠에서 미룰 이유는 없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식의 황당한 주장 대신 심판은 기계와 공생을 통해 그 안에서 정체성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시스템이 거대해질수록 객관적 기계장치는 필수적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에 기초한 시스템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절할 정도로 복잡한 입시제도나 4대강 사업 같은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