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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과학 칼럼

[기고]청명한 사이버스페이스를 꿈꾸며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며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차원은 다르지만 사이버스페이스만큼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글로벌 의제도 없다. 인권·개발·환경과 같은 종래의 이슈들은 오랜 기간 담론 형성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글로벌 이슈로 등장했다. 반면 사이버스페이스는 1982년 어느 공상과학소설에 처음 등장한 용어이긴 하지만 국제사회에서 심각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주 우리는 서울에서 새로운 기회의 신대륙이라고 할 수 있는 사이버공간의 질서를 논의하는 중요한 국제행사를 개최했다. 17~18일 이틀 동안 코엑스에서 열린 2013 제3차 사이버스페이스 서울 총회가 그것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개방되고 안전한 사이버공간을 통한 인류 공동의 번영’이라는 주제하에 △경제 성장과 발전 △사회문화적 혜택 △사이버 범죄 △국제안보 △사이버 보안 △역량 강화라는 6개의 의제를 중심으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2013년 세계 사이버스페이스 총회’에 참석 (출처 : 경향DB,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행사를 기획하면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 주안점을 두었다. 하나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신대륙에 어떻게 인류공영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가’라는 목적에 관한 측면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보통신강국인 한국의 외교가 어떻게 사이버스페이스 이슈에서 선도적으로 기여할 것인가’라는 역할과 관련된 측면이었다.


우리는 주제 선정에서 회의 결과 문서 채택에 이르기까지 사이버스페이스의 미래 질서에 관한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서울 총회 환영사에 명확하게 담겨있다. 바로 “사이버 공간의 개방성을 보장하면서도 개방성에서 비롯될 수 있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규범과 원칙을 만들어 가는 것”과 “전 세계 인구 40억명 이상이 인터넷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디지털 소외와 격차는 방치할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이다.


참가국간 커다란 이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 총회 사상 처음으로 국제법의 온라인 적용과 국가 의무 등을 제시한 ‘서울 프레임워크와 공약’을 결과 문서로 도출할 수 있었다. 이 문서는 향후 사이버 분야 국제 논의에 중요한 참고가 될 것이며 국제규범 형성 과정에서도 의미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주도로 ‘역량 강화’를 처음으로 의제에 추가했다. 그 결과 선진국뿐 아니라 많은 개도국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선·후진국간 디지털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유용한 기반을 마련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87개국 1600여명이 참석한 이번 서울 총회는 사이버 이슈를 글로벌 이슈로 키워놓았다. 서울 총회를 통해 사이버스페이스 총회는 마침내 ‘지구촌 총회’로 격상된 것이다. 


이번에 확인된 우리 외교의 위상과 국제사회의 기대도 주목할 만하다. 국제행사의 성공 여부는 규모와 수석대표 수준, 국제질서에 기여할 수 있는 결과물 여부, 그리고 행사 자체의 원활한 진행 등에 달려 있다. 이번 총회는 이 모든 기준에서 전례없는 대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것은 분명 한국이기에 가능했다고 참가국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평가했다. 정보통신강국인 한국이 사이버스페이스 총회를 개최한다는 것 그 자체로 인해 세계는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한 것이다. 개방되고 안전한 인류 전체의 사이버스페이스를 구현하려는 우리의 리더십을 국제사회가 신뢰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번 총회에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무한한 가능성의 신대륙을 탐험하는 선구자의 자세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새로운 길이기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 풍요로움을 우리와 후손들이 누릴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지구촌 행복의 길을 개척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마치 30년 전 소설 속의 상상이 지금 현실이 되었듯이 지금 우리의 비전이 미래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인류의 사이버스페이스가 가을 하늘만큼이나 청명하게 다가오도록 우리의 지혜와 역량을 계속 발휘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윤병세 | 외교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