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된 이래로, 현재는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써 각광을 받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나노기술은 세상에 없는 신물질과 이를 이용한 특별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창조적 기술이다. 또한 기존의 기술들 및 산업들과 융합해 기존 제품의 성능과 산업 구조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융합-친화적인 기술이다. 철보다 수십배 강하고 구리보다 전기전도성이 수백배 뛰어난 완전히 새로운 물질인 탄소나노튜브의 개발이 전자의 좋은 예라면, 암 치료약에 나노물질을 섞고 이를 외부에서 원격 조정해 암 부위에 정확하게 약이 투여되도록 하는 나노 약물전달 시스템 개발은 후자의 좋은 예다.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성능을 지닌 다양한 나노제품들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나노 기능성 화장품, 자외선 차단 또는 빛 조절 기능성 창문, 항균력이 강한 치약 등등. 미국의 우드로윌슨 센터에서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가 사용하는 나노제품을 공식적으로 조사한 자료를 보면, 2011년 4월 기준으로 1317종의 소비제품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 2006년 4월에 처음 조사한 수치인 212종에 비하면 5년 사이에 무려 520% 성장한 셈이다. 나노산업 및 시장의 성장률도 3~4%인 세계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연평균 20% 수준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노하이브리드 '아토시스' (경향DB)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인 수치와 전망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체감하는 나노산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크게 성장하고 있지 못하다. 또한 시장은 특별한 기능성을 지닌 나노제품임에도 ‘나노’라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쓰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바로 나노물질의 잠재적 위해성과 그로 인한 나노제품의 안전성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나노물질인 탄소나노튜브와 은 나노는 인체 및 환경에 잠재적인 위해성을 지닌 물질로 OECD에 공식적으로 등록돼 있다. 이 두 개의 물질 외에도 실제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11개의 제조된 나노물질 모두가 국제적인 안전 관리가 필요한 물질로 공식 지정돼 있다. 이는 나노물질 및 제품의 안전성 문제가 미래 나노산업의 활성화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관건임을 말해 준다. 나노물질 및 제품이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안전하지 못하다면 나노산업의 성장 가능성, 성장 동력으로써의 가치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노제품의 안전성도 확보하고 동시에 나노산업의 활성화도 촉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나노기술안전법’(가칭) 제정이 그 해답이다.
오늘날 나노물질 및 제품의 안전성 문제는 안전 관리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보면 독성이 없는 나노물질 및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재의 기술 수준으론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독성을 지닌 나노물질에 인체와 환경이 노출되지 않거나 최대한 적게 노출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위험한 물질이라도 인체와 환경에의 접근이 차단되면 안전하기 때문이다. 나노물질의 제조에서부터 나노제품의 생산 및 유통, 소비자에의 판매 및 사용, 그리고 제품의 폐기에 이르는 전주기 과정에서 나노물질 및 제품에 대한 안전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안전성은 어느 정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나노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궤를 같이해 나노물질 및 제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해 다양한 법적인 규제들이 만들어 지고 있다. 특히 제품에 사용된 나노물질의 물리 화학적 특성과 독성에 대한 정보, 제품에 사용된 나노물질의 용도 및 함유량에 관한 정보, 제품으로부터 방출되는 나노물질량에 대한 정보 등의 관련 정보제공을 안전 관리를 위해 법적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유럽연합으로 대변되는 나노산업 주요 선도국들이 앞장서서 나노 안전성 문제가 나노산업의 활성화에 발목을 잡지 않도록 안전 관리를 함께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나노물질 및 제품의 생산 단계에서부터 안전 관리가 강조된다면, 그렇게 생산된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는 더욱 커지고 시장은 더욱 넓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 관리에 관한 법제화는 기업을 규제하고 산업 발전을 억제하는 역기능보다는, 생산자 및 소비자의 보호, 소비자 신뢰 제고 및 시장 확대, 나노규제 국가들에 대한 수출 증대, 자연 환경 보호 등 순기능을 증진시킬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나노 기술력이나 나노산업의 경쟁력은 세계적 수준임에도 나노안전과 관련한 별도의 법적인 장치가 없다. 나노기술 개발 초기 단계인 2002년에 ‘나노기술개발촉진법’을 별도로 제정한 바 있지만, 이는 산업화보다는 그의 기반이 되는 나노기술의 연구·개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제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관련 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나노산업의 활성화와 안전관리 강화가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상생하는 관계를 갖는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법은 산업화 촉진과 안전을 동시에 포괄하는 그런 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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