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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과학 칼럼

‘대량생산’ 식물공장의 기대와 우려

#사건 1. 말리리아 치료제를 대량생산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개발됐다. 미국 UC버클리의 화학공학자 제이 키슬링이 이끄는 연구진은 빵을 발효시키는 미생물(효모)에서 말라리아 치료에 활용되는 아르테미신산을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4월10일자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보고했다. 이전까지 아르테미신산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서식하는 개똥쑥에서 어렵사리 추출돼 왔다. 연구진은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신산이 생성되는 회로를 효모 안에 통째로 ‘이식’했다. 빠른 시간에 증식하며 약물질을 만드는 ‘미생물 공장’인 셈이다.



#사건 2. 청정 채소를 대량재배하는 ‘식물 공장’이 주목받고 있다.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최적조건을 실내에서 구현하는 공장이다.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가 주입되고, 태양빛 대신 LED 조명이 쪼여지며, 토양의 영양성분이 배양액으로 대체된다. 채소가 자라는 전 과정은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조절된다. 식물 공장은 이미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서 활발하게 보급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정부지원 아래 올해부터 시범운영된다.


경기 용인시 죽전동 식물공장 시티팜 (경향DB)



생명공학(BT), 나노기술(NT), 정보통신기술(ICT) 등이 어우러진 첨단 융합기술이 공상과학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공장들을 짓고 있다. 인간에게 필요한 제품의 대량생산이 목표이다. 이전보다 소비자에게 높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을 보장한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들 공장의 가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특히 기존의 생산자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키슬링은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 분야에서 활약하는 대표주자이다. 합성생물학은 생명체의 유전자와 대사회로를 컴퓨터에서 설계해 인간이 원하는 물질의 생산 설계도를 하나의 미생물 안에 구현하는 융합기술이다. 키슬링은 이번에 개발한 미생물을 이용해 전 세계 말라리아 치료제를 대체하고 싶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0년 말라리아 환자의 수는 약 2억2000명, 사망자 수는 약 66만명이다. 기존의 개똥쑥에서 치료 성분을 추출하는 방법으로는 물량을 채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키슬링의 생각이다. 프랑스에 본부를 둔 다국적 제약기업 사노피사는 이번 연구성과를 활용해 치료 성분을 올해 35t, 내년에는 50~60t 만들어내 최대 1억5000만명에게 처방할 물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식물 공장 역시 대량생산의 조건을 갖췄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채소의 생장속도와 수확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일반 노지에 비해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10~20배에 달한다고 한다. 농약을 치지 않을뿐더러 각종 토양이나 대기오염으로부터 차단되기 때문에 친환경 채소를 안전하게 공급할 수 있다. 설계에 따라 얼마든지 건물을 높이 지을 수 있어 도심 한가운데 고층 빌딩형 식물 공장이 등장할 법하다.



농촌진흥청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 ‘식물 공장의 전망과 정책 과제’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1975년 이미 4700㏊의 재배면적을 보유한 식물 공장을 설치했다. 일본은 2020년쯤 관련 시장 규모가 2009년에 비해 4.6배 증가한 640억엔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남아 있다. 미생물 공장의 경우 합성 효모에서 생산된 약물질이 과연 자연산 개똥쑥에서 추출한 그것과 동일한 효과를 나타낼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합성생물학을 ‘극한의 유전공학’이라 부르며 우려하는 외국의 시민과학자단체들은 합성생물학의 연구에 대한 각국 정부의 규제가 무방비 상태라고 비판하고 있다.



식물 공장은 막대한 설치·운영 비용과 에너지 사용이 선결돼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LED를 비롯한 인공조명을 위해 투여되는 전기에너지 사용량이 만만치 않아 식물 공장의 제품이 과연 친환경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첨단 공장이 기존 생산자들의 생계를 가로막는 점도 지적된다. 현재 개똥쑥은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와 인도, 베트남, 중국 등 아시아에서 수천명의 농부들이 2만㏊ 규모에서 채취하고 있다. 당장 미생물 공장에서 치료제가 대량생산된다면 이들의 생계가 어려워질 것이 자명하다.



식물 공장 역시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동안 각종 채소를, 그것도 어렵사리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는 농부들에게 식물 공장은 삶의 기반을 흔드는 존재로 다가올 수 있다. 노지 대신 실험실과 도시 한복판에서 소수의 과학기술 전문가가 소비자의 약물과 먹거리를 생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일견 편리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높은 효율성과 대량생산만이 우리의 삶을 진정 풍요롭게 하는 요소인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과학기술학